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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매화를 기리며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63)

입춘이 지났으니 남녘에서 올라오는 봄소식도 머지않았다. 빙설리에 핀다는 매화가 가장 먼저 봄을 알릴 것이다. 매화는 그림으로 먼저 왔다. 문봉선의 ‘문매소식(2.9-2.27, 공아트스페이스)’과 이호신의 ‘화신(2.7-2.15, 토포하우스)’이 그것이다. 문봉선과 이호신은 각각 다른 방식을 지니면서도 봄의 전령으로 매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문봉선은 매화만을 그렸지만 이호신은 매화 외에도 다양한 꽃그림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다같이 현장에서 매화를 실사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매화그림이 갖는 관념적 형식에서 벗어나있다. 문봉선은 오랫동안 매화가 필 무렵이면 섬진강가 매화마을을 찾아가 사생을 해왔다. 이호신은 매화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의 명소를 찾아 사생에 일념 해왔다. 소나무만을 다룬 사생전도 가진 바 있다.

매화는 예부터 문인사대부들이 좋아하던 화목이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합쳐 세한삼우라고 하여 그림과 시의 소재로 즐겨 다루었다. 여기 몇 편의 시와 시조를 옮겨본다.




“매화는 눈과 같고, 눈은 매화 같은데
흰 눈이 내리기 앞서 매화가 활짝 피었네
하늘과 땅 사이 맑은 기운 일색이나
내 반드시 눈 밟으며 매화를 보러 가리다”
- 서거정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 차가운데
매화가지 위로 둥근 달이 떠오르네
청하지 않아도 미풍이 불어와서
맑은 향기 저절로 온 뜰에 가득하네”
- 이 황

“새 봄이 오단말가 매화야 물어보자
눈바람에 막힌 길을 제 어이 오단 말가
매화는 말이 없고 봉오리만 맺더라”
- 한용운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이육사 <광야>중에서





또 산문(수필) 가운데는 김용준의 <매화>가 뛰어나다.


“댁에 매화가 구름같이 피었더군요. 가난한 살림도 때로 운치가 있는 것입디다. 그 수묵빛깔로 퇴색해버린 장지도배에 스며드는 묵흔처럼 어렴풋이 한 두 개씩 살이 나타나는 완자창 위로 어쩌면 그렇게도 소담스런 희멀건 꽃송이들이 소복한 부인네처럼 그렇게도 고요하게 필수가 있습니까...매화를 보기 위해 십리나 되는 비탈길을 얼음 빙판에 콧방아를 찧어가면서 그 초라한 선생의 서재를 황혼가까이 찾아갔다는 이유도 댁의 매화를 달과 함께 보려함이었습니다”
- 김용준 <매화>중에서


매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그림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로부터라고 한다. 조선조 시대에는 심사정, 김홍도, 조희룡, 장승업이 뛰어난 매화그림을 남기고 있다. 매화그림의 요체는 늙은 등걸과 성긴 가지, 그리고 가지 가운데 띄음띄음 몇 개씩 꽃이 피는 것을 품위가 있는 것으로 보았으며 활짝 핀 꽃보다 봉오리를 더 높이 샀으며 보름달을 배경으로 뻗은 가지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모양을 가장 품격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예외적이게도 조희룡의 매화는 온통 화면 가득히 활짝 핀 꽃으로 환상적인 화격을 보이고 있다. 문봉선의 매화는 순결한 기품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호신의 매화는 직정적인 감동을 앞세운다. 이들의 매화가 사생에 의한 것이어서 그만큼 생동감을 주는 것도 지나칠 수 없다. 갓 잡아온 물고기처럼 펄펄 뛰는 맛이다. 그러나, 그것을 상에 올리기 위해선 요리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각기 자기 나름의 양식화과정을 거쳐 관념의 재창조경지에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누구나 보고 그릴 수 있는 매화가 아니라 자기만이 그릴 수 있는 매화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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