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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10/ 동시대 공공미술의 공론화: 세라의 <기울어진 호> 논쟁(2)

심현섭

공공미술 10/ 동시대 공공미술의 공론화: 세라의 <기울어진 호> 논쟁(2)

II. 사회적 쟁점    

1. 미술과 사회 

<기울어진 호> 논쟁은 공공미술에 대한 대중의 주체성, ‘공공’ 개념의 민주화, 미술의 일상화와 사회성을 더 진지하게 요구하였다. <기울어진 호> 논쟁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과 지역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예술이, 즉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 외에 어떤 고려 없이 순수한 자유와 철저한 자율성의 개념을 기반으로 한 미술이 공공의 선이라는 의미에 공헌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Suzi Gablik, 1991). 이와 관련하여 존 비어즐리(John Beardsley)는 사회적 관심사를 다루는 공공미술을 강조하면서 ‘공공장소의 미술’과 ‘공공미술’을 구별한다(John Beardsley, 1981). 한마디로 공공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 공공미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공공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기존 힘의 구조가 가진 허울을 드러내고 후기 자본주의 도시의 타고난 속성이 획일화에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는 로잘린드 도이치에게 <기울어진 호>는 여전히 도시 담론에 이르지 못하고 미학적 차원에 머문 ‘공공장소의 미술’인 셈이다(Rosalyn Deutsche, 1988). 막시모비츠의 평가는 더 가혹하다. 그는 “이 조각이 좋은 미술이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예술가-지역사회의 관계에서 <기울어진 호>는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결론지었다(Virginia Maksymovicz, 1995). 이런 비평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 <기울어진 호> 논쟁은 ”우리는 어떻게 미학의 영역을 넘어서 사회적 요구에 공헌하는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술은 어떻게 일상 경험의 의미 있는 부분이 될 수 있을까.”(Mary Jane Jacob, 1995) 라는 질문을 유언으로 남겼고, 그 목소리는 지금도 공공미술의 현장에서 선명히 울리고 있다.

2. 관람자 교육의 필요성 

세니는 <기울어진 호>를 철거하라고 주장하는 대중이 세라의 조각을 예술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어떠한 프로그램이나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 사실을 지적한다(Harriet F. Senie, 2002). 미술에 대한 대중의 무지가 <기울어진 호> 철거로 이어졌다고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교육은 계몽과 선동의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특히 선택적 관람자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미술로서는 위험요소가 있다. 막시모비츠는 공공미술은 일반 대중이 알기 쉬운 미술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술에 관해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심지어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 폭넓은 관객에게 어떻게 말을 거느냐 하는 것은 공적영역에서 작업하고자 하는 미술가들에게 하나의 쟁점이다.”(Virginia Maksymovicz, 1990) 이처럼 막시모비츠는 공공미술의 관객인 대중의 폭넓은 다양한 관점에 주목하면서, 이와 같은 대중이 얼마만큼 이해하느냐가 공공미술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기울어진 호>는 미술의 공간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강요한 측면이 있다. 

“ … 나는 광장의 장식적인 기능을 재정의, 혹은 대체하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조각의 맥락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 작품이 들어선 후에 그것이 놓인 공간은, 무엇보다도 조각의 기능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Richard Serra, 1980)

세라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각을 장소의 부속물이나 장식품이 아닌, 해당 공간의 주체로 인식시키려 했다. 그러나 <기울어진 호>는 그런 인식에 앞서 대중들에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서 거부감을 일으켰고 도보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다가갔다. 여기에 사회정치, 미학적 갈등을 담은 기호적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공공미술의 딜레마가 있다. 하지만, 대중이 수용할 만한 형태의 미, 주변 환경과 맺는 조화로운 배치와 같은 물리적 조건이 전제되지 않는 한, 공공미술의 담론적 목적의 달성은 더 요원해진다. <기울어진 호> 논쟁은 적어도 공공미술에서 관람자의 교육은 대중이 수용할 만한 물리적 조건(형태)을 충족한 이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3. 도시공간에 대한 대중의 욕구 조율   

1980년대 뉴욕은 도시재개발 상황에 있었다. 뉴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감에 따라 정부의 주도 아래 체계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적인 경제 도시로 부상하였다. 70년대 이후 뉴욕주는 기존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도로와 거리를 정비하는 광범위한 도시 재개발에 착수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뉴욕은 자본주의의 폐해 즉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인한 인간소외, 기능적 건축의 범람으로 인한 장소의 획일화, 천박성 등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하였다. 이러한 도시 모습에 지친 시민들은 새로운 도시 공간을 꿈꿨고, 개발자들 또한 이를 개발의 명분으로 활용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대중의 공간에 대한 오랜 왜곡된 욕구와 불만이 공간의 풍경부재(vistalessness)를 부각시켰던 한 점의 조각, <기울어진 호>를 향해 분출하였다(Gregg M. Horowitz, 1996). <기울어진 호>가 설치된 연방광장 또한 아름다운 공간이어야 한다는 꿈, 그러나 한 번도 실현되지 않았던 욕구로 가득 찬 곳이었다. <기울어진 호>는 이러한 대중의 기대를 저버렸고 심지어 거부감을 자극하였다. 호로위츠는 뉴욕의 대중들은 도시개발을 합리화하기 위해 개발론자들이 퍼뜨린 새로운 공간에 대한 환상에 젖어 <기울어진 호>가 자신들의 공간에 대한 꿈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막연한 거부감으로 <기울어진 호> 철거에 찬성하였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밝히는 진실은 공공미술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장소에 속한 대중의 공간에 대한 욕구 파악의 중요성과 함께 공공미술이 공간과 사회, 사람의 삶 사이에 정착하는 공적 영역의 미술이라는 점이다. 

4. 예술의 검열 

크림프에 따르면 국가는 대중과 권력이 겪는 갈등을 거짓으로 화해시키는 역할을 미술가에게 요구한다. 이 역할을 거부했을 때 국가의 검열이 대가로 돌아온다. 그는 민주적 절차로 가장한 국가의 강압적 권력이 <기울어진 호>를 압박했다고 주장한다(Douglas Crimp, 1986). 세라는 특히 미술가의 자유로운 발언권을 정부가 검열의 대상으로 삼아 뺏어갈 수 있느냐의 문제를 제기했다. 즉 <기울어진 호>가 철거되면서 자신의 자유로운 발언권마저 빼앗겼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 역시 논쟁적이다. 세라가 어떤 화해의 역할을 했는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어쨌든 논쟁 초기에는 세라와 대중이 겪는 갈등 사이에서 국가가 조정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또한 논쟁과정에서 보여준 세라의 작가 주체적 태도, 조각의 자율성을 앞세운 완고한 주장과 태도는 대중과 정부의 거부감을 증가시킨 부분이 있다. 세라의 주장대로 확실히 <기울어진 호>에 대한 법정 공방 이후 1년쯤 되었을 1986년 봄 무렵에는 뉴욕도시와 여타 도시들에서 공공미술 과정에 공동체의 참여를 유도하라는 지침이 좀 더 진지하게 다뤄졌다(권미원, 2002). 세라는 이러한 지침이 정부의 지원을 받은 작품이 언제라도 정부의 의도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Richard Serra, 1991). 이처럼  작품에 대한 정부의 검열이 나라 전체의 창조의 자유를 위협하는 냉각효과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기울어진 호> 논쟁의 주된 논의 주제 중 하나였다(Robert Stor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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