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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그림자의 그림자, 동시대 참조와 표절의 문제

최나욱

최나욱 | 전시디자이너·큐레이터 nowkch@gmail.com





프랑스 파리 에펠탑과 중국 마카오 파리지앵 호텔 앞의 에펠탑, 
경기도 안성 한 카페에 있는 에펠탑, 그리고 서울 목동  파리공원의 에펠탑. ⓒTripadvisor


1999년 헝가리 미술사학자 샨도르 라드노티(Sándor RADNÓTI , 1946-)는 『가짜(The Fake)』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며 ‘위작’의 문제는 아직 발전되지 않은 분과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창작자의 직업윤리와 창작 생태계가 건강할 때는 문제가 아닌 것이, 그렇지 않을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전까지 모방은 누군가의 저작물을 해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기리는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 가령 건축에서의 모방과 참조란 지난 건물을 보존하거나 지역성에 맞춰 새롭게 발전시키는 방식으로서 ‘물리적 거리’라는 분과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었다. 파리 에펠탑과 페루 마추픽추 같은 건물 모조품을 한데 모아 놓는 것은 일종의 수집이자 기념이었으며, ‘과거의 건물을 현재의 맥락에 가져오는’ 문제는 19세기 보자르부터 이어진 건축 교육의 핵심 담론이었다. 모조품을 의미하는 ‘레플리카(Replica)’는 17세기만 하더라도 먼저의 작품을 기리는 ‘답장(Reply)’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가 무차별적으로 폭증하면서 표절은 커다란 사회 현상이자 문제로 부상했다. ‘위작은 선후관계를 숨긴다’는 라드노티의 같은 책 속 정의처럼, 넘쳐나는 이미지 환경에서 창작의 선후관계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감춰지기 때문이다. 작품의 내막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니, 모방 때문에 원작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아예 원작자의 영광을 가로채는 사례가 늘어난다. ‘레플리카’는 이제 답장이 아니라 사태를 악화시키는 스팸으로 보인다.

이와 동시에 예술이 대중과 시장에 종속되는 풍경은 다분히 징후적이다. 시장 가치를 좇아 예술의 기본 원칙과 가치가 무너지는 사례가 허다하게 일어난다. 잇따라 창작자들 역시 직업윤리를 책임지기보다 산업 내 법적 책임을 피해 가는 정도에 머무르면서 이것이 오늘날 창작의 현실이 되어간다. 라드노티의 표현을 따르자면 우리는 ‘발전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고, 따라서 표절은 정말 중요한 문제가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표절은 말 그대로 사회현상인 까닭에 구태여 대응하기도 곤란하다. 표절을 범하는 이에게 예술은 그저 명목일 뿐, 그에 대한 인식은 부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시대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표절에 대응하는 일은 구태의연한 일로 여겨진다.

자연히 예술과 산업 전방위로 성취를 거둔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1980-2021)의 태도가 모범적으로 보인다. 아블로는 자기 창작물이 표절되는 일에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 방식이 시장에 먹히는구나! 정도로 생각한다”고. 사실 버질 아블로야말로 ‘인용’을 자신의 시각 기호로 삼으며 ‘맆-오프(rip-off)’를 작업의 방법론으로 구축한 인물이니 시대를 갈음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컨대 그가 작업의 원천으로 삼는 마르셀 뒤샹이 100년 전 복사본을 통한 예술 창작이 ‘상업적 덧없음(commercial ephemeral)’의 감각을 일깨워졌다면, 아블로는 일련의 ‘덧없음’이 기본 전제가 되어버린 세상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다면 그에 뒤이어 ‘참조의 참조’를 해나가고 있는 아블로 이후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어떠한가. 유명한 비유대로 ‘그림자의 그림자’로부터는 점차 원래의 대상을 가리키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그리고 글의 처음에서 라드노티를 빌어 말한 것처럼, ‘덧없다’는 감각은커녕 전제조차 얘기 꺼내기도 어려워지는 중이다. 과연 모방에 잇따른 원작 가치의 훼손도, 창작자의 무너진 직업윤리도 그저 관망해야 하는 사회현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걸까? 그러나저러나 “상인들이 좋아한다면 누가 만들었든 무슨 상관이냐”고 라드노티가 『가짜』라는 책에서 쓴 이 구절은, 20년이 지나 ‘상인’이 대중’으로 확대된 오늘날 더욱 파급력을 지닌다.



'커먼 그라운드'를 주제로 치러진 2012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국의 건축 스튜디오 FAT는 ‘모방’을 사회현상으로 바라보며
‘베끼는 것의 박물관(The Museum of Copying)’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사진은 수많은 모방의 대상이 되었던 빌라 로툰다를 해석한 작업 ‘The Villa Rotunda Redux’. ⓒFAT Architecture


- 최나욱 (1994- )
 『건축평단』 편집위원. 전시 <The Long Now>(서울, 2021), <Instead of an Afterwards>(홍콩, 2022) 기획 및 다수의 전시 디자인. 뉴욕 Storefront for Art and Architecture 코디네이터, 월간 『SPACE』 기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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