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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포돌이'

오병욱

언젠가 서울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커다란 인형머리의 포돌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행인들에게,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깡충거리는 포돌이는 물론 귀엽고 친절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한 배역 같은 이 캐릭터는 놀이동산에서 느닷없이 뛰쳐나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인사동이 언제부터 준(準) 놀이동산이 된 것도 아니다. 경찰이 인사동을 놀이동산으로 착각한 것도 아닐 것이다. 인사동이 다른 거리들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예술의 거리여서 나왔을지 모른다고 해도, 당황스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현실감각을 깨뜨리는 포돌이는 초현실 그 자체였다. 우리는 놀이동산에서 곰돌이, 여우 등의 많은 캐릭터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초현실적이라 하지 않는다. 행복하고 즐겁기 위해 만든 놀이동산 자체가 일종의 비현실이자 초현실이다. 또 놀이동산은 현실의 우리와 비현실의 동물캐릭터들이 만날 수 있는 완충지대다. 완충장치가 없는 인사동에서 충격적 이질감을 없애려면, 포돌이에게 쫓기는 자는 늑대가면이라도 써야 한다.

-예술의 거리에 깜짝등장-

완충장치가 없을 때는 비현실을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약속이고 기본이다. 이를 어기면 두 세계는 대책 없는 혼란에 빠진다. 질서 유지가 경찰의 임무라고 새삼 상기하면 이 혼란은 즐겁지 않다. 행인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성의인데, 웬 트집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게 더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포돌이가 ‘짠’ 하고 나타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파출소 입구에는 아직도 만화 캐릭터 포돌이가 그려져 있다. 그러고 보니 포돌이는 몇 년 전 관광객을 위한 문화 콘텐츠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홍길동, 이도령과 춘향이 등의 만화캐릭터 광고판들이 지방 도시들의 진입로 근처에 등장한 때에 함께 나타난 것 같다.

그러나 만화가 문화일지는 모르지만, 역사는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 의사(疑似)문화는 놀이동산에 불과하다. 완충지대 없이 가상의 인물이 역사의 인물과 뒤섞이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의 짬뽕이다. 무엇인가 문화적인 것을 세워보려던 의도와는 상반되게, 문화적이기는커녕 비문화의 표상(表象)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경찰서의 로고가 된 포돌이. 경찰은 포돌이를 통해 친절하다는 이미지는 얻겠지만, 질서를 잘 수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의 이미지는 잃는다. 재롱을 떨던 ‘귀여운 가분수’ 포돌이가 갑자기 날쌘돌이가 되어 무질서를 바로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뭇사람들이 파출소 내에서 난동을 부리는 게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과거보다 경찰관을 우습게 본다는 말이다.

상징도안은 단순하지만, 많은 의미와 역사를 갖고 있다. 의미와 역사를 구구절절하고 지루하게 설명하는 대신 한눈에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다. 그래서 그림으로 그려진 상징은 역으로 읽히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정제돼야 한다.

눈을 가린 여인이 들고 있는 저울. 판정에 임해 한 눈 팔지 않겠다는 의미로, 세계적인 법의 상징이다. 그런데 수평을 이루는 저울 그림 위쪽에 난데없이 적·황·녹 색점들이 5개 더해진다면, 이 점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즐겁게 판정에 임한다는 것인가. 인터넷에 올려진 우리나라 법무부 홈페이지 로고를 보면서 얼핏 스쳐간 생각이다. 역시 색점들이 찍힌 서울시 로고나 만화캐릭터 포돌이와 보조를 맞추자는 것일까.

-친절 챙기다 신뢰 잃을수도-

미적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신뢰성에는 손실이 된다. 일터에 나갈 때 거울을 본다. 일에 임하는 자기의 자세를 확인하는 것이다. 상징, 현판, 로고는 그 일터가 어떤 곳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척도다.

상징이 제대로 읽히지 않고 애매할 때 사람들은 그 상징을 우습게 보는 것처럼, 상징의 주체도 우습게 본다. 상징은 미의 화신(化身)이 아니라, 그 주인의 화신이다.

언어처럼 조형언어도 역사와 어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무지할 때 현실과 비현실, 예술과 비예술, 문화와 비문화가 대책 없이 섞이는 즐겁지 않은 혼란이 일어난다.



- 경향신문 200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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