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끼와 금속공예품
선사시대의 돌도끼와 현대 금속공예가 김승희 작품의 공통점은? 둘 다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는 것. 그럼 다른 점은? 돌도끼는 생활용품이고 김승희의 작품은 미술작품이라는 것. 그러면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역시 미술사에, 그리고 미술사가 낳은 제도에 있다. 그것이 바로 근대 조형예술의 체계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 조형예술의 체계 속으로 들어오는 공예품은 미술이고 그렇지 못한 공예품은 미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형적인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일상용품과 미술작품을 나누는 기준은 (미술)제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현대공예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제공하는 부분이다. 회화와 조각의 역사도 공예만큼이나 오래되지만, 미술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 조각과 그 이전의 회화, 조각의 차이를 알고 있다. 그 경계가 인문주의이며 그 인문주의의 산물이 바로 근대 조형예술로서의 미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로서의 공예는 미술의 탄생 이후에나 가능하다. 역사적으로는 공예가 미술에 선행(先行)하지만 개념적으로는 후행(後行)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근대 이전의 공예(생활용품)와 근대 이후의 공예(미술작품)의 경계를 만든다. 물론 오늘날 공예라고 해서 실용적 기능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해서, 오늘날 공예의 주요 기능은 쓸모가 아니라 감상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공예의 위상과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미술작품처럼 감상하기 위해 만든 실용품이라니?
북촌 어귀에 문을 연 서울공예박물관 ⓒ seoul.go.kr
근대 공예박물관의 정체성
공예박물관은 만들기가 참 쉽다. 왜냐하면 산업혁명의 이전의 모든 물건은 공예이기 때문이다. 밥그릇, 호미, 짚신 등 무엇을 갖다 놓아도 공예박물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면 뭐든지 공예박물관을 만들 수 있지만, 거꾸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 공예박물관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 사이의 좁은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생활용품과 미술작품 사이의 길이기도 하다. 근대 이전의 공예는 유물, 민속품, 문화재, 골동품 등으로 불린다. 이렇게 보면 거의 대부분의 박물관은 공예박물관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이 그렇다.
바로 여기에 공예박물관 만들기의 어려움과 위험성이 있다. 왜냐하면 근대 이전의 공예는 인류의 오랜 문화유산, 인간의 손때가 묻은, 따뜻한 온기가 살아 있는 물건이라는 상투성에 의한 합리성으로 빠져들기가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또 정반대로 산업화로 인해 기능성을 상실한 현대의 공예는 미술공예라는 또 하나의 유혹으로 빠지기 쉽다. 실용성을 잃어버리고 또 하나의 미술작품이 되어 진열장 속의 감상물이 된 공예. 어느 쪽을 선택해도 공예박물관일 수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산업화 시대의 공예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차별화된 근대 공예박물관이 될 수는 없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역사 속에서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은 공예는 강하다. 그런 점에서 공예야말로 가장 오래되면서도 가장 새로운 조형일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과연 한국 공예계는 골동과 미술 사이의 그 좁은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기만 한다면, 공예박물관이야말로 미술박물관은 물론이고 디자인박물관과도 차별화된 정말로 흥미롭고 참신한 박물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의 미니어처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유사품도 아닌 진짜 근대 조형예술로서의 공예박물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