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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페이튼 전 / 정념으로 얼룩진 초상

이선영

정념으로 얼룩진 초상

엘리자베스 페이튼 전 (6.15–7. 31, 리안갤러리 서울)

    

이선영(미술평론가)

  


초상화가 주를 이루는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전시 작품들은 물을 많이 머금은 붓으로 시원시원하게 그은 표현이 특징적이다. 유화나 판화(모노타입)일 경우에도 수채화처럼 보인다. 얼굴 안팎에 여백이 많은 성글성글한 이미지는 외적 유사성에 치중하지 않는다. 그러한 파격이 오히려 대상과의 내적인 연결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는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표현으로 상대의 인상을 표현한다. 본인과 지인의 초상은 물론, 명화, 영화, 위인 등에서 소재를 가져오는 작품들은 대부분 사진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에 외적인 반복은 불필요하다. 미술사에서 대중문화까지 이르는 다양한 소재들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Leeahn Galllery_Elizabeth Peyton_B1_Installation View4_© Shi-Woo Lee



물론 그것은 자신을 에워싼 모든 것에 주체를 투사하는 나르시시즘이거나 주체로의 환원이 아니라, 사랑, 죽음, 고뇌, 고통, 열정, 욕망, 희열 등이 녹아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11점을 기준으로 볼 때, 작가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면모에 주목한다. 근대의 지배적 가치가 된 합리주의는 오성을 넘어 코드로 귀결되어가고 있는데, 모든 것이 코드화로 귀착될 때 끝내 코드화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인간에 침전해 있다. 작가는 그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화면에 얼룩진 액체적 형상은 이런저런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체화하여 유출한 것이다. 수채화나 수채화적 효과를 준 초상들은 선이 얼룩졌다기 보다는 얼룩이 얼굴 모양으로 보이는 심리적 형태(gestalt)이기도 하다. 


지인을 그린 수채화는 모노타입으로 표현한 동일 인물의 초상에 비해 더 가볍고 투명하다. 인물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은 타자의 시선이다. 또다른 작품 [Lara, July 2020 #2](2020)은 초상 옆 식물의 구불거리는 선이 인물의 감성이나 욕망을 표현한다. 완전히 그어지지 않은 얼굴선, 다 칠해지지 않은 면 사이의 공간은 인물을 확정짓지 않고 무엇인가 생겨나고 소멸하게 한다. 이 여백은 주체 내부의 빈 곳이며 주체 안의 타자가 자리하는 곳, 또는 타자와 상호작용하는 곳으로 지시대상의 확실성을 보증하는 선적 형태보다 중요하다. 인물 재현의 모델은 그림자 또는 거울로 말해진다. 그 어느 것이든 타자를 전제한다. 보고 보이는 관계에 얽힌 시각적 문제는 존재론부터 사회적 차원에 이른다. 




Elizabeth Peyton_Artist Profile image_© Elizabeth Peyton



Elizabeth Peyton_E (Reflection)_2021_Monotype in pastel on handmade paper_68.6 x 53 cm_© Tom Powel Imaging



Elizabeth Peyton_Elizabeth_2021_Oil on board_35.6 x 27.9 x 2.7 cm_© Tom Powel Imaging



Elizabeth Peyton_Frederick Douglass, 1863_2021_Oil on board_43.2 x 35.6 x 2.7 cm_© Shi-Woo Lee



타자의 무대로서의 초상은 눈 안에 쏙 들어오는 작품일지라도 결코 작지않은 소통의 그물망으로 작동한다. 타자와의 상호작용은 순조롭지만은 않다. 선보다는 얼룩으로 이루어진 초상은 멜랑콜리하다. 땀과 눈물, 때로 피로 얼룩진 얼굴이다. 주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정념의 흔적이다. 화면 위의 얼룩들은 작품 [Tony Leung Chiu-Wai (Happy Together)](2021)처럼 금지된 사랑의 고뇌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영화 속 주인공을 만들기도 한다. 인물에서 흘러 나와 경계를 얼룩지게 했을 내부의 액체이다. 액체적 표현이 아닌 작품에서도 인물의 감춰진 부분이 나타난다. 친구의 초상 [The Friend](2021)은 음화 같은 이미지를 통해 인물의 무의식을 드러낸다. 


고대의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인 투탕카멘의 가면을 그린 작품은 초상 자체가 가지는 가면적 특성을 보여준다. 가면 뒤에 숨겨진 본질은 없다. 흑인 노예의 해방에 앞섰던 위인의 초상은 사색적인 얼굴과 의지를 나타내는 손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것은 그 인물을 실천하는 지성으로 해석한 결과다. 초상화의 진면모는 자화상에서 나타난다. 자기 이름을 단 작품 [Elizabeth](2021)는 어느 초상보다도 자세하고 화면에 꽉 찬다. 생각에 잠긴 눈매는 깊다. 반면에 입은 그리는 둥 마는 둥 희미하게 처리했다. 화가에게 말은 시각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작품 속 인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로 모호하지만, 사색적 표정은 확실하다. 




Elizabeth Peyton_Lara (Lara Sturgis March 2021 NYC)_2021_Watercolor on paper_35.9 x 26 cm_© Tom Powel Imaging


Elizabeth Peyton_Lara, July 2020 #2_2020_Monotype on Twinrocker handmade paper_68.4 x 52.4  cm_© Tom Powel Imaging



Elizabeth Peyton_Tony Leung Chiu-Wai (Happy Together)_2021_Oil on board_35.6 x 27.9 x 2.7 cm_© Tom Powel Imaging



Elizabeth Peyton_Tutankhamun_2020_Colored pastel and colored pencil on paper_21.9 x 15.4 cm_© Tom Powel Imaging



거울에 비친 자신의 프로필이 반영된 작품 [E(Reflection)](2021)은 초상화의 도구인 거울이 지니는 상상적 측면을 사유하는 눈매와 중첩시킨다. 지인과 위인 등 실존하는(했던) 인물의 초상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작품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층에 입구에 전시된 [Knight Dreaming (K) After EBJ](2016)는 신화와 종교를 당시의 감성에 맞게 드라마틱하게 재현한 에드워드 버네 존스의 작품을 참고한 것으로, 원화에 선명한 19세기 사실주의 기법은 사라진다. 그것은 다른 작가의 작품 속 인물 또한 대화의 상대임을 보여준다. 티치아노의 작품으로부터 출발한 작품 또한 당시의 전원 음악회라는 낭만적 소재를 추상화했다. 작가는 자신을 통해 자신이 몸담은 세계를 밀도 있는 내적 언어로 표현한다.


작품 사진 출전

© Elizabeth Peyton;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Photo: Tom Powel Imaging

전경 사진 출전

© Shi-Woo Lee

Courtesy of the artist & Leeahn, Seoul


출전; 아트인컬처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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