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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기술복제 시대 조각의 위상에 대하여: 반영-반향-자기비판

고동연

기술적인 ‘기재(apparatus)’가 현대미술의 창작과 유통을 변화시켜온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3D 프린터나 다양한 해상도로 변환이 가능해진 영상 기술이 널리 유통되며 ‘원본’ 작업의 물질성과 매체의 본래 특징이나 존재 방식을 논하기가 점차 무의미해졌다. 그런데 최근 전시나 미술시장에서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의 수공예적이거나 매체 특정적인 태도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조각충동’전과 같이 아예 매체 자체의 계보나 명칭을 전시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일도 벌어졌다. 우선 이러한 현상 원인을 희소성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과거 문화 유산과 태도를 새롭게 마케팅 해야 하는 문화예술기관의 의도와 다양한 시대적·시각적 산물을 끌어와서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SNS 세대의 왕성한 호기심과 욕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이에 최근에 열렸던 조각 연관 전시 가운데 인상 깊은 전시를 되짚어보면서 전통적으로 조각의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시도하며 ‘우리’ 시대 시각 문화와의 연관성을 다루어본다.

첫 번째 작년 8월에 열린 메이디자인과 협업한 권오상의 ‘조각의 시퀀스’(2021.8.26-9.25, 공간TYPE)전은 사이버 공간에서 물건을 검색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조각을 오브제처럼 나열하였다. 필자는 이를 현 시각 문화를 반영(reflective)하는 전시라고 칭하고자 한다. 인류학자나 디자이너, 미술관 큐레이터가 쓰임새에 따라 분류하듯 큰 벨트처럼 생긴 ‘진열대’ 위에 설치된 오브제 사이를 관객이 돌아다니면서 관람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쇼핑몰 검색 결과를 짧은 시간에 스쳐 훑어보듯이 관람하게 된다. 따라서 조각의 시퀀스는 우리 시대 유형화된 오브제의 정리 방식과 검색결과를 확인하듯 작업을 감상하는 문화를 반영한다.

두 번째 올해 열린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전’(3.24-5.22, 서울시립미술관)과 ‘조각충동’(6.9-8.15,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은 전통적인 조각의 과정이나 무게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반향(retroactive)적인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권진규 기념전은 형태가 빚어지는 과정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예술가의 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조각충동은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신체와 조각과의 관계를 탐구하는 조각 특유의 감상 방식을 소환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거대한 크기의 작업은 관객의 신체와 조각 작업과의 순수한 만남을 유도한다기보다는 물질적인 무게감이나 규모로 관객을 압도할 위험성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조각의 개념은 인간의 신체와 조각의 물리적인 관계성에 주목해왔으며 이를 통해서 보다 수평적이고 참여적인 감상 방식을 제안했다. 특히 로버트 모리스는 인간 신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조각의 규모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신체에 비하여 너무 작은 조각은 조각에서 환영주의를 부활시킬 위험이 있고 거대한 조각은 관객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압도할 수 있다. 관객의 경험을 천편일률적으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권진규 기념전이나 조각충동은 오히려 보수적인 조각의 정의를 답습하거나 비교적 단순한 관객 참여의 방식을 상정한다.




박문희 ‘네오-프론티어’ 전시 전경


세 번째 박문희의 ‘네오-프론티어’(7.1-7.30,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는 오브제, 설치물, 조각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의 연극 무대를 선보이면서 설치나 조각이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물질성이나 현존성이 폐기된 상태를 공언한다. 이에 필자는 ‘네오-프론티어’를 메타, 혹은 자기 비평적(selfcritical)이라고 명명한다. 서구의 전통적인 조각상과 인터넷 쇼핑에서 샀을 각종 상품이 자연풍경과 같이 조성된 장면 속에 전시되거나 파묻혀 있다. 키치적인 상품과 고전적인 석고상이 함께 나열되어서 폐허의 전경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다양한 재료, 무게, 질감과 색상으로 구성된 설치전경을 연극 무대처럼 한 측면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 즉 설치물은 관객과 실질적인 신체적 조우를 거부하며 오브제가 모래 속에 묻혀 있기도 하다. 실제로 “화이트 워리어(white warrior)”의 영상기록과 제례가 일어났을 법한 자연풍경 사진은 관객이 마주하고 있는 3차원 오브제가 일종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준다. 따라서 ‘네오-프론티어’는 조각과 오브제의 구분, 물리적인 무게감과 존재성, 관객의 신체와 조각/설치의 실질적인 관계성 등의 이슈를 다시 쟁점화한다. 설치된 전경이 특정 장면을 재현하기 위한 무대나 퍼포먼스의 배경으로 매개화되었다는 점에서 조각의 고전적인 정의(현존성, 물질성, 관객과의 조우)를 한층 더 강력하게 부정하는 셈이다. 물질성이나 비물질성, 대면이나 비대면의 구분이 점차로 모호해진 상황에서 우리 시대 조각을 비롯하여 3차원적인 설치가 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 고동연
국내외 아트 레지던시 멘토, 운영위원, 비평가로 활동해오고 있으며, 최근 저서로는 『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현대미술과 예술대중화 전략들』(2018)과 『The Korean War and Post-memory Generation: The Arts and FIlms in South Korea(한국 전쟁과 후-기억세대: 한국 동시대미술과 영화)』(런던, 러틀리지,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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