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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심과 주변이 교환될 때

김정현


좌) 카미유 코로, 〈이탈리아의 염소지기, 석양 효과〉, 1848, 캔버스에 유채, 195×147cm, 루브르박물관 소장
우) 김영덕, 〈태고〉, 1958, 마포에 유채, 73.5×61cm,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미술사에서 사조 간 연결고리로 평가되면서 그다음 세대를 빛내주는 작가들이 있다.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인상주의에 그런 역할을 한 인물로 카미유 코로(Jean Baptiste Camille Corot, 1796-1875)가 있다. 카유보트 유증 사건(Affaire Caillebotte)으로 오랜 시간 표류하던 인상주의 미술가들의 작품이 대거 국공립미술관에 기증되어 공식적인 전시관을 갖추게 된 1897년, 클로드 모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 오직 한 명의 거장이 있습니다. 코로.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코로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서기 전 7년간 부모를 도와 부유층을 상대하는 의류업에 종사했다. 나폴레옹전쟁을 촉매로 전 유럽에 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퍼지는 시기였다. 어떠한 지점에서인지 괴리감을 느낀 그는 자신과 사업이 “양립될 수 없다.”라고 가족에게 선언한 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들어선다. 코로는 스승들로부터 배운 신고전주의 화풍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상화된 풍경이 아닌 현실의 풍경에도 관심을 두고 당시 일반적이지 않았던 야외 사생을 겸한 작업을 했다. 특히, 이탈리아 여행 중 그린 풍경화를 보면 고전적 풍경화에서 벗어나 형태의 명료함보다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를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특유의 주관적 사실성을 작품에 반영한 코로는 신고전주의에서 사실주의, 다시 인상주의로 이행되는 작품 경향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염소지기, 석양 효과〉는 전경의 어두운 숲속, 원경의 하늘을 밝게 하여 깊은 공간감을 주는 고전적 구성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성서나 신화가 아닌 현실의 염소지기라는 소재와 석양 시간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의 표현은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코로의 이 같은 은회색 가득한 풍경화에 마음을 빼앗겨 평생을 화가의 길을 걸은 작가가 있다. 김영덕(1931-2020)은 일제강점기 경성도서관의 한 화집에서 보았던 코로의 풍경화가 화가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고 기억했다. 이런 순간은 하나의 안내판으로서 미술의 세계로 한 사람이 시선을 돌리게 된 계기로 의미가 있다. 김영덕은 1949년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앞두고 남북통일협상론을 지지하다가 학생임에도 경찰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한국전쟁 중에는 5년간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국내외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접하며 시대와 인간 안에 존재하는 모순을 절감했다. 그 와중에 우울하고 어두운 화면으로 사회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프랑스 미술단체 ‘증언하는 자’(L'Homme Témoin)의 선언문, 멕시코 벽화 운동에 동참한 일본 화가의 체험기를 흡수했다. 

  그는 시대의 파도와 그 안에서 상실되어 버린 인간성을 고발하는 ‘인간 탁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그린 ‘향(鄕)’ 시리즈를 남겼다. 인간 탁본의 초기작으로 선인장과 뼈를 중심 소재로 한 연작이 있다. 뼈는 죽음을, 선인장 가시는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고통을 연상시킨다.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선인장 그 자체는 엄혹한 환경 안에서도 살아가는 생명력으로 굳건한 삶의 의지에 대한 표상일 수도 있다. 이 연작 중 〈태고〉는 형상이 크게 변형되고 높은 채도로 표현되어있어 더욱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영덕은 인혁당 사건처럼 사회혼란기 폭주한 권력의 얼굴과 피해자를 기억하고 위로하듯 화폭에 담아 인간 탁본 시리즈를 이어갔다. 시인 황명걸은 1989년에 “민중미술의 외로운 전주”로 이러한 김영덕의 작품세계를 평한 바 있다.

  무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조명 바로 아래에 있는 주연에 쉽게 주목되지만, 실상 극의 완성은 조연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빈도는 낮지만 때로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에 시선과 마음이 갈 때도 있다. 이러한 중심과 주변이 교환되는 순간이 늘어날수록 극은 더욱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게 되며 그 평가는 더 풍성해진다. 모네의 코로에 대한 찬사는 보수적인 프랑스의 아카데미즘 화가들과 국민에게 당시 낯설었던 인상주의를 이해할 방법을 간접적으로 제시한 것은 아닐까. 한국의 리얼리즘 미술에 있어 김영덕의 존재가 이러한 위치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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