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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성찬경의 물질적 상상력

윤진섭

성찬경, 무제, 2000년 이후, 124×42×43cm
오토바이 부속, 선풍기 부속, 철제 의자 부속, 철제 옷걸이, 나뭇조각, 나사, 알루미늄 뚜껑, 철사, 전선


성찬경(1930-2013)은 생전에 사물들의 친구였다. 각종 나사를 비롯하여 고장 난 시계, 각목 등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대한민국의 알아주는 시인이자 영문학자, 교수, 나아가서는 예술원 회원을 지낸 그에게 이처럼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은 많지 않다.
‘응암동 물질고아원’은 고인의 장남인 성기완(시인, 음악가)의 표현을 빌리면 “그가 거주하던 응암동 자택 마당과 실내에 꾸려진 일종의 생활 미술관”이었다. 성찬경의 사촌 동생인 행위예술가 성능경의 전언에 의하면, 시인은 이 공간에서 용접하거나 쇠톱을 사용하여 재봉틀의 견고한 몸통을 절단했다. 이번에 남서울시립미술관 전시(3.24-6.26)에 출품한 재봉틀의 절단된 단면을 보니 마치 무를 예리한 칼로 단번에 자른 것처럼 깨끗하여 놀랐다. 마음을 비운 채 정신을 모으지 않고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내가 성찬경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6월이었다. 한국행위예술협회를 결성하고 당시 신촌역 근처에 있던 청파소극장에서 행위예술가 성능경을 초대하여 퍼포먼스 발표회를 했다. 그때 성능경은 <평창과 수축> 등 3편의 퍼포먼스를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시와 미술을 위한 2인의 작업>을 사촌 형인 성 시인과 함께했다. 그때 성능경의 행위에 곁들여 성찬경이 자신의 시를 낭송했던 것이다.
시인 스스로 명명한 응암동 물질고아원에 칩거하며 사물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 오브제 작품들이 최초로 세상에 공개된 것은 2016년에 이르러서였다. 시인이 작고한 지 만 3년 만이었다. 인사동 소재 백악미술관에서 열린 ‘성찬경 추모전-응암동 물질고아원’(2016.2.27-3.9)은 사물에 대한 시인의 평소 생각을 엿볼 좋은 기회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 시인이 생전에 오브제 작품을 발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회적 존재인 조형예술가의 자격으로 ‘작품’을 한 것이 아니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정신의 상태에서 ‘사물과의 대화’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성찬경의 과학적 상상력이 잘 발휘된 대표적인 작품은 <연애편지의 무게를 다는 저울>(14×11×6cm)이다. 쇳조각과 저울추, 철사 등을 이용하여 만든 이 오브제는 젊은 시절에 미망인과 연애할 당시 편지를 부치기 전에 무게를 달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1963년 작으로 당시 한국 미술계는 비정형 회화의 끝물로 본격적인 오브제 작품이 출현하기 이전이었다. 한국 미술계에서 오브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가 1967년 중앙공보관에서 열린 ‘청년작가연립전’이었으니, 성 시인의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성능경의 회고에 의하면, 성찬경은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이미 팝적인 이미지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번 남서울미술관 전시에 출품한 하나의 작품은 현저한 예이다. 이 작품은 비록 5호 정도 크기의 소품이지만, 대중적 상징성을 지닌 ‘리츠(RITZ) 크래커’의 포장 상자를 손으로 찢어 종이 위에 콜라주 한 것으로 팝적 느낌이 강하다.

알다시피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예술가다. 그런데 성찬경은 언어 외에도 물질을 다룸으로써 평생 본업인 시와, 부업인 사물 간의 연계를 꾀했다. 요즈음 유행하는 ‘본캐(본 캐릭터)’와 ‘부캐(부 캐릭터)’의 선구적인 예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성찬경은 평생 얼핏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영역을 오가며 사유의 폭을 넓혀나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어디 다른 영역이겠는가. 사물은 언어의 거소이며, 언어는 사물의 외피가 아닌가. 그러나 서로 달라 보이지만 같은 영역에 거주하는 시인은 평소에 조형의 사회적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것 또한 시인의 몸에 밴 겸손의 한 표현은 아니었을까?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 찬 이 시대에 한 번쯤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몇 자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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