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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세상> 필람! ‘한국미술 100년’展

오병욱








영화나 TV 드라마에 묘사된 화가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다. 화가는 대개 빵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늘 물고 있으며, 밥 먹듯 술을 마시며, 그래서 기행과 객기를 일삼으며 퇴폐적이고 반도덕적이다. 그리고 이 암담하고 침울한 이미지 속에 천재가 언뜻언뜻 보인다는 식이다. 미술작품 감상은 이렇듯 적절하지 않은 사고의 바탕 속에서 이루어졌고, 개인사적이거나 작품의 기법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술작품은 언어이며 역사-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는 반 고흐와 피카소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반 고흐의 열정적이고 비참한 삶만을 알 뿐, 그가 작품을 그리던 시대와 미술적 전개 상황은 잘 모르며, 피카소의 경우도 결혼을 몇 번 했는가, 얼마나 부자인가가 화젯거리가 되며, 작품기법 위주의 감상일 뿐, 그의 시대와 그의 조형의 의의 등에는 별무관심이다. 미술작품과 작가와 시대와 시대정신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에도, 이렇듯 작품만을 혹은 작가의 기이한 행동만을 문제 삼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조선말의 화가 장승업을 주제로 만든 ‘취화선’이라는 것을 지난번에 쓴 바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의 미술에 대해서도 그릇 알려지고 있는 점이 아직도 있는데, ‘서양미술이 일제를 매개로 전해졌기 때문에 왜곡되어 제대로 된 것이 아니고’, ‘인상주의 아류적인 그림이 대다수’이고, ‘망국의 한을 잊거나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식이다. 이러한 커다란 오해를 불식시킬 만한 전람회가 열리고 있다.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미술 100년’전(展)이다. 10월23일까지 열리는 이 전람회는 내년에 계속되는 1960~2005년전(2부)의 앞부분으로 1905년부터 1959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전람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모범적이다.


우선 기본 입장을 예술작품은 언어이고 역사라는 데에 두고 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웠으며, 당황스러웠던 시기인지를 한 번 상상해 보자. 한 통속에 동양과 서양, 조선과 일본, 구사회와 신사회, 구문화와 신문화, 동양화와 서양화가 공존하고 있었으며, 친일과 항일,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해방과 전쟁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미술이 이것을 체험하고 표현해 내고 있었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이 엄청난 시대를 풀어서 보여주기 위해 전람회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현대미술관은 백화점식 전시방법을 택했다. 1876년 개항부터 1905년 을사조약까지의 시기는 독립협회 운동과 광무개혁(1897)을 보여주는 기록물들과 이미지들, 서양인들이 본 당시 조선의 사진과 판화작품 등으로 대변하게 하였다.


-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케-


1905~1919년 사이의 시기는 계몽과 항일로 규정하고, 계몽운동의 주축을 이루었던 ‘개벽’ ‘소년’ ‘청춘’ 등의 초기 잡지들, 그 표지화들과 삽화들을 진열하는 한편, 독립선언서, 의병장 최익현의 초상, 민영익, 김구, 안창호 등의 서화가 전시되어 항거의 시대상도 동시에 보여준다. 1919~1937년 사이의 기간은 신문화의 명암으로 규정했다. 짙은 어둠을 빈민촌에 드리우며 서구화되어가는 수도 경성의 삶을 사진과 기록영화, 무대설치의 형태로 재현하는 한편, 외양보다는 뜻을 그리는 사의적(寫意的)인 전통미술이 리얼리티에 중요성을 둔 서양미술의 사실주의로 변해가는 모습을, 일본에서 서양미술을 배워 돌아온 미술 선각자들과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활약하던 수많은 일본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나란히 놓고,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리얼리즘을 향하는 전통 수묵화의 변천에다 신문잡지 삽화들의 변천도 보여주고 있다. 짧은 글에 이루 다 소개할 수 없는 이 전시의 미덕은 미술 이미지를 단순 감상용이 아니라, 시대와 시대정신, 사회상을 표현하는 언어처럼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미술 감상을 위한 야심찬 기획이 돋보이는 이 전시는 ‘강추’ 수준이 아니라 ‘필람’(必覽) 수준이다.

- 경향신문 2005.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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