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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려한 창공의 별밭을 가꾸던 화가 이성자

오광수

1965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의 첫 국내전을 갖기까지는 이성자란 화가의 이름을 아는 이는 극히 한정된 몇 사람밖에 없었다. 프랑스를 다녀온 미술사학자 최순우선생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한국의 여성작가가 있다는 말을 해왔을 때도 그가 어떤 작품을 하고 어떤 경력을 지니었는지는 알길이 없었다. 그 무렵에 서울대 교수 회관에서‘이성자전’이 열림으로써 비로소 그의 작품을 대할 수 있었고, 그의 예술세계가 지닌 내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여러차례 개인전을 가진바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두 번이나 초대전을, 갤러리현대에선 몇년에 걸쳐 꾸준하게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유화뿐 아니라 목판화, 도자기작업, 인스톨레이션 등 그의 작업 전 영역에 걸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의 활동도 가히 눈부시다고 할 정도로 왕성한 것이었다. 나는 취재차 파리 칸딘스키광장에 면해있는 그의 화실을 두 번이나 방문한 적이있고, 남불 뚜레뜨의 화실도 찾아 갔었다. 화실에는 작품들로 꽉 차있었으며, 전시 스케줄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도 프랑스로 진출한 우리나라 미술가로는 가장 오랜기간 그 곳에서 활동했을 뿐 아니라 가장 뛰어난 명성을 획득한 이도 그가 아닐까 생각된다. 3월10일 그의 부음을 접하면서 대표적인 이 시대 미술가 한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남에 있어 아쉬움과 더불어 새삼 그의 예술세계를 되돌아 보게 한다. 이성자 선생의 화가로서의 역정은 다른 미술학교 출신들과는 다르다. 평범한 가장주부였던 그가 프랑스로 진출하면서 미술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처음은 생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데뷔는 56년 첫 그룹전의 참여로 이루어지며 이어 58년에 파리라라방시 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통해 각광을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위상을 다지게된다. 그의 작품이 지닌 섬세하면서 도격 조높은 개성의 작업을 펼쳐보임으로써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이 무렵의 작품은 치밀하게 직조되는 선조의 구성으로 잔잔하게 반향하는 전면화속에 원형, 반원,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호를 아로 새기는 것이었다. 화문석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산 위에 올라가 들녘을 내려다보는 평면화된 풍경느낌도 주었다. 작가자신은 밭을 경작하는 작업에 자신의 화면을 비유시켰다. 유화작업과 더불어 59년부터 시작된 목판 작업은 그의 예술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게 한 계기가 되었으며 여러매체를 통해 자기세계를 펼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의 전체작품을 일벌해본다면 대체로 세 개의 시대로 변화의 양상을 점검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후반에 이르는 초기의 섬세한 선조의 구성작업으로, 둘째는 69년 미국여행을 계기로 나타난 <중복>시리즈의 시기로 80년대 전반까지를 포괄한다. <중복>시리즈는 70년대 이후의 <도시> 연작으로 이어지면서 종전의 평면적인 구성에서 한결 다이나믹한 입체적 구성으로 추이되는 경향을 통칭한다. 대지에서의 탈출이 거대도시공간으로 이어지면서 화면은 더욱 탄력을 지니는 변모를 보여 주었다. 그의 전형적인 기호라 할 수 있는 원과 타원, 그리고 요철로 물리는구성패턴이 중심을 이루어갔다. 이어 등장된 이미지가 <극지로가는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시베리아 상공을 지나면서 내려다 본 얼음으로 뒤덮인 산야의 독특한 풍경을 극지라했으며 이는 그의 또다른 창공으로의 상상력을 키운 것이 되었다. 파리에서 서울을 오는 항로가 알라스카를 경유했던 시절, 상공에서 내려다 본 지상의 풍경은 신선하면서도 경이로운 것이 었다. 작업장이 있는 프랑스와 고향인 한국을 오가면서 그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이 풍경을 통해 터득해간 것이 아닌가 본다. 그의 만년은 남불 뚜레트에서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니스 근교에 있는 산간마을, 목동들이 사용하던 버려진 돌집을 사들여서 화실로 꾸미고 나중엔 자신의 독특한 기호인 요철의 원형구조로 새롭게 화실을 짓고 생활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근작을 두고 아득한 창공의 별밭에서 새로운 꿈의 정원을 가꾸겠노라고 했다. 그 곳에 주막을 짓고 친구들과 한 잔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제는 화려한 별밭을 가꾸는 천상의 시인이 되어 우리들을 내려다 보고 있을 것이다.
It wasn’t before her first solo exhibition in Seoul in 1965 that Sungja Lee’s name became known to the public. During the 50’s she turned into an artist from the average housewife she used to be, and gained reputation in the French artistic community. Ever since 1965 she has held numerous exhibitions in Korea, such as 2 invited exhibitions in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of Korea and regular personal exhibitions at the Hyundai gallery. Her works are delicate and depict an elegant abstract universe. Her abstract work expressed through the details of fabric and the dense intersection of lines, evolved in the 70’s to demonstrate a more dynamic and industrial style. Her last pieces were that of a resplendent flying object, drifting above the iced surface of the Siberian fields. Thus she created a fantastical space reflecting on her past life and flights between her studio in France and Korea. A message bearing the news of her death in the studio in southern France arrived on the 10th of March. A representative female artist has left us. From now on she will look down upon us as a celestial poet amongst the stars.

- Oh, Kwang-Su art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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