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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서경, 틀로 틀을 해체하기

윤난지

검은 자리 꾀꼬리 설치전경, 필라델피아현대미술관, 2018, 
사진: Constance Mensh


내가 강서경을 처음 본 것은 2002년, 그리고 우연히 다시 만난 것은 2005년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였다. 꽃무늬 장화를 신은 천진하고 도발적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녀는 어느새 그 모습처럼 독특한 작업으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새삼 추천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지도에 비해 작업 자체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고, 앞으로의 풍성한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강서경을 이 시대의 주요 작가로 추천한다.
강서경의 작업은 한 마디로, 틀에 의해 틀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서구 회화의 오랜 관행을 만들어온 틀 즉 캔버스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그녀의 작업은 가깝게는 모더니즘, 넓게는 서구 미술사 전통에 대한 해체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이 우리 전통 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의 원리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은 그녀가 동양화 전공이라는 점을 환기하는 지점이다. 동양의 음악 원리로 서양의 회화 관행을 해체하는 것인데, 그것이 해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좌) 자리 검은 자리 61×81 #18-03, 63×84.5cm, 실, 화문석, 2018, 사진: 김경태
우) 자리 검은 자리 122×93 #18-04,06, 각 131.5×96.5cm, 화문석, 실, 2017-2018, 사진: 김경태


그녀는 캔버스를 이루는 두 가지 물질 즉 천과 지지대를 분리하고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만들어 조합하기도, 바퀴를 달아 움직이게도 한다. 회화를 정의하는 개념적인 프레임이 되어 왔던 캔버스를 물질적 실체로 접근하는 것인데, 나무나 금속 등의 재질을 드러내거나 지지대를 실로 감거나 천의 결을 따라 물감을 흘러내리게 하는 등의 방법 또한 물성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회화를 ‘사유하는’ 틀을 ‘촉지하는’ 물질로 환원한 것이 그녀의 작품인데, 그중 지지대로 이루어진 것에는 정간보를 의미하는 ‘정(井)’, 붓질이 가해진 면이 구성요소가 된 것에는 소리의 최소단위인 ‘모라(Mor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들은 시각과 청각, 미술과 음악의 구분을 넘어선 공감각의 영역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장르 간의 경계를 사수하고자 했던 모더니즘의 틀을 벗어나 있다. 그녀의 틀 해체 작업은 결국 모더니즘의 프라임 아트인 회화, 그리고 그것이 대표하는 닫힌 장르의 열림을 의미한다.
강서경 작업의 발단은 2010년경부터 윤곽을 드러낸 둥근 계단 연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걷기가 불편한 할머니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 이 연작에서 작가는 계단과 같은 구조의 윤곽선을 곡선으로 만들고 바퀴를 달았다.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신체적 한계를 연상하게 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신체와 관련된 지극히 개인사적인 내러티브를 포괄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데, 이런 점에서 그것이 눈 이외의 감각과 일체의 서사를 배제하고자 한 모더니즘의 시각중심주의에서 멀리 벗어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장르 간의 벽을 허물고 신체적 경험과 내러티브를 수용하는 그녀의 작업이 영상과 퍼포먼스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두 인물이 기하학적 구조물을 가지고 움직이면서 ‘정(井)’의 변용을 시연하는 <검은 아래 색달>(2015)은 고려가요 쌍화점을 영상 퍼포먼스로 구현한 것이다. 즉 추상적 움직임이자 구체적인 사랑이야기이다. 설치와 퍼포먼스가 결합된 <검은 자리 꾀꼬리>(2018) 또한 시각과 촉각, 형식과 내러티브, 현대와 전통이 교차하는 혼성의 장이다. 
회화라는 ‘개념’을 비워버린 강서경의 틀 작업에는 그동안 회화의 틀 속에 들어 올 수 없었던 것들이 들어온다. 모든 물질적 존재, 사람의 신체와 그 감각, 그 이야기, 그 이야기가 흐르는 시간... 이런 의미에서 그녀의 작업은 데리다가 그림의 틀을 빗대어 말한 파레르곤(Parergon)이다. 그림(Ergon)의 바깥(Para)에 덧붙여진 파레르곤은 그림의 경계를 만들어내면서도 그것에 개입한다. 회화의 틀에서 출발하여 그 틀에 대해 질문하는 강서경의 작업은 회화의, 그리고 그것을 규정해 온 모더니즘의 파레르곤이다.


사진: 김영훈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윤난지 / 미술사가
njyun@ewha.ac.kr


- 강서경(1977- ) 이화여대 및 동대학원 동양화과, 영국 왕립예술학교 회화과 졸업. 2018 상하이비엔날레, 리버풀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2019 베네치아비엔날레 총감독 랄프 루고트의 본전시 참여. 필라델피아현대미술관(2018) 개인전 개최.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국립현대미술관, 2016), ‘발 과 달’(시청각, 2015) 등 참여. 2018 아트바젤 발로아즈 예술상 수상. 현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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