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송인 / 심연에서 떠오르는 얼굴

이선영

심연에서 떠오르는 얼굴

  

이선영(미술평론가)


  

깊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다 확 다가오는 느낌을 주는 독특한 초상들은 송인 방식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이다. 초상화에 본래부터 내재하는 부재와 죽음의 은유는 그의 작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얼굴 부분 만 둥 떠 있는 모습은 가면같은 느낌도 준다. 눈동자가 살아있는 기괴한 가면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 이미지들이 추가되어 시사적인 메시지를 강조했다. 아직도 위용을 떨치고 있는 전 세계적 감염병의 위협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죽음을 의식하게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최근 10년 작품은 초상화가 주를 이루어왔고, 검은 바탕으로 다시 가라앉을 듯한 느낌의 얼굴에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몇 년 전에 제작된 작품 [강제된 침묵-너만 조용하면 돼](2016)는 관객과 마주한 여성의 입을 가리고 있는 것이 하얀 뼈다. ‘백인’을 포함해서 인간의 얼굴은 원래 하얀색이 아니지만, 모든 인종의 뼈는 하얀색이다. 뼈에 맞춰진 모노 톤의 초상은 작가가 강조하는 바를 은연중에 알려준다. 




1.강제된 침묵-너만 조용하면 돼,장지,먹,아크릴,수정테이프,콘테,91X116.8-2016



2.당신은 지금 안전한가, 장지,먹,수정테이프,콩테,오일파스텔,아크릴116.7X91cm,2020



먹과 아크릴, 콩테나 오일파스텔 등으로 처리한 바탕은 한 줄기 빛도 빠져나올 수 없을 듯한 깊은 어둠을 깔아놓는다. 한편 거기에서 떠오르는 듯한 얼굴은 수정테이프로 붙여가며 제작되었다. 수정테이프는 얇기는 하지만 페인팅이 아니라 일종의 꼴라주기 때문에 환영보다는 물성이 강조된다. 최초부터 마지막까지 6겹까지 붙여서 볼륨감을 주는 기법은 화면 속 얼굴을 관객의 면전으로 더 가까이 들이대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화면과의 밀착도가 있다. 회화적 실험 과정에서 우연찮게 발견한 수정테이프는 정착액을 계속 뿌려가면서 작업해야 하는 번거로운 ‘매체’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그리기와 지우기라는 행위를 중첩시키는 은유적 효과도 있다. 빛과 어둠의 대조라 할 만하지만, 작가는 얼굴 윤곽선을 흐릿하게 처리하여 초상화에 기대될 법한 영원성을 약화시켰다. 수정테이프로 ‘그린’ 얼굴은 어두운 바탕에 밝은 얼굴이다. 하지만 빛을 받은 얼굴 표면에도 어둠을 내포한다. 


사이사이에 검은 공백을 미세하게 드러냄으로서 죽음을 더욱 의식하게 하는 것이다. [강제된 침묵-너만 조용하면 돼]라는 제목은 침묵의 카르텔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감춰지는 현상을 고발한다. 동작은 물론 말이 없는 매체인 회화는 정지와 침묵을 통해 말한다. 타자와의 번거로운 일에 얽히기 싫어하는 관행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침묵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송인의 작품들은 많이 있다. 이전 작품들인 [가려진 사건](2019)이나 [강제된 침묵-너만 눈 감으면 돼](2017), [강제된 침묵-너만 안 들으면 돼](2017)는 모두 약자를 희생자로 삼는 사건에 대한 고발이다. 강요받은 침묵의 대상은 죽음 또는 죽음에 가까운 상처를 주는 사건일터이다. 작가는 현실 속에서 현상을 관찰해보면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현시대 고통의 원인을 ‘타자와의 소통의 부재’로 본다. 그것은 ‘갈등과 폭력으로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3.어느 평범한 오후, 장지,먹,수정테이프,콩테,오일파스텔,아크릴,116.7X91cm,2020



4.(참고)잠식된 휴식, 장지,먹,수정테이프,콩테,오일파스텔,아크릴,180X220cm,2020



송인은 작품을 통해서 ‘사회 관계망으로 점철된 사회구조 안에서의 서로 상호 간의 비물리적 폭력적 관계에 대한 해석을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다. 자연을 비롯해서 타자를 도구화하고 지배하려는 계몽의 책략은 이성과 폭력의 결탁 관계를 말한다. 아도르노를 비롯해 작가가 관심 있어 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이성-계몽-신화-지배의 연결고리를 지적해왔다. 이러한 비판적 사회학을 현대의 정신분석학으로 부연 설명하자면, 라캉이 말한 대타자의 영역으로 구조화된다. 정신분석학에서 대타자(Autre)는 개별적 타인을 넘어서는 언어와 법의 질서이다. 라캉의 이론에 따르면 상징계(the Symbolic)는 절대적 주인이 되어 명령한다. 이성이라는 ‘동일자는 폭력적 전체성’(레비나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에의 민감도는 작가로 하여금 죽음을 검토하게 한다. 레비나스는 [시간과 타자]에서 ‘죽음의 접근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다른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작가로 하여금 타자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송인에게 인간-타자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화면 가득히 포착된 얼굴은 스쳐 지나가는 눈길로도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염두에 둔다. 존 리겟은 [얼굴 문화, 그 예술적 위장]에서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며, 그렇기에 대부분의 반응이 무의식적일 정도로 우리는 사회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얼굴은 사회생물학이나 심리학 등을 넘어서 그자체로 철학적 윤리적 주제로 확장되며, 그 대목이 미학과의 진정한 연결고리가 된다. 니콜 아블릴은 [얼굴의 역사]에서 얼굴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고 보며, 타인의 얼굴을 철학의 주제로 삼은 레비나스를 인용한다. 이전 시대에 인간은 신의 얼굴을 반영하는 존재였지만, 이제 인간의 얼굴은 레비나스가 말하듯이 ‘불안할 정도로 약해’ 보인다. 




5.(참고)불안한 갈등,장지,먹,수정테이프,콘테,아크릴,380x162.3cm,2019



6.(참고)가려진 사건,장지,먹,수정테이프,콘테,아크릴,380x177.5cm,2019



막스 피카르가 [사람의 얼굴]에서 한탄했듯이, 이제 ‘얼굴은 판이 되어 가고’, ‘그 판조차 깨져가고’ 있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단순히 타자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루만지기를 권한다. 단지 본다는 것은 타자를 대상화하는 것에 머물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화와 도구화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보기는 접촉과 근접성을 유지한다. 요컨대 ‘보기는 만지기와 유사한데, 만지기는 어루만지기로 이해’된다. ‘보면서 나는 얽힌다. 얽히면서 나는 마주치게 된다’는 것이 타자의 윤리학이 전하는 메시지다. 그 점에서 수정테이프를 활용한 송인의 기법이 촉각적 시각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의미 있다. 그의 작업실에는 수정테이프가 화가의 물감만큼이나 쌓여있다. 작품 [강제된 침묵-묵시적 통제](2017)의 경우 피해를 상시적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통제 및 조절의 권력이 자동적으로 실행됨을 암시한다. 그의 초상에는 불안과 공포가 편재한다. 


경악스러운 장면을 보든 피하든,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든 유예되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검은 배경은 주체를 위협하는 대상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데, 그것은 프로이트가 대상의 유무에 따라 불안과 공포를 구별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영화를 비롯한 사각 프레임은 그 내부로 어떤 것이 침입할지 모를, 그자체가 불안과 공포에 걸맞는 장르처럼 느껴진다. 송인의 작품은 언제든 공포로 뒤바뀔 수 있는 불안을 표현하며, 검은 배경은 주체를 위협하는, 또는 상호작용하는 타자들이 잠복해있는 잠재적인 영역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의 작품 [당신은 지금 안전한가](2020)는 타자에 대한 공포에 질린 채 코와 입을 완전히 가리고 다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있다. 바이러스 대응 2년 차에 접어들다 보니 이제 제 2의 스킨이 된 듯한 마스크는 어쩌면 상시적인 방어를 해야 하는 원년이 될 수도 있는 이미 닥친 미래의 위험사회를 상징한다. 마스크의 무늬가 코로나 바이러스 형태들로 한 가득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7.(참고)축적된 단상,장지,먹,수정테이프,콘테,아크릴,380x162.3cm,2019



8.(참고)강제된 침묵-너만안들으면 돼,장지,먹,수정테이프,아크릴,콘테,227.3X181.8-2017



우리 속담에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술 더 뜨기 전략을 통한 방어이다. 백신 자체가 그러한 동종요법으로 작동한다. 원근법이 적용된 화법으로 묘사된 바이러스는 이미 내부로 침입해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관련된 이전 작품인 [잠식된 휴식](2020)을 보면 공간을 가득 채운 코로나 입자들이 방호복으로 완전히 가린 코로나 의료진을 위협한다. 바이러스는 동일자와 타자의 관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을 주체를 위협하는 이질적 타자이며 그 끝은 감염된 개체의 죽음이다. 하지만 온전하게 순수한 개체는 없다. 주체 또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설정된다. 작품 [어느 평범한 오후](2020)는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오후의 상황이다. 얼굴 한가운데에 떠 있는 확대된 붉은 돌기가 가득 박힌 바이러스의 모습은 공포스럽다. 그것은 작품 속 인물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가까이에 현전한다. 감염된 이의 몸에서 맹렬하게 복제하여 다른 희생자를 찾아가는 바이러스는 그와 마주친 개체를 감염과 죽음으로 인도할 불길한 모습이다. 


송인은 작업 초기에 자화상도 곧잘 그렸지만, 적어도 지금 기법을 시작한 시기인 10여년 전부터 작품에는 자신의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다. 작가는 굳이 자신을 그릴 필요가 없다고 봤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나르시시즘의 모습 또한 죽음과 멀지 않지만 그것이 달콤한 죽음이라면, 타자와의 상호작용은 보다 도전적이다. 그림에 이질적인 재료나 바이러스 같은 이물적 소재 등은 타자의 또 다른 확장이다. 굳이 자신을 그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타자와 주체의 경계가 유동적임을 말한다. 그것은 주체가 당면한 사태에 대한 보다 냉정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커밍아웃하여 불행한 말로를 맞은 지인의 사건이 작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인간 관계에서 있을 수 있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상대를 그 자체의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삼는 그런 흔해 빠진 ‘진실’ 말이다. 현대사회에 편재하는 경쟁과 권력관계 속에서 타자는 주체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9.(참고)강제된 침묵-묵시적 통제,장지,먹,아크릴,수정테이프,콘테,227.3X181.8-2017



10.(참고)강제된 침묵-너만눈 감으면 돼,장지,먹,아크릴,수정테이프,콘테,181.8X227.3-2017



주체는 타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쓸 따름이다. 그렇지만 현대의 언어학이나 정신분석학이 예시하듯이 주체는 이미 타자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타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 손바닥만한 얼굴은 인간 삶을 반영하는 거대한 우주다. 검은 바탕, 하얀 뼈, 살아있는 존재에게 강요되는 침묵의 강제 등은 사회라는 상징적 우주에 편재하는 죽음을 말한다. 죽음은 망각과도 이어지는데, 작업실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본 안중근이나 김구의 초상은 3.1절을 100주년 맞았어도 독립에 대한 의식이 그에 못 미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타자의 초상을 통해 고통과 죽음의 존재론부터 사회비판까지 이르는 송인의 작품은 불편하다. 그는 ‘관계의 미학’을 말한다. 초상화에서 관계란 타자와의 관계일 수 있다. 자크 랑시에르가 [미학 안의 불편함]에서 말했듯이, ‘예술은 타자와의 충격적인 만남에 의해 규정된 명령’과 관련된다. 


하지만 랑시에르는 예술이 지배적 문화와 투쟁하는 가운데, 도발적 이견을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신비로 고양되어야 한다고 본다. 송인의 작품에서 초상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검은 배경은 신비의 측면을 제공한다. ‘타자와의 관계는 신비와의 관계’(레비나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얼굴을 오려내 어수선한 꼴라주 기법으로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드높이는 미술계 경향도 있었지만, 대개 그러한 스타일은 일회용 풍자나 선정적인 표현에 머물고 만다. 포토몽타주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크게 발휘했던 영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현실의 부조리는 그렇게 대놓고 반대할 만큼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층층이 감춰져 있는 현실은 사회운동가들과 다른 입장을 요구한다. 예술은 단정이 아니라 끝없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명한 듯 몸에 붙어있는 머리를 소재/주제로 삼아 쓰기와 지우기를 교차하면서 얼굴이라는 미지의 텍스트를 짜나간다. 

 

출전; 아트허브-모리스갤러리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