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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Artists](2) 박서보-Park Seo-BO

김달진

김달진의 대한민국 아티스트 탐구 '박서보'(2)

서울시 종로구 홍지문 1길에 위치한 김달진박물관에서는 2020년 12월 19일 오후 4시부터 김달진관장이 소개하는 박서보 작가에 대한 본 기자의 질문에 설명과 작품소개로 ‘With Artists2, 박서보-Park SeoBO’에 대한 촬영이 시작되었다.




현대미술 운동의 리더에서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박서보

박서보(PARK SEO BO / 朴栖甫 1931- )는 한국 추상미술 앵포르멜의 선구자로 ‘묘법(描法)’ 연작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으며 세계 무대에 한국 작가 전시를 조력한 예술행정가이자 교육자로서 평생을 한국 현대미술을 일구고 국내 외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1950년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하자마자 전쟁을 겪고, 1962년부터 교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명예교수로 퇴임하기까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지금도 여전히 화업을 잇는 그는 한국의 ‘색’과 ‘힘’을 동시에 알리는 단색화의 거장이다.

박서보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서로 연결된 복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그가 ‘한국 현대미술’이라는 집단적 프레임을 설정하고 세계 무대에 한국 미술을 알리고 홍보하겠다는, 공동체를 향한 애착과 집념이 흐르고 있었다. 이는  내가 1960 – 70년대 국제전 참가 다수자를 조사한 통계에서 10회 최다기록과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 1975년부터 시작한 에콜드 서울 리더로 20여년간 이끌었고  1977 – 80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76년 중앙문화대상, 2011년 은관문화훈장, 2019년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개인전은 1991,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2007년 경기도미술관, 2010년 부산시립미술관, 1981, 1988, 1997, 2002년 갤러리현대, 2000년 도쿄화랑, 2016년 영국 화이트큐브, 2019년 프랑스 페로탱갤러리 등에서 30여회 가졌다. 몇권의 작품집과 외국 잡지에 많이 소개되었다.

첫 번째는 ‘원형질’시기 : 상흔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1957)부터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원형질> 연작. 두 번째는 ‘유전질’시기 : 19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 연작과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에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 세 번째는 ‘초기 묘법’시기 :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하여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 ‘연필 묘법’ 시대. 네 번째는 ‘중기 묘법’시기 :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하여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 붙이는 등 행위를 반복하여 ‘지그재그 묘법’이라고도 불린다. 무채색의 연필묘법에서 쑥과 담배 등을 우려낸 색을 활용하여 색을 회복한 시기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는 ‘후기 묘법’시기 : ‘색채 묘법’이라고도 불리며 1990년대 중반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로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을 볼 수 있다.

그의 묘법 Ecriture 시리즈는 작품은 캔버스에 배경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연필로 드로잉을 반복하는 연작을 시작으로 그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반복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호흡 같고 바람 같은 그런 순간적인 행위, 다분히 퍼포먼스를 연상시키는 몸짓을 재료를 통해 굳히고자 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행위란 어떤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지닌 물성을 최대한으로 드러내기 위한 행위라는 속성을 가졌다. 행위를 드러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반대로 행위 그 자체를 화면에 스미게 하고 물성을 드러내기 위한 보조적인 속성으로 행위를 강조하는 수행자로 표현한다.

지난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에서 본인은 “나의 묘법 시작을 싸이 톰볼리의 아류니 모방이라고 폄하했는데 그는 단숨에 긋는다면 나는 비워나가는 작업이다. 아날로그시대 예술은 이미지를 토해 놓았지만 21세기 디지털시대는 스트레스를 흡입해야 한다. 나의 지금 그림은 수신을 위한 도구이고 치유의 목적이다” 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함축해서 표현했다. 또 하나 평가로 그칠 줄 모르는 화술, 철저한 본인 작품과 아카이브 관리 기록이 최고인 화가이다.

박선생님과 공식적 인연은 1980년 한국미협이사장 선거에 월간 전시계 기자로 취재에서 만났고 2011년 한국현대미술 해외 진출로 방문하였고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전시가 열리는 동안 첫번 째로 나는 '박서보의 기록과 예술'을 강의하였다. 이 기록과 작품 관리에 대한 인터뷰를 위해 서대문구 연희동 박서보기지(갤러리 + 아트리에 + 자택)와 마포구 성산동 서보미술문화재단으로 가서 담당자를 만나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성산동 건물은 1995년 부터 사용해왔으며 앞으로 기념관으로 전환되며 고향인 경북 예천에 미술관 건립이 진행 중이다. 박서보 연구자료는 한국미술대표작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아카이브 (17)에 도록, 팸플릿, 기사, 포스터, 육필, 포스터, 스크랩북 등이 소개되어 연구자들이 찾고 있다.

자료제공 : 김달진미술박물관
1차 출처 : 아트코리아방송(http://www.artkorea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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