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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른 시선으로의 초대

김정현

  이 끝을 알 수 없는 비정상의 시간에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한 경영컨설팅 회사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남길 사회적 유산을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e-러닝 등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도입과 기업들의 가치 창출 과정을 뜻하는 가치 사슬 분화의 촉진 그리고 정치적 차원에서 기존시스템 역량 평가가 이루어지고 취약 제도가 노출되어 더 많은 협력이 이루어지거나 극단적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 경기회복이 V자를 그리며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도 전한다. 그 근거로 이전까지 있었던 이러한 경기침체 뒤 회복이 급격히 이루어진 사례들을 언급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차분히 볼수록 희망차게 마쳐지는 보고서 논지와 관계없이 많은 전염병 사례와 짧아지는 주기로 오히려 두려움이 스며든다. 저마다 이유와 강도는 다르지만, 내일은 미지의 영역이기에 지금을 사는 우리는 자주 불안은 느낀다. 이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겠으나 자신만의 답을 찾을 때까지 고민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 오크 패널에 유채, 207×210cm,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여기에 도움이 될 두 작품이 있다. 하나는 영국 궁정화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1533)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빠지지 않고 다루어지는 이 작품은 당시 제작된 작품들이 그렇듯, 풍부한 서사를 지닌 기록화로써 등장하는 인물은 로마 교황청과 영국이 갈라서는 것을 막기 위해 런던으로 파견된 프랑스의 대사와 주교다. 작품 중앙의 다양한 사물들은 천문학과 항해술 등 당시 사회가 이루어낸 업적들을 드러내고, 펼쳐진 책의 내용 등 세부 표현은 종교개혁과 과학 발전에 따른 기존 정치와 사회 질서에 대한 당대의 불안을 담아낸다. 나아가 이 작품은 다시점을 활용한 해골 왜상(歪像)을 통해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도 피할 수 없는 만인의 죽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으로 기억된다. 존 버거도 해골 왜상에 대해서 화면 위에 표현된 다른 도상들과는 달리 '다른 시각에 기초해' 중세적 관념을 변형하여 형이상학적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문정, <미래의 가치, 최고의 프리미엄!>, 2018, 벽화페인트, 가변크기(사진: 고정균)

  다른 한 작품은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은 황문정의 작품이다. 재건축 예정인 아파트 안에 그려졌던 것으로 재건축 후 세워질 아파트의 조감도를 차용했다. 작품 소재인 아파트는 현대 한국인에게 그 상품성과 획일성으로 인해 문명비판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열망의 대상이다. 옅은 형광등 불빛 아래 작품을 보기 위해 다가서면 벽면에서 떨어진 콘크리트 조각이 발에 차인다. 다가설수록 미래의 아파트 형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원근법에 바탕을 둔 착시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 후 40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공간에서 앞으로 폐허가 될 곳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쫓다보면 그 착시 표현으로 인해 지나간 시간처럼 앞으로 올 시간도 봄날의 꿈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리라는 감정의 전이가 이루어진다.

  앞의 두 작품 사이에는 연대와 소재, 재료 외에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다시점과 착시에 활용된 원근법과 그를 통해 강조된 의미라는 공통점이 있다. 원근법은 시각 인상의 주관성을 과학적 측정으로 객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 근대적 시각이다. 르네상스 시기 가장 활발히 활용되었다가 인상주의 이후에는 정밀한 원근법이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으나 오늘날 수학과 기하학의 표상으로 젊은 작가들에 의해 다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앞의 작품은 화면에 두 개의 시점을 두고 이전 시점에 놓인 모든 걸 전복하는 죽음의 도상을 통해, 뒤의 작품은 착시로 강조된 일상의 관성이 남기는 폐허의 반복성을 통해 통념이란 하나의 시선에서 벗어나 현재의 가치를 고양한다.

  서두의 보고서도 최고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두고 지금의 고객에 집중할 것을 강조하며 마쳐진다. 이제 이전보다 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한스 홀바인은 흑사병으로 촉발된 변화로 중세가 마쳐지고 새로운 사회 질서가 세워지는 시대를 살았다. 불안의 그림자는 모든 시대에 존재하지만, 그 실체를 대면하게 해줄 작품들 또한 지금 우리 곁에 있다.


김정현(1987- ), 경기대 미술경영학 학사, 홍익대 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 졸. 2013- 김달진미술연구소 박물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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