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67)문화는 잠자는 영혼을 바늘로 깨우는 것-강익중의 예술관

정중헌

멀티플 아티스트 강익중은 1994년 백남준과 함께 미국 휘트니 아메리칸 미술관에서‘멀티플/대화’를 주제로 한 2인 전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백남준은 강익중을 아들처럼 아꼈고, 강익중 또한 백남준의 비빔밥론을 다문화 예술로 발전시켰다. 뉴욕에서 활동중인 강익중이 4월 중순 일시 귀국해 서울예술대학에서 특강을 했다. 서울 광화문 복원 현장 가림막을 자신이 직접 그린 수천점의 달항아리 작품으로 설치해 세계 최대 작품이란 평을 받기도 한 그는 국제적인 아티스트답게 내한 일정도 빡빡했다. 첫 과제는 스승 백남준과의 연을 잇는 일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중앙의 백남준 비디오 아트 작품‘다다익선’을 에워싼 나선형 계단 전체를 3인치 작품으로 설치하는 일을 맡아 실측을 했다. 조선시대 화가 표암 강세황의 16대손인 강씨는 전통과 현대 300년을 잇는 기획전을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서 열기 위해 도자 작업도 탐색중이다. 또 오는 10월 경기도미술관에서 어린이 그림으로 특별전을 열기 위한 회의에도 참석했다. 강익중은 이렇게 바쁜 틈을 내‘문화와 나’라는 주제로 예대생들에게 문화와 예술이 무엇이며 예술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대화식으로 강의했다.

백남준의 호기심과 비빔밥론을 강조한 강씨의 예술론을 들으며 1984년 6월 금의환향한 백남준과의 단독 인터뷰가 떠올랐다. 예술이 무엇이냐는 원초적 질문은 그는“싱거운 인생에 양념을 치는 행위”라고 받아 넘겼다.<-전위예술이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신화를 파는 예술이지요.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한 실험이기도 합니다. 룰(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지요.”

-정상적인 눈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일텐데요...
“그래서 무당이니 파괴주의자라고들 하지요. 저 역시 행위예술을 하다가 체포 당한 일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앞서 가는 예술을 대중은 따라갈 수 없지 않습니까?
“어느 시대나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입니다.”

-그럼 대중은 소외되고 마는 것 아닙니까? 늘 따라만 가다보니 뭐가 뭔지 모르고 속는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예술이란 반은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것이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예술은 사기’라는 말은 이렇게 튀어나와 인구에 회자되었고 백남준의 많은 어록 중에서도 가장 유명해졌다. 당시 백남준은‘매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인문학적 지식을 쌓아야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강익중도 특강에서 호기심을 강조했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잠자는 내 영혼을 바늘로 깨우는 것이다. 문화인은 나의 위치, 민족의 위치, 세계의 위치를 파악하는 사람이다. 나를 통해서, 세계를 통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문화라고 본다.”

-예술가들은 무엇인가?
“예술가들은 무당들이다. 작가의 길 또한 무당의 길이다. 무당의 조건은 희생과 책임과 유연성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 역시 자기를 낮추고 본분을 다해야 하며 유연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문화의 특질은 비빔밥으로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를 혼합하는 것이야말로 유연성이라고 본다.”<예술가의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방법론은?
“작가는 작품에 빠지지 말고 빠져 나와야 한다. 책이나 영화,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빠져들지 말고 거기서 나와 음미하고 분석해야 한다. 피카소는 한창 그림이 잘 그려질 때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그렸다고 한다. 기교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좋은 작가는 날개를
펼 때 균형이 맞아야 하고 전체를 바라보고 목표 지점을 미리 정해 그에 따른 급유를 하고 날 때도 바람을 타기보다 바람을 안아야 한다. 끝을 볼 줄 알아야 명작가 명감독이 된다.”

-예술가는 많아도 진정한 예술가는 드물고, 작품은 많아도 명작이 많지 않은 이유는?
“물을 틀고 물을 받는 것 못지않게 물이 빠질 통로를 열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작품에는 강약과 리듬이 있고 채움과 여백이 있어야 한다. 빈 곳을 남겨놓고 마지막에 뒤집어 반전시키는 묘미가 있어야 예술이 생동한다. 백남준은 쿠킹(반전)을 잘한 작가다.”

-예술 지망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예술가는 서커스에서 외줄 타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외줄을 탈 때 장대가 길수록 균형감을 살릴 수 있다. 장대의 한쪽은 과거의 전통이고, 장대의 또 한쪽은 미래의 비전이다. 이 장대의 길이가 과거로 1000년, 미래로1000년이 된다면 굉장히 지름이 큰 그릇이 될 것이다.”

강익중은 예비예술인들에게 매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미칠 듯이 탐구하고 실험하면서 신명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안테나를 자신을 향해 달고 멀리 보며 자신을 보라는 그의 당부는 우리 예술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