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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복 김상구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선영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선영(미술평론가)

  

두 작가의 비슷함과 다름

  

1945년생 김상구와 이보다 7살 어린 강행복은 판화로 일가를 이룬 작가라는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많다. 한국 미술계에서 판화라는 매체 자체가 다소간 주변화된 상황에서 대표적 판화가가 한자리에 만났다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김상구는 대학 때 회화를 강행복은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작가로서의 자기 언어를 판화라는 매체에 집중해서 실현했다. 똑같은 미술, 또는 이미지로 보이지만 대학에 판화과가 따로 존재할 만큼 판화는 매체적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다. 판화는 회화에 비교해 ‘오리지날’이 아닌 복제라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다. 급격하게 전개된 정보화시대에 복제로서의 정체성은 큰 의미가 없다. 그 점은 ‘오리지날’ 도 마찬가지다. 유일품의 가치는 수많은 복제 시스템에 의거한 물신숭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복제의 정확성과 속도는 아나로그와는 가히 경쟁할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이 두 작가에게 판화는 다소간 일찍 다가왔다. 김상구는 어릴 때 고무도장을 잘 파서 반에서 인기 있는 학생이었고 강행복은 디자인을 하기 전에 조각을 먼저 했다. 




김상구, no 881 70x100cm 한지에 목판화 2004



김상구, no 882 70x100cm 한지에 목판화 2004



그들의 의미심장한 인생 여정은 판화가로의 길이 어린 시절부터 결정되었음을 예시한다. 이후에도 김상구는 고등학교 시절 판화가에게서 미술을 배웠다. 강행복의 경우 재료나 기구 등 매체적 특성이 강한 판화에서 디자인의 감각은 필수라고 보겠다. 평문을 쓰기 위해 김상구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봤던 재봉틀, 그리고 설치작품에 적극적으로 실을 활용하는 강행복의 작품은 그들이 판화를 예술적 확장의 플랫폼으로 삼고 있음을 알려준다. 회화/판화/디자인이 갈려져 있는 한국의 미술계에서 우회로를 통해 자기 길을 개척해왔던 두 작가가 한 미술관에서 만났다. 두 작가는 목판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펼쳐간다는 외적 유사성 외에 내적 연결망을 가진다. 그것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발견되는 새겨넣기(inscribe)라는 과정이다. 새기기는 유화처럼 덧입히는 과정과는 다르다. 그들은 판으로 가공된 나무의 속살을 파고 무엇인가를 새긴다. 그리고 체액과도 비교될 수 있는 물감을 입힌다. 새겨지고 찍혀지는 과정은 작가에게도 관객에게도 일어난다. 


미디어의 역사를 살펴보면 판화 자체가 인쇄술과 연관된다. 인쇄를 통한 복제의 메카니즘은 구술성에 기반한 이전사회를 문자성에 기반한 근대사회로 진입시켰다. 근대는 전면적인 지배의 사회이기도 했다. 예술가를 포함한 개인의 탄생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자유’의 그림자는 선명했다. 사라 살리는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에서 푸코의 기입(inscription)의 모델을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부연 설명 한다. 버틀러에 의하면 법으로 대표되는 기입의 모델은 ‘내면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입 되며, 그 결과로서 육체들이 생산된다’는 것이다. 가령 법은 ‘육체를 관통하며 육체 위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화가 아니라 육체 위에 씌여진다는 것은 예술 또한 법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알려준다. 하지만 기입의 과정은 각각의 동일성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경계를 무너뜨린다. 생성은 물론 죽음을 포함하는 모든 변화는 이러한 경계의 파열로부터 발생한다. 주로 목판화 작업을 해온 강행복과 김상구에게 새겨넣기는 판화의 기본적 과정이다.



강행복, 명상의나무 3



강행복, 명상의나무 4



살과도 비교될 수 있는 나무 판에 조각도로 힘차게 그리고 섬세하게 새겨지는 것은 우리 삶의 외적 내적 풍경이다. 무늬로 고양될 수도 있는 상처이다. 새겨넣기는 몸에 각인, 또는 기입 되는 것을 말한다. 나무-몸에 새겨지는 것은 삶, 즉 상처와 고통을 포함한 생존의 흔적이자 기억이다. 인간사회의 경우 권력의 과정, 즉 의식과 무의식에 새겨지는 상징계의 모습이다. 하지만 강행복과 김상구의 작업은 나무처럼 우직하게 삶을 반영한다. 두 작가가 애호하는 나무판 자체가 뭔가 새겨진 것들의 총체이다. 자신이 우연찮게 자리잡은 장소의 기후와 사건 사고 등을 문서고와도 같은 나이테에 저장한다. 로베르 뒤마가 [나무의 철학]에서 말하듯이, 나무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극대화된 양상으로 자신을 펼치면서 공기와 물과 빛과 광물을 수렴하고 종합하며 가뭄과 강우와 한파와 바람의 내력을 자신의 문서고에 기록한다. 


이 전시의 두 작가에게도 나무는 책이다. 한국 판화계의 산 역사라고 할만한 김상구는 판화가 출판과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강행복의 작품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되는 아티스트 북은 책의 또 다른 형태이다. 강행복은 종이나 천, 실 등 자신의 작품의 재료가 되는 것들이 모두 나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두 작가 모두에서 시리즈 형태의 판화는 책의 비율을 가진다. 물론 그것은 판화지나 한지의 규격과도 관련이 있지만, 그들이 뿌리 내리려는 자연 또한 책이기 때문이다. 김상구와 강행복의 작품에는 종이라는 재료가 나무로부터 왔다는 것 이상의 비유가 있다. 로베르 뒤마에 의하면 나무 속껍질에서 종이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나무를 떠난 적이 없다. 나무는 자신 속에 글씨를 간직하고 있다. [나무의 철학]에 의하면 나무는 그것을 자연적으로 저장하고 기억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저장하고 기억하는데 기여한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가 전달의 매개자로 저장의 울타리로, 기록의 표면으로 굉장히 경이로운 변신을 거쳐 왔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작품에서 나무는 전달, 이송, 기억의 수단에 표현의 기능을 추가한다. 

  


김상구; 비워진 것은 선

  

김상구의 작품은 비움과 채움 사이의 긴장과 균형감이 두드러진다. 그의 말대로 목판화에서 ‘비워진 것은 선’이다. 가령 작품 속 밝은 선은 음각으로 표현된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볼 때 비움이나 선은 게슈탈트적 차원을 넘어서 공(空)이나 선(禪)이 중첩된다. 음/양, 채움/비움 등과 연관된 분할된 화면은 절제, 균형, 중도 같은, 말처럼 이루기 쉽지 않은 가치들 가운데 움직임과 변화를 내장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많은 작품 수를 포함하는 2004년 제작된 시리즈를 살펴보자. 70x100cm의 규격의 한지에 목판화로 제작된 작품군들은 가족 유사성을 가진다. 이 시리즈는 수직/수평/사선, 음화/양화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로 조합하는 스타일을 보여준다. 어떠한 조합이든 균형이 중시되며 이는 작품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 [no 877](2004)는 섬세한 선들이 엽맥처럼 보이기 때문에 거대한 잎새 같은 배경인 식물성 우주가 특징적이다. 이 우주는 새가 노니는 공간을 품고 있다. 헤엄치는 오리는 수많은 선 중의 하나가 수면이기도 함을 알려준다. 




김상구, no 877 70x100cm 한지에 목판화 2004



김상구, no 883 70x100cm 한지에 목판화 2004



김상구, no 884 70x100cm 한지에 목판화 2004



김상구, no 885 70x100cm 한지에 목판화 2004



김상구, No 396 42X53cm 목판화 1990년



김상구의 작품 속 새들은 늘 수평면을 고요히 유영한다. 새는 네가티브, 또는 포지티브, 그리고 다양한 색조로 나타난다. 자연의 다양성과 다양한 상황을 압축한다. 작품 [no 881](2004)은 화면 상단은 밝은 바탕에 검은 형태이며, 아래는 그 반대이다. 밝은 바탕에 검은 선/형태와 검은 바탕에 밝은 선/형태가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 상단의 수직선 중 두 개는 아래로도 내려오는데 마치 줄기와 뿌리의 관계처럼 긴밀하다. 화면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위와 아래는 평행하는 우주에 해당된다. 밭고랑 형태의 대지 위에 한가득 떠 있는 보름달이 새겨진 작품 [No 715](1999)에서 우주는 더욱 충만하다. 푸른색 계열의 공간에 붉은색 날개를 가진 생명체의 비행을 새긴 작품 [No 995](2011)은 보다 다채로운 자연의 모습이다. 마치 붉은 리본처럼 보이는 개체들은 아래의 수평선들과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작품 [No 396](1990)에 나타나듯이 인간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긴장감에 방점이 찍힌다. 


자연이나 우주보다는 우리에게 가까이에 있기 때문이다. 수직 수평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더욱 안정감 있는 자리와 등치된 인간과 그를 둘러싼 가득한 뇌우 형태는 누군가에게 날벼락처럼 일어난 어떤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상구의 작품에서 인간은 우주의 중심을 이루지는 않는다. 인간은 추상화되어있고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들에 두루 소장된 이력을 반영하듯, 김상구의 작품은 한국적 소재 또한 두드러진다. 이전 작품에서 한옥, 하회탈, 하회마을 같은 소재들이 그것이며, 그 모두는 자연과 어우러진다. 작품 [No 1197](2017)에서 달이 걸려 있는 푸른 창과 그 맞은편에 배치된 붉은 면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자유분방한 공간에서 균형추를 이룬다. 최근 작품 [No 1257](2020)는 소나무, 기와지붕, 그리고 그 위의 보름달이 운치 있다. 작품 [No 1269](2021)에서 기와의 선들을 반향 하는 가로의 선들은 하늘일 수도 바다일 수도 모두 일수도 있는 공간에 울려 퍼진다. 




김상구,  No 715 54X41cm 목판화 1999년



김상구, No 1256  63x94cm 목판화 2020년



김상구, No 1257 63x94cm 목판화 2020년



김상구, No 995 112x76cm 목판화 2011년



김상구, No 1197 76x112cm 목판화 2017년



김상구, No 1269 62x47cm 목판화 2021년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판화 관련 그룹전에서 나무를 주제로 한 12개 연작을 15 미터의 벽면에 죽 붙여 전시한 대작은 그의 작품에서 차지하는 나무의 위상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 수직 수평의 구도와 음양의 대조는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의 모습을 반영한다. 지하와 천상을 잇는 지점이자 세계의 지주를 이루는 나무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어둠과 밝음을 연결한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의 철학]에서 땅을 파헤치는 뿌리는 하늘을 휘젓는 가지들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줄기의 단일성으로 중재되는 뿌리와 가지의 세계는 어지러운 대칭의 효과를 보여준다. 즉 가지와 뿌리라는 두 장치는 서로 보충한다. 잔가지와 나뭇잎들로 넉넉하게 펼쳐진 전개는 지면에서 든든한 정박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라는 소우주에서 일어나는 두 운동을 강조하면서, 하나는 땅속에서 묻혀서 뻗어나가고 다른 하나는 공기 중에 펼쳐져 태양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뿌리와 가치의 다른 차이를 알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나무는 ‘상하의 분리를 결합시키고 공간적 펼침과 기능 간의 일체성’(로베르 뒤마)을 꾀한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가 ‘차이 속의 동등’이라는 본보기를 보여 준다고 결론 내린다. 나무는 김상구에게도 삶에서든 예술에서든 균형에 대한 중요한 상징적 원천으로 작동한다. 지상의 풍성한 가지는 그만큼의 뿌리를 지하에 뻗으면서 지상과 지하의 세계는 팽팽한 균형을 이룬다. 직선, 또는 약간의 곡선을 그리는 수평면을 중심으로 명암의 세계를 대조시키는 김상구의 목판화는 나무의 논리를 인간적인 언어로 번역한다. 그는 나무를 재현하기도 하고 추상화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무의 우주적 존재태의 모방이다. 나무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 공히 적용되지만, 김상구의 작품은 추상적이다. 작가는 ‘80년대 민중미술은 목판화의 힘을 일깨웠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형식/내용의 양자택일을 피하고 삶의 진풍경에 뿌리내리고자 했다. 

  


강행복 ; 모든 것과 모든 것의 연결망

 

강행복의 [명상의 나무] 시리즈는 그자체가 명상하는 모습과 유사한 나무의 형태에서 영감받있다. 끝없이 분지하며 자라는 나무는 명상의 전개되는 방식과 같다.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이야기부터 철학자 바슐라르가 상상을 나무에 빗댄 것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상상계에서 나무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진 쿠퍼는 [그림으로 보는 상징문화사전]에서 성스러운 중심으로서 인도의 보리수는 대각성의 상징이며, 석가모니의 부처로의 본질과 합쳐져서 지혜의 나무라고도 부른다고 전한다. 깨달음의 과정에서 나무의 이미지는 얼마나 중요한지, 자크 브로스는 [나무의 신화]에서 불교의 초기 판본들에서 대 선각자로 묘사된 것은 붓다 자신이 아니라 보리수라고까지 지적한다. 진 쿠퍼는 나무가 세계상인 동시에 우주축이며 3가지 세계를 연결해서 그 사이의 교류가 가능하게 한다고 하며, 옴팔로스, 즉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자크 브로스도 [식물의 역사와 신화]에서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총체를 단일한 이미지로 압축시키는데 나무만큼 훌륭한 상징은 없다고 말한다. 


강행복, 한글나무 17438




강행복, 한글나무 17439



강행복, 명상 1



강행복, 명상 2



강행복, 명상 3



그러나 현대의 작가 강행복은 형이상학을 가능하게 했던 전통적 상징을 포함한 채 그 상징계를 열어놓는다. 수평선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의 이미지인 [명상의 나무 3]에서 나무의 한쪽 면은 개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이루는 형태 또한 조직적인 분지라기보다는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이다. [명상의 나무4]는 둥근 나무 주변에 회오리치는 기(氣)가 보인다. 지하는 지상과 흑백의 반전같은 관계로 서로를 반영한다. 강행복의 작품에서 나무는 나무같지 않은, 즉 리좀적 생태계를 가진다. 그것은 지상의 반영인 지하계도 마찬가지이다. 어지러운 느낌이 들 정도의 복잡한 연결망은 나무에서 체계적인 계통수의 이미지를 봤던 전통적 관념과는 거리가 있다. [한글 나무] 시리즈는 사유의 매개가 되는 언어적 기호를 나타냄에 있어 레터링 디자인 감각이 돋보인다. 지금은 판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모든 것과 모든 것이 연결되는 강행복의 작업에서 어느 하나도 지양되어야 할 것은 없다. 


설치작품에서는 망친 판화까지 활용하는 형국이다. [한글 나무] 시리즈에서 한글은 표음문자로서 분석적으로 패턴화된다. 이때 나무는 지식의 나무이기도 하다. 이 지식의 나무는 세계수같이 세계의 중심을 이루며, 상징적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문자의 위상 또한 말한다. [명상] 시리즈는 명상을 표현하기 위해 나무라는 도상을 끌어들이지 않고 명상의 과정만을 표현한다. 이미 나무에 있었던 리좀적 양상이 더욱 극대화된다. [명상](2015) 시리즈는 모노 톤이지만 다양한 굵기와 굴곡 면, 길이를 가진 흑백의 선들로 가득하다. 여기에서 명상은 하나의 계통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잠 안오는 날 뜬금없이 떠오르는 잡다한 생각들이 밀물처럼, 끝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예기치 못한 연결망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기존 관념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생성이다. 하지만 완전한 무정부는 아니다. 어느 작품이든 중심과 주변의 밀도 차이, 즉 배경과 형태의 구별은 있다. 중간의 굵은 선들은 나무와 리좀이 함께 하는 양상이다. 굵은 검은 띠는 자석처럼 주변의 것들을 뭉치게 한다. 




강행복, 명상



강행복, 화엄A



강행복, 화엄 B



강행복, 화엄 C



강행복, 화엄 D



자잘한 것들은 형태이자 궤적이다. 물질이자 에너지다. 정지이자 움직임이다. 명상 시리즈 20개가 설치된 모습은 작가의 의도를 더 명확히 한다. 어떤 특별한 강조점 없이 가로로 죽 걸려 있다. 그것들은 중심과 주변 간의 구성적 관계가 해체되어 있고 하나에서 또 하나가 이어질 뿐인 계열성이 두드러진다. 시시각각 달랐던 명상의 단면들이 포착된 듯한 모습이다. 같은 형식의 설치는 형상에 잠재적인 움직임을 부여한다. 가령 굵은 검정 띠는 이 화면에서 생겨났다 저 화면에서는 사라진다. 책의 연장이자 변주인 [화엄 A](2019)는 각각이 한 장의 판화인 페이지들을 책처럼 엮은 모습이다. 이 ‘책’은 차례로 읽혀지지 않는다. 다양하게 접히고 펼쳐지는 페이지는 일종의 그림책이지만 삽화는 아니다. 즉 어떤 서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끝없이 접히고 펼쳐지는 주름의 유희 속에서 존재할 따름이다. 2015년부터 시작한 비구상은 설치작품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은 낱장의 것들을 ‘인드라망’처럼 엮어주었다. 


종교 자체가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작가에게 불교는 특히 그러했다. [화엄 B](2021)는 개별 판화를 여러 형태의 오브제에 붙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려는 상황에서도 종이에 찍혀진 무엇이라는 책의 흔적은 남아있다. 그것은 ‘흰 것은 배경, 검은 것은 글자’ 같은 까막눈 식의 독해를 생각나게 한다. 모르는 문자들이 가득한 책을 우리는 심미적으로 보게 된다. [화엄 C,D](2021)에서 펼쳐진 책은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를 화려함과 복잡함으로 가득하다. ‘목판화의 매력은 흑/백’이라고 생각하는 작가에게 금기시된 색이 난무한다. 화려한 색상의 판화들이 오리고 접혀져 쌓여있는 사이로 실들이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이 ‘페이지’는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펼쳐진 책의 비율을 가진 작품은 여러 형태, 색상, 층이 이루는 복잡한 우주를 잇는 하얀 실의 궤적을 가지는 조형적 책이다. 그것은 텍스트로서의 세계이자 세계로서의 텍스트를 말한다,


출전; 해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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