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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구립미술관에 대해

오광수

최근에 문을 연 <성북구립미술관>을 찾았다. 아직은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좀 더 가꾸어야 할 부분이 많은 모양이다. 요란스럽게 개관행사를 하지 않은 걸 보니 내실을 다진 후 천천히 공개하려는 신중한 조치가 엿보인다. 내용이야 어떻든 구립미술관이란 명칭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우리도 벌써 구립미술관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뿌듯한 기대를 갖게 한다. 90년대 초반일까, 일본에서 구립미술관이 개관되는 걸 보았다. 우리는 겨우 국립, 시립이 세워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벌써 구립까지 만들어지는 일본의 미술문화의 상승기류가 너무나 부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다가야 구립미술관이니 매구로 구립미술관은 시립이나 현립에 못지않게 소장품도 소장품이려니와 기획전이 알찼던 인상이다. 지방자치제가 발달한 지역이 갖는 문화예술의 인프라가 구체적인 결실을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우리는 언제 이렇게 될까 하는 부러움과 자탄이 교차된 감정을 지녔던바있다. 그런데 그런 부러움의 대상이 우리에게서도 실현되었으니 어찌 감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성북구립미술관은 그렇게 기대에 부응된 곳이라곤 말할 수 없다. 미술관으로서의 조건은 어느정도 구비한 것 같으나 내용이나 규모나 분위기에 있어 짜임새가 결여되어있다. 구립이란 한계 때문일까. 구 단위의 재정으로선 미술관을 제대로 운영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성북구립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는 소상히 알길 없으나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 지역의 미술가들의 열망과 노력의 결실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내용물인 작품들이 지역 미술가들의 기증이나 대여에 의하지 않고는 채울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분적으론 구입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예산이 책정되지 않고는 고가의 미술작품의 구입은 불가능하다. 국립이나 시립이 우수한 작품의 수장에 언제나 전전긍긍하는 것도 충분한 구입예산이 책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이나 시립이 그럴진대 구립은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미술관은 작품이 생명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건물이 지어진다고해도 소장품의 내용이 빈약하면 미술관으로서의 격은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건물은 번듯한데 비해서 내용물은 너무 빈약한 편이다. 언제나 하드웨어를 먼저 상정하고 소프트웨어는 나중에 생각하는 행정시스템의 맹점 탓이다. 작품(내용물)이 모아져서 이를 담을 공간을 만드는 것이 순서다. 그래서 내용물의 특징이나 성격에 따라 건물이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일정한 소장품이 없을 경우, 건축과 소장품의 구입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대개의 건축추진위원회는 미술관이 완공되었을 즈음에 내용물인 작품수랑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지게끔 스케줄을 짜는 것이다. 텅 빈 공간으로 미술관이 완공되는 것이 아니라 이속에 담기는 작품의 수집과 더불어 완공되는 것이다.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에 못지않게 작품 구입비가 책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구립미술관의 위상과 기능,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경우는 건축부터 지어놓고 보는 것이 태반이다. 과시적 행정이란 것이 이를 통해서도 엿 볼 수 있다. 행정위주 한건주의란 말이 이래서 생겨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타성에 너무 젖어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이 그런대로 작품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 미술가들의 적극성에 기인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처음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걱정스럽다. 계속 기증이나 대여에 의해서만 공간을 채울 것인지.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 내용물이 빈약해지거나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계속 지역미술가들의 작품만으로 채운다는 것도 식상하기 마련이다. 국립, 시립이 하나씩 밖에 없는 서울의 미술환경을 생각하면 구립미술관의 역할이 결코 작을 수 없다. 이즈음해서 구립미술관의 위상이나 기능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검토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본다. 우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쾌적하고 짜임 새있는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국립이나 시립이 하는 기획전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기보다 구립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획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뛰어난 기획은 꼭 예산이 많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적은 예산으로서도 알차고 특징적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오늘날 미술관은 반드시 전시 위주가 아니란 점에도 착안하여 미술과 연계되는 다양한 문화를 차용하고 이를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패러다임으로 가꾸어 갈 필요가 있다. 특히 성북동지역은 과거부터 미술가, 문학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김용준, 김환기, 이태준 같은 화가와 비평가와 문인들이 어우러져 한 시대의 문화를 창조했던 곳이 아닌가. 여기에 만해 한용운의 유적도 보존되고 있지 않은가. 성북구립미술관은 최초의 구립미술관으로서의 역할과 이미지를 지녀야하는 만큼 기대도 크지 않을 수 없다. 바라건대 한 시대 독특한 미술문화를 꽃피우는 장소로서의 성북 구립미술관이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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