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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11/ 동시대 공공미술의 공론화: 세라의 <기울어진 호> 논쟁(3)

심현섭

공공미술 11/ 동시대 공공미술의 공론화: 세라의 <기울어진 호> 논쟁(3)

III. 미술 담론

1. 자율적 미술 

1980년대 들어 공공미술은 정부의 지원제도 아래 건축 속 미술로서 건축물이 세워진 공간을 장식하는 기능으로 전락하는 추세였다.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서 모더니스트 윤리의 근간을 이루는 기능적 유용성의 이데올로기가 전통적으로 미술과 연결되었던 형식주의적 미의 본질주의를 압도하게 된 것이다. 장소 특정적 공공미술은 ‘쓸모 있는 것’이어야 했다.”(권미원, 2002) 이러한 미술의 장식기능은 미적 형태와는 별 상관없는 실용성에 의해 판단되었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는 미술이 장식과 실용의 기능과 같은 다른 어떤 것에 종속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동시대 건축에 종속되어가는 미술/조각의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특히 조각의 경우, 건축에 시중을 드는 작업을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구조가 모호하거나 도시 디자인의 원칙을 만족시키는 그런 조각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보기에 그런 조각은 항상 매너리즘의 양상을 띠게 되거나 기존 미학의 현재 상태를 강화할 뿐이었다. (…) 나는 비실용적이고 비기능적인 조각에 관심이 있다. (…) 어떤 용도도 오용일 뿐이다.”(Richard Serra, 1980) 

세라는 미술이 미술 밖의 어떤 존재에 의해 정당화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건축과 맺는 관계에서뿐 아니라 미술이 정치, 경제(자본주의), 미디어, 오락의 일부가 되는 것에 저항하였다.(Robert Storr, 1985) 

2. 공공미술 제작의 주체로서 ‘대중’의 권리  

<기울어진 호>를 계기로 그 이전부터 진행해오던 작가의 특권적 지위의 해체는 기정사실화한다. 이는 곧 대중의 지위와 권력이 작가의 그것을 대체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이 점이 당시 담론으로 떠오른 새 장르 공공미술과 대립하는 부분이다. 새 장르 공공미술은 작가의 특권적 지위 대신 대중의 지위를 더 중요시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대체는 현실적으로 법적 규정의 강제적인 힘의 행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기울어진 호> 논쟁 이후, 미국 연방 및 지역행정에서 작품제작에 있어 대중의 참여를 강화하라는 지침이 세워진다. <기울어진 호> 논쟁에 대한 미국 법원의 철거 판결은 미술계와 연방광장의 이용자들이라는 두 공공의 갈등 사이에서 시민의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로서 작품의 존재에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던 모더니즘적 상황은 급격히 흔들린다. 향후 공공미술은 제작과정 뿐 아니라 그 평가에 이르기까지 시민, 관람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했고, 이는 작가의 절대적 권위의 해체를 의미했다. 
이와 관련하여 마이클 켈리(Michael Kelly)는 세라의 비민주적 태도, 즉 작가의 절대적 권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태도를 지적한다. 이후, 세라의 같은 작업이 미국에 의해 덜 민주적인, 대중의 간섭을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정부를 가진 국가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세라의 작업 수행 방식과 관점이 비민주적이지 않겠냐는 것이 켈리의 주장이다. 이런 면에서 <기울어진 호>는 작가의 권위 유지에 정부나 기관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약화되고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3. 장소의 추상적 기호화 

<기울어진 호> 논쟁은 세라의 장소를 물리적 요소에서 ‘동요’라는 개념적 요소로 인식하게 하는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세라의 작업에서 장소 특정성은 미술작품과 그 장소 사이의 동요(discomposure)로서 성립한다. 이러한 동요는 … 미술과 건축의 보완적 병치 … 미술과 건축 사이의 완벽한 연속성 개념 모두에 반대하면서, 연방광장과 같은 공공공간에 깔려 있는 억압된 사회적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내 관람 주체들로 하여금 이를 지각하고 의식하게 하고자 한다.”(권미원, 2002) 

세라 또한 이러한 동요를 어느 정도 의식한 듯하다. 더글러스 크림프(Douglas Climp)에 의하면 세라는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대지미술과 같이 너무 광대한 자연을 대상으로 한다거나 대중과 괴리되어 작업하는 방식 대신 “상처 받는 일이 더 많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과 상황을 다루는 작업을 선택했다(Richard Serra, 1989). 이처럼 장소가 동요라는 개념적 요소로 변함으로써 장소는 사회·정치적인 기호를 함의한다. 이제 장소 특정성은 더 이상 물리적 장소에 대한 적합성, 조화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장소와 대중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에서 비롯한 사회정치적 갈등을 지시하는 기호의 의미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장소의 기호화는 미술이 실제적인 장소와 밀착했던 모더니즘의 장소 개념의 종말을 가리킨다. 권미원에 의하면 이는 이미 미학적, 정치적으로 고갈 단계에 이른 것으로 간주되는 과거 세라 식의 실증주의적인 장소 특정적 미술과 현재의 실천을 차별화하려는 욕망의 노출이기도 했다(권미원, 2002). 

그러나 <기울어진 호>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제도적·사회적·미술적 논쟁의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 향후 합당한 논리와 실천력으로 동시대 공공미술의 담론을 주도해나가는 ‘새 장르 공공미술’의 부상에 있다. 

(다음: 공공미술 12/ ‘새 장르 공공미술’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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