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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립문자는 말과 글을 넘어선 선의 경지다, 김연식

고충환







불립문자는 말과 글을 넘어선 선의 경지다.

불립문자는 말과 글에 얽매이기 이전의 선(禪)을 지향한다.






Bul-lip-mun-ja 1810 (不立文字 1810, Understanding beyond Words), 200cm×300cm, mixed media, 2018



고충환 | 미술평론가

작가는 불립문자를 조형한다. 어떻게 조형하는가. 조형을 위해 작가는 반야심경과 같은 불교경전을, 한시와 같은 고전문학을 차용한다. 그렇게 차용된 경전이며 문학 자체는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 독자적이고 완성된 텍스트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인만큼 결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닫힌 의미체계를 견지하고 있다. 작가는 이 온전한 텍스트를 풀어 헤쳐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 완전한 텍스트로 재생시킨다. 문자에 결박된 결정적인 의미의 족쇄를 풀어 처음 의미이며 열린 의미를, 그 속뜻을 열어놓는 것이다.

이를테면 먼저 한지에 반야심경을 적어나간다. 지혜의 빛에 의해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으로서 총 270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 개념이 그리고 참마음이 핵심개념이라고 한다. 그 개념에 미루어 짐작해볼 때 어느 정도 이미 그 속에 불립문자의 의미를 내장하고 있다고도 볼 수가 있겠다. 공의 진정한 의미를 그리고 참마음의 경지를 어떻게 말로 형용하고 글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반야심경이 적힌 종이를 잘게 잘라 등이 전면을 향하도록 둥글게 만 후, 마치 집자를 하듯 화면에 촘촘하게 세워 심으면 하나의 전체화면이 재구성된다. 그렇게 재구성된 화면을 보면 적어도 외관상 반야심경은 온 데 간 데 없고, 다만 우연하고 무분별한 먹의 흔적이며 문자의 자취만 남는다.

비록 반야심경은 온 데 간 데 없지만, 사실은 흔적으로 남아있고 자취의 형태로 체화돼 있다. 비록 최초 반야심경을 문자로 기록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정작 그 진정한 의미는 문자가 아닌 문자의 흔적, 문자의 자취, 어쩌면 문자의 이면, 문자의 행간, 그리고 어쩌면 그 자체 일종의 수행으로도 볼 수 있는, 문자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 자체에서 찾을 일이다. 애써 쓴 경전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는 이처럼 문자의 형태로 결정화된 의미에 현혹되지 말라는 주문이 담겨있다. 진정한 의미는 말로 형용할 수 없고 글로 정의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만 마음으로, 참마음으로 읽을 일이라는 전언을 담고 있다.

다시, 처음 의미로 돌아가 보자. 즉, 불립문자는 말과 글에 얽매이기 이전의 선(禪)을 지향한다. 말과 글이 무엇인가. 인간이 만든 개념이다. 그 겉뜻이 소통을 위한 장치이고, 그 속뜻이 인간이 스스로 자연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제도적 장치다. 여기서 선은 자연의 본성 그러므로 어쩌면 개념화되고 의미화되기 이전의 자연 자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 삶의 태도와 관련이 깊다. 그러므로 작가가 형상으로 옮긴 불립문자는 개념 없이 어떻게 진정한 소통에 이를 것인가, 라고 물어온다.


「불립문자, 진정한 소통과 현실을 반영하는」, 2018. 7, 정산 김연식 vol 2 『불립문자』 (2019) 도록 게재.



 정산 김연식,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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