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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를 위하여

장동광

가정해 보자. 만약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신정아씨를 국내 예술감독으로 선정하지 않았다면 작금의 사태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아마도 신정아씨에 대한 예일대 가짜 박사학위 문제제기는 동국대 학내 문제로 일단락돼 큐레이터로서 신씨의 활동은 변함없이 보장됐을지도 모른다. 신정아 허위학력 파문은 허위학력이 문화예술계에 얼마나 만연해 있으며, 일부 대학의 교수채용이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일부 대학의 교수채용 문제점과는 달리 광주비엔날레 전시예술감독은 국내외의 치밀한 검증이 필요한 중요한 자리다. 2년마다 국비·시비·민간지원금 등 100억원의 행사 비용을 집행하고, 전 세계에서 200여 명의 주목받는 작가를 불러 모으는 국제행사가 아니던가. 광주비엔날레는 이제 더 이상 광주만의 행사가 아니다. 그런데 비엔날레 재단은 주로 광주지역 비문화계 인사들로 채워져 있고, 관료문화가 강한 반관반민 조직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예술가, 혹은 전문가를 자처하는 문화행정가들의 독단적 전횡이 비밀스럽게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 재단 이사회 전원사퇴를 몰고 온 이번 신정아 파문 이후에도 재단이 국제화 물결에 합류하기에는 구태의 굴레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신정아씨를 추천한 것으로 드러난 전시예술감독추천소위원회 위원장과 이사장은 물러났다. 하지만 일부 전임이사는 다시 이사진에 포함돼 신정아 감독 선정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애써 회피하고 있다. 또한 비엔날레에 대한 학문적 연구나 현장 경험이 전무한 일부 미술이론 교수들이 새 이사진에 합류한 상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광주비엔날레가 국제적 면모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재단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 원천적으로 전시예술감독추천소위원회는 감독선정의 책임을 질 수 없는 단지 ‘추천’의 기구였다. 따라서 ‘선정’의 문제는 다른 기구를 통해 진행돼야 하는데, 이 소위원회가 모든 절차를 비빔밥으로 처리하고는 그 책임을 이사장에게 전가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일부 이사는 버젓이 새 이사진에 포함돼 얼굴을 내미는 염치없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집행위원회와 같은 권위 있는 이사회에서 공정하게 추천·검증·선정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1, 2차에서 이미 국내외 전시예술감독이 큰 문제 없이 선정될 수 있었다.

여기서 차기 광주비엔날레를 총감독이 없이 국내·국외감독으로 이원화해 추진하도록 주장한 이사가 누구였는지를 밝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는 그간 절차상의 파행적 문제들과 함께 35세의 신정아씨가 검증 없이 국내전시감독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뿌리이기 때문이다. 재단의 내규와 그간의 정황에 따르면 오쿠이 엔위저 국외감독도 복수추천이 아닌 단독추천으로 검증절차 없이 선정된 결정적 하자가 있다. 게다가 오쿠이 엔위저는 최근 ‘주제 없이’ 비엔날레를 치르겠다는 전례 없는 구상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경쟁관계에 있는 상하이비엔날레 자문위원이기도 한 그가 광주비엔날레를 제3세계 행사로 격하시키고, 국제적인 기획자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악용하는 하나의 사례로 남을 소지가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미술전으로서 광주비엔날레의 미래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오쿠이 엔위저 감독선정 문제를 포함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반성과 청산이 없는 역사는 내재된 과오의 싹을 키우는 토양일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비엔날레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단의 전면적인 민간 이양을 포함해 차기 비엔날레 1년 연기, 항구적 국제미술센터로서의 재편, 현대미술가와 전시기획자들의 국제적 무대 진출을 위한 중요한 거점 마련을 위해 방향타를 재조정하는 거국적 논의는 오히려 지금이 적기다.

장동광 독립큐레이터·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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