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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명화의 조건

오광수

‘명화를 만나다 :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10.29-2014.3.30)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에서 열리고 있다. 192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시간대에 창작된 작품 가운데 뛰어난 100점이 선정된 것이다. 100점 속에는 들어가지 못한 작품들 가운데도 명화로 인정되는 작품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선정되고도 출품되지 못한 작품들도 있다. 특히 개인 소장품의 공개가 전에 없이 어렵다는 점이 점차 실감을 더해준다.

작품을 보는 눈은 개별적이다. 최대 공약수를 찾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전문가의 눈에는 뛰어나게 보이는 작품도 일반인들에게는 기피되는 경우가 있고 일반들이 좋아하는 작품도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명화를 찾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저간의 사정을 떠올리면서 이 기회에 명화에 대한 내 나름의 조건을 상정해본다.

이중섭, 가족, 1950년대, 종이에 유채, 41.6×28.9cm, 개인소장


첫 번째 조건으로 내걸 수 있는 것이 전문가나 일반이 모두 좋아하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보편성을 지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명화를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보편성 위에 서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누구에게는 감동을 주는데 누구에게는 감동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보편성을 지니지 못함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명화전에 나온 상당수의 작품이 우리 눈에 익은 것들이다. 일반인들도 과거 학생 시절 미술교과서를 통해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장욱진 하면 미술문외한이라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좋아하게 되었다기 보다 오랜 시간을 통해 익숙해짐으로써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도상봉의 <정물>, 박수근의 <빨래터>,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흰소>, <가족>, 이인성의 <가을 어느날>, <해당화>, 오지호의 <남향집>, 이상범의 <산수> 등은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작품들이다. 그만큼 널리 알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번째 명화의 조건은 일정한 시간대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기가 중심이 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여기 출품된 작품은 적어도 40년 이상의 시간대를 지닌 것들이다. 일반적으로 작품이란 작가의 생년으로 따져 한 세기(100년)를 지나야 평가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작품이 제작된 시기로부터 한세기를 경과해야만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 말은 작품의 진정한 평가는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세기란 시간을 이겨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우리 근대기 작품은 아직 이런 경우에 적응되지 못한다. 길어야 80년 짧으면 40년 전후가 되니까 진정한 평가는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잣대가 꼭 한 세기가 아니라도 어느 정도 통용은 가능하지 않을까 본다. 오랜 세월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개성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성이 주는 보편으로서의 감동이 그만큼 지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 김종태의 <노란 저고리>, 김환기의 <산월>, <피난열차>, 배운성의 <대가족>, 변관식의 <진주담>, <보덕굴>, 장욱진의 <마을>, 천경자의 <목화밭에서>, 장리석의 <소한>, 김흥수의 <두동무>, 윤중식의 <노을>, 김기창의 <군작> 등은 강한 개성을 지님으로써 능히 시대의 물결을 헤쳐나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 번째 명화의 조건은 미술사적 맥락에서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의 미술사에서 얼마만큼 대표적으로 위상 되느냐, 얼마나 많은 영향의 진폭을 지니느냐, 나아가서는 우리 미술의 정체성 추구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가? 등 미술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은 작품이라야 된다는 것이다. 오지호의 <남향집>, <부인상>은 인상파의 정착을 주도한 작가의 대표작이란 점에서, 김인승의 <화실>은 인상파의 유형에서 벗어나 고전주의의 탄탄한 구도와 중후한 질료의 구사로 아카데미즘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평가를 받는다.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독자의 추상미술 완숙이기도 하지만 70년대 이후 전개될 단색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김기창의 <타작마당>과 박래현의 <노점상>은 다 같이 동양화의 고식적인 형식을 벗어나 동양화를 현대적 회화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와 동시에 이응노의 수묵추상과 문자추상이 동양화의 현대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변관식, 이상범의 실경산수가 우리 고유한 산천의 한 전범을 이룩하였다는 점, 우리 미술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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