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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전방위 예술가 김구림

오광수

김구림의 회고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7.16-9.29)’가 지난 7월 16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1958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열린 이번 회고전은 주로 60년대, 70년대에 걸친 시기에 집중되는 실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김구림 개인의 회고전이면서도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았던 전위적, 실험적 대열에 있었던 작가들에게도 어제를 되돌아보게 한 회고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작가의 지난 역정을 되돌아보면서 초라하지만, 열심이었던, 또는 촌스러우면서도 당당했던 우리 청년기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더욱 감회에 젖게 한다.

김구림은 전천후 실험작가, 전방위 실험작가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실험은 앞서 있었고 그 진폭도 큰 편이었다. 타블로, 판화, 해프닝(퍼포먼스), 영화, 무용 등 예술 전반에 미친 것이었다. 전위니 실험이니 하는 일련의 행위예술이 대중적 호기심을 끄는, 그래서 한갓 주간지의 가십거리로 취급되던 상황이었음에도 그의 태도는 진지했으며 변혁에 앞장서는 열기는 능히 한 시대 행위예술의 리더로서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옛 스크랩 북을 뒤적이다 마침 내가 쓴 ‘70년대 화가론 - 젊은 화가를 재평가한다 - 김구림편’(조선일보, 1978.6.14)을 발견하고 거기 언급된 몇 대목을 여기에 옮겨본다. 

“70년대 작가를 말하게 될 때 그의 조형의식의 성과가 분명한 세대의식에 의해 이루어진 사실이란 긍정적인 반응에서 우리는 먼저 김구림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해석의 시대를 사는 작가답게 분명한 논리로 자기 작업을 채찍질하며 그러한 작업이 단순히 논리의 유희로 빠지지 않게 하는 치열한 장인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이목을 끄는 일회성의 행위에만 급급하지 않고 평면, 입체, 판화, 영화, 무대에 이르는 영역을 가로지르며 빈틈없는 작업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음에서 그의 치열한 작업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 “표현의 다양성과 동일한 형식을 반복하지 않는 형식의 불연속성을 추구”(변종필)한다는 언급에서도 그의 전 작업에 걸친 진지한 태도와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실험은 해프닝으로부터 출발된다. 김차섭과의 공동작업 <매스미디어의 유혹>을 위시해서 <보디페인팅>, <도>, <무제>, <콘돔과 카바마인>, <현상에서 흔적으로> 이어지며 70년 유신전후에 펼친 제4집단(김구림, 정찬승, 방태수, 송일광 등)의 광화문 거리 해프닝으로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사직공원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진 가두 해프닝 <기성 문화 예술의 장례식>은 타이틀이 시사하듯 다분히 사회비판, 문화비판의 색채를 띤 것이었다. 유신 전후의 살벌한 상황 속에서 제4집단이 보여준 일탈의 행위는 권력에 맞선 고독한 젊은 예술가들의 처절한 몸짓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1960-70년대 실험은 정신이었다. 그러고 보면, 60년대, 70년대에 걸친 우리의 해프닝은 다분히 문명비판이나 사회비판과 같은 현실참여의 색채가 농후한 편이었다. 김구림을 중심으로 한 초기 퍼포먼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제의적, 사변적, 연극적 요소가 풍부해지면서 더욱 양식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때로 개념적 작업과 연계되는 변주의 양상도 점검된다. 

김구림은 어눌하면서도 솔직, 담백한 타입이다. 약간 다혈질이면서도 뛰어난 통찰력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도전적, 비판적이면서도 자기반성을 멈추지 않는다. 70년대 일련의 그의 타블로와 판화는 이 시대를 대표해주는 탁월한 작업으로 그의 장인적 성실함을 반영해주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아방가르드란 말은 한 시대의 조형적 가치를 가늠하게 하는 잣대를 제공한다. 전위적 활동을 통해 우리는 시대의 의식의 내면, 변혁의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비젼 빈곤의 한국미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고 선언한 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의지는 정신의 개혁을 통해 비젼 빈곤의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방가르드는 표현이나 양식이기에 앞서 정신이다. 그것이 정신일 때만 비로소 시대적 의미를 띠게 된다. 김구림의 60년대, 70년대의 일련의 실험을 돌이켜보면서도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어떤 형식도 어떤 표현도 아닌 실로 정신에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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