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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김기창 탄생 백주년 기념전

오광수

2013년은 근대 대표적인 세 작가의 100주기가 되는 해였다. 김환기, 이쾌대, 김기창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김환기가 환기미술관에서 100주기전을 가진 것 외에는 이쾌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릴 것이란 소문만 있었고 유족의 사정으로 불발되었으며 김기창은 운사회가 인사동 가나아트에서 조촐한 기념행사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쾌대의 100주기가 실현되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김기창의 기념전이 열리지 않는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난 10월 중순에 서울미술관에서 김기창 100주기(2013.10.17-1.19)가 마련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김기창, 예수의 생애-아기예수의 탄생, 1952-1953, 비단에 채색, 63×76cm


사후에 작품이 잘 간수되고 예술세계가 끊임없이 재조명되는 경우(김환기)와는 달리 작품이 흩어지고 제대로 재조명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김기창)는 그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우리 미술사에서도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다작이라고 할 만큼 많은 작품을 남겼고 왕성한 실험의욕으로 생애를 점철했던 운보의 경우 그 불행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비록 회고적인 내용은 아니었으나 운보의 독특한 내면을 살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기회여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예수와 귀먹은 양’이란 명제에서 시사되듯 청각 장애인으로 일찍이 기독교에 귀화한 운보의 삶이 투영된 작품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새삼스러운 감명을 안겨주었다.

중심을 이룬 작품은 예수일대기이다.(30점으로 이루어진 예수생애) 이 작품은 1954년 4월 화신백화점화랑에서 ‘김기창 성화전’으로 처음 열리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전시된 바 있다. 작품이 제작된 것은 6.25동란 중인 52년 피난지 군산에서였으며 제작 기간만 1년이 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란 중에 제작되었다는 것은 의도나 상황의 특수성을 반영해주고 있다. 민족상잔의 가혹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의 일대기를 구현함으로써 능히 난국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신심의 결정이었다는 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의 절실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먼저 상기할 수 있다. ‘내 심혼을 바친 갓 쓴 예수의 일대기’란 글 속에서 운보는 제작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어두운 동굴 속에는 한 줄기 빛이 어디에선가 비껴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빛줄기 아래에서 예수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있었다. 통곡을 끝내고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나는 동굴이 아닌 햇살이 눈부신 방에앉아 화필을 들고 있었다.”

예수 일대기는 기독교 토착화를 감동있게 구현
종교적인 도상이란 일정한 약속을 지니고 있다. 종교적인 상징과 인물과 주변의 구성 등이 엄격한 약속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운보의 예수의 일대기 속에도 그 나름의 도상적 약속에 충실 하려는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이 종래의 기독교적 도상의 내용과 크게 달리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생애를 조선시대 풍속적 단면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예수가 유대 땅에서 태어나고 서양인의 면모와 배경으로 그려진 일반적 도상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한국인으로 생애를 마쳤다는 내용으로 번안되었다는 점이다. 이 번안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는가는 다음 최순우의 기술에서 엿볼 수 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성화를 보았을 때 대번 머리에 떠오르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에게 이처럼 잘 어울리는 한복의 기품과 한국인의 얼굴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시 운보는 운보로다, 하는 일종의 안도감이었다. 즉 운보가 아니고서는 한복을 입는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이처럼 숭고하고 간절하고 또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최순우 - 예수의 생애화집) 

이처럼 운보는 예수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온전히 한국의 인물과 풍속으로 바꾸어놓았다. 기독교의 토착화현상을 이보다 더 감동 깊게 구현한 예가 어디 있는가. 기독교의 도상을 한국인의 모습으로 구현한 예는 30년대 배운성이 그린 한복 입은 성모자상이 있고 해방 후 장우성의 역시 성모자를 한복의 한국 여인으로 그린 예는 있지만, 예수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한국의 풍속으로 그린 예는 운보가 유일하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우리나라에 재림하셨다고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절실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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