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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이종무, 따듯함과 차가움 다 갖춘 충청도 양반

김정



김정, 이종무 선생 60세 때 모습




이종무, 즉석에서 김정을 그린 드로잉



이종무 선생이 써준 원고 원본필체


K대 출강 시절, 강사휴게실에서 매주 목요일 김원, 이종무 두분을 만났다. 1989년 9월 14일 이날은 두 분 모두 무거운 표정이 셨다. 잠시 후 이종무 선생이 “김형, 이 대학에 기분 나빠 안나올거요” “왜요?” “C교수는 이곳의 터줏대감이잖아, 미술과를 창설한 분인데. 그런 분을 쫓아내려는….” 옆에 있는 김원 선생도 “정말 기분 나쁜 얘기네, 지네들 을 키워줬는데.” 그 이후 두 분은 강사실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종무(1916-2003) 선생은 평소 구수한 농담도 잘하시며 유머 감각이 풍부한 충남 아산의 양반 기질인 분이었다. 그러나 정도를 벗어난 불의를 보면 날카롭게 지적하며 바로잡는 선과 악의분별도 갖췄다. 내가 이 분을 가까이 뵌 건 청소년미술대회 심사 하면서다. 그 후 미협선거를 앞두고 김서봉 선생의 소개로 1978년 이후 여러 번 커피타임 말석에 동석했다. 특히 1980-81년 미협선거를 앞두고 박영선씨 출마설로 긴장하던 바쁜 시기였다.

그 후 나는 독일로 떠났고, 나중에 선거결과를 보니 총투표자 437명 중 이종무 257표, 최기원 175표로 이종무 선생이 새 이사장 되신 걸 알았다. 10년 뒤 이 선생 작업실이 강남구청 앞으로 옮긴 뒤부터 자주 만나뵀다. 날 귀엽다고 하셔서 늙은 제 모습이 뭐가 귀여우냐고 물으니 “김형 수염은 예쁘게 난 게 귀여워”라며 껄껄 웃으셨다.

어느 날 내게 전화가 왔다. “김 교수, 오늘 나하고 젓가락질로 후루룩이요, 아니면 숟갈로 짭짭할 거요?” 그건 짜장면이냐 국밥이냐를 돌려서 말씀하신 센스다. 평소에도 유머가 넘치는 분이였다. 

난 역삼동 집에서 금방 작업실로 갔다. 이종무 선생 작업실 책상은 글 쓰시던 원고지로 흐트러진 채 복잡했다. 작업실에서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은 뒤, 차 한잔 마실 때 “내가 김형한테 부탁이 하나 있다오” “말씀만 하시면 제가 도와드리죠” “옳지, 김교수와 난 속 깊은 얘기하는 사이니까 바로 얘기할게.” 책상 위에 있던 원고지를 보여주시며 “이걸 김 교수가 도와주면 좋겠는데…” “그런데 원고지에 뭔가 연필로 쓰셨네요” “응, 이건 옛날 H대시절 제자인데 개인전을 해요. 이 젊은 친구는 내가 써준 서문을 꼭 팸플릿에 넣겠다는 거요. 그러니 난들 사랑하는 제자를 어찌 거절하는가. 허허허” 

“아, 그래서 서문 쓰시는 중 이군요” “응, 쓰려면 쓸 수 있겠지, 그러나 김 교수가 내가 된 입장에서 잘 풀어 써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불러낸 거요. 눈도 점점 안 보여. 그렇다고 이걸 아무나 써달라고 부탁할 순 없지.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나하고 마음 주고받을 만큼 신뢰하는 김 교수에게 부탁 좀 하는 거요” “어휴, 저같이 어린 사람을 신뢰하시고 인정해 주시니 감사하지요. 자세히 말씀 좀 해주시면 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나는 그 원고를 이 선생 작업실에서 약간 손 좀 보고 끝내려 했더니 철자법 틀린 게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내가 원고를 보는 사이 이 선생은 뭔가 연필로 그리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고 읽는 내 얼굴을 스케치하셨다. “여보, 내가 그린게 어째 김정을 안 닮았네~ 할 수 없지. 허허허허.” 원고가 복잡해서 나는 집에 갖고 와 다시 깨끗이 이틀 만에 완성하여, 1990년 6월 22일 화실에 전달했다. 받아 읽어보시곤 “고마워요, 내가 쓰기 귀찮아서가 아니고 더 좋은 글을 사랑하는 제자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야. 허허허.” 평소 바른 소리를 거리낌 없이 하시는 차가운 성격이지만, 어린 제자에겐 부모 같은 정성으로 사랑하며 북돋아 주시는 온정을 느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논문 쓴 교수가 드문 건 나도 다알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지.” “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를 그리신 걸 보니 궁금해서 한 말씀 여쭤봐도 됩니까? 그림은 어떻게 배우셨는지요. 크로키를 보니 생각나서요.”

“아아, 난 옛날 춘곡선생이 나보고 책도 많이 보라고 했지, 그분은 우리 할아버지와 친구였는데 내게 데생지도를 해주셨지. 그 뒤 신홍휴 선생 지도를 받았고. 어느 날, 나보고 “봄, 여름, 가을처럼 변화되는 풍경도 좀 그려봐. 맛이 달라”라고 지도해주셨다고. 또 국전에 출품해보라 해서 “경복궁의 향원정을 열심히 그려 냈더니 당선됐고, 그다음부턴 나도 계속 그렸지. 그게 시작이었다오”라고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요즘은 눈이 자꾸 잘 안 보인다오. 나도 세월따라 늙어가나 봐, 허허허” 그 이후 선생의 구수한 웃음소리는 더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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