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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인간정신의 파수꾼, 전위예술가들

윤진섭

1993년 수원의 전위예술 단체인 컴아트(Com-Art) 그룹의 맹장으로 북경화단에 진출, 한중 문화예술 교류의 물꼬를 튼 김석환. 그는 이 그룹의 대표인 이경근과 함께 온몸을 바쳐 전위의 혼을 불살랐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을 계기로 평단에 몸을 담은 나는 당시 현대백화점이 운영하는 현대아트갤러리의 총괄관장을 맡고 있었다.

하루는 수원의 후배인 이경근과 김석환이 나를 찾아왔다. 1992년, 노태우 정부에 의해 역사적인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후 꼭 1년 만이었다. “이번에 저희가 중국 북경으로 진출하려고 합니다.” “뭐라고요? 중국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그만큼 멀리 있었다. 영원한 우방인 줄 알았던 대만과 단교를 하고‘죽의 장막’으로만 알려진 중국과 역사적 수교를 한 이 무렵 세상은 요동치고 있었다.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으로 대변되는 세계사적 대변동이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행위예술가 김석환, 2009


컴아트 그룹이 북경 진출을 계획한 지 1년 후인 1993년 1월, 이들은 북경에 있었다. ‘북경 한국 현대미술의 육성-장안문에서 천안문까지’전이 거짓말처럼 중국미술관과 중앙미술학원 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린 것이다. 컴아트 그룹은 일본보다 일찍 중국에 진출, 새롭게 열리는 동북아 시대의 문화예술교류의 장을 선점하고자 했다. 역사적인 한중일 교류전이 성사된 것은 1994년으로 북경 수도사범대학 미술관에서 열린‘지금, 동의 꿈’전 이었다. 한국에서 이승택, 이경근, 김석환, 황민수 등이, 중국에서 왕루엔, 왕광이, 왕지안웨이, 송동 등이, 일본에서 우에다 유조, 아베 마모루, 니시 마사키 등이 참가한 이 전시에서 중국의 리시엔팅, 한국의 윤진섭, 일본의 다니 아라타 등 한중일 3국의 미술평론가들은 학술세미나를 통해 향후의 미술교류에 따른 방향과 전개 방식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북경을 공략 목표로 정하고 게릴라식 행동을 벌여 한중일 문화예술교류사의 새 장을 연 것이다. 바로 앞에서 열거한 작가들과 미술평론가들이 그 선두에 섰다. 당시 인천항에서 중국 천진으로 향하는 정기여객선에 몸을 싣기까지의 이야기는 차라리 한 편의 드라마에 가깝다. 당시로선 소설 같은 이 무모한 계획을 실천에 옮겨 역사적인 한중 미술교류의 물꼬를 튼 이 거사 뒤에는 이경근, 김석환, 황민수, 홍오봉, 김중 등으로 대변되는 수원의 젊고 전위적인 의식을 지닌 미술인들이 있었다. 당시 이들의 활동을 비평적으로 지원한 나 역시 북경을 방문, 중국 아방가르드의 이론적 선봉장이었던 미술평론가 리시엔팅과 언더그라운드 전위 작가 왕광이 등을 만났다. 지금 세계적인 작가로 활약을 하고 있는 송동은 당시만 하더라도 가장 젊은 축에 속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모더니즘과 민중미술로 대변되는, 두 동강난 한국화단은 8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불면서 서서히 다원화돼 갔다. 2000년대 밀레니엄 시대에는 다문화주의의 물결이 밀려왔는데, 이는 한국 사회가 어느덧 다인종, 다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회변동 요인이다. 도도한 세계화의 물결은 SNS가 말해주듯 이제 회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그처럼 도도한 물결 속에서 이제 개인은 점차 익명화, 점화된다. 이제 개인은 세계 내에서 작은 파리똥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본은 교묘한 형태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인간의 삶을 옥죈다. NFT와 이더리움으로 대변되는 사이버 미술시장은 급기야 사물로서의 미술작품을 가상 이미지로 미술품 구입의 대상을 치환시켰다.

예술이 지닌 전복성과 저항성은 자본의 폐해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인간 정신의 보루와도 같다. 대부분의 인간은 황금의 묘약에 취하면 정신을 잃는다. 예술은 인간을 몽혼으로부터 일깨우는 중요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미술시장이 번성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전위예술 그룹들이 점차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대략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이후 작가들은 점차 미술시장의 논리, 좀 더 자세히 거론하자면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뱅크시의 경우에서 보듯이 자본의 묘약에 한 번 맛을 들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지금 전위는 어디 있는가? 옛 전사들의 귀환을 고대하여 백일몽이라도 꿔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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