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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① 두 다리 이야기: 경계가 흐릿해지는 창작에 대하여

전종현



2021 ①
두 다리 이야기: 경계가 흐릿해지는 창작에 대하여 




전종현 |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결코 테크놀로지에 박식하지 않다. 테크놀로지의 산물은 사람을 매혹하는 신비함을 지니고 있는 터라 호기심의 눈을 반짝이며 구경꾼 노릇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그 근간을 이루는 공학, 특히 컴퓨터와 관련한 여러 지식에는 아주 젬병이다. 전 세계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연구하며 진보를 멈추지 않는 최신 테크놀로지를 이번 글의 중심 소재로 가져오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루는 이유는 명확하다. 지금 다뤄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각 예술에서 창작을 논할 때 테크놀로지를 함께 말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직무유기다. 우리는 창작과 테크놀로지가 맺는 상호 관계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트와 테크놀로지-새로운 통합!’ 현대 디자인의 계보에서 신화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바우하우스의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1923년 8월 15일 열린 바우하우스 주최의 전시회 개막식에서 학교의 새로운 모토를 외친 후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테크놀로지는 아트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트는 테크놀로지를 아주 많이 필요로 한다.” 100여 년 전 광오할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한 상황은 시간이 흐르며 얼마나 달라졌을까. 지금은 성 추문으로 디즈니에서 영구 퇴출당하여 그의 말을 인용하는데 도덕적인 회의감이 들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만을 활용해 만든 3D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탄생 주역으로 존경받던 존 라세터John Lasseter는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상관관계를 조금 더 우아하게(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아주 비슷하게) 풀어낸 바 있다. “아트는 테크놀로지에 도전하고 테크놀로지는 아트에 영감을 준다.” 


두 사람이 테크놀로지에 너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터 그로피우스만 하더라도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와 함께 근대 건축의 4대 거장이라 불릴 정도로 건축계에서 알아주는 성골이고, 존 라세터 또한 만화를 너무나 좋아해 디즈니 입사를 목표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Arts)를 졸업한 정통 애니메이터임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들이 주창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아트의 의존성은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프레임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테크놀로지를 옹호하고, 아트를 전적인 수혜자이자 집착꾼으로 만드는가. 그만큼 새롭고 혁명적인 테크놀로지가 아트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 


나는 이번 글에서 두 개의 다리를 다루려 한다. 다리는 교량의 다른 말로 보통은 건축에 속한다. 떨어진 지점을 연결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디자인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단절된 세계를 잇는다는 속성은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다리가 지닌 조형 자체에서 미적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아트에 속할 수 있다. 건축, 디자인, 아트의 영역이 겹치는 교집합인 다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일단 섣부른 판단은 미루어 두자. 아직 어떤 다리인지 소개조차 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생각하는 다리와 똑같으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찬찬히 뜯어보면 완전히 다른 대상으로 간주할 만큼 다층적인 레이어가 두텁다는 게 특징이다. 그럼 먼저 첫 번째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지난 7월 22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다리 하나가 설치됐다. 교량 문화가 발달한 베네치아에 다리 하나가 설치된다고 뭐 그리 호들갑일까 싶지만, 이 다리는 뭍과 뭍을 연결하는 기능성을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이 열리는 비엔날레 공원Giardinidella Biennale 근처에 있는 마리나레사 공원Giardinidella Marinaressa에 설치했기 때문이다. 즉, 반반한 땅 위에 세워진 놀이기구 같은 다리다. 마리나레사 공원은 작지만, 행인들의 쉼터로 오랜 기간 사랑받은 곳인데 거기에 설치한 다리라면 일종의 설치미술이나 조각의 하나로 생각해야 할 수도 있다. 실제 이 다리는 현재 진행 중인 ‘2021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을 기념해 유럽문화센터(ECC)에서 주최한 전시 《Time Space Existence》의 일환으로 설치한 것이다. 공원 중앙에 총 5개의 입구 겸 출구를 가진 입체적인 다리를 설치해 공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설치 작업을 즐길 수 있는 허브 역할을 담당한다. 임시 설치물이지만 그 수준은 공학적으로 매우 완벽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스트레이터스 브릿지



이 다리의 이름은 ‘스트레이터스Striatus’. 스트레이터스는 철근 같은 보강재나 모르타르 같은 접합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세계 최초의 건식 조립형 콘크리트 다리’다. 보통 콘크리트는 홀로 사용하기엔 그 강도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내부에 철근을 삽입해 구조를 세우는 철근 콘크리트 공법을 통해 건축에서 흔하게 활용한다. 또한 접합재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습식 마감을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스트레이터스는 어떻게 상식을 따르지 않고도 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비밀은 이름의 유래인 ‘줄무늬striated’에 숨겨져 있다. 3D 프린터로 출력해 줄무늬가 남아있는 53개의 콘크리트 프린팅(CP) 패널을 고대 로마의 아치 공학과 결합한 하이브리드 창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3D 프린팅은 지금까지 인류가 창작에 활용했던 ‘절삭 가공Subtractive Manufacturing’과는 정반대로 안에서 밖으로 층층이 쌓아 형태를 만드는 ‘적층 제조Additive Manufacturing’를 본질적인 특징으로 삼는다. 컴퓨터에서 3차원을 구현하는 CAD 프로그램에서 외형 설계를 마친 후 3D 프린터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출력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고, 적층을 위해 슬라이싱 기능을 활성화해 파일 데이터를 모두 얇게 저미면 3D 프린팅을 사용할 준비가 끝난다. 이제 프린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재료가 켜켜이 쌓이는 것만 잘 지켜보면 될 일이다. 이런 환경에서 500번의 움직임이 구축한 500개의 촘촘한 레이어가 바로 스트레이터스의 CP 패널이다. 그 강도는 충분히 높고, 속은 비어 있어 가볍기까지 하다.


스트레이터스는 공학과 디자인, 테크놀로지와 전통을 절묘하게 융합한 3D 콘크리트 프린팅 구조물의 신기원이다. 다리 디자인은 공학적인 안정성을 기반 삼아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교ETH Zurich의 블록 리서치 그룹과 유기적인 건축으로 잘 알려진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Zaha Hadid Architects 산하의 리서치 조직 자하 하디드 컴퓨테이션 & 디자인 그룹(ZHACODE)에서 맡았다. 여기에 3D 콘크리트 프린팅 전문 회사인 인크리멘털3D와 건축 재료 기업 홀심Holcim까지 모두 모여 협업했다. 정확한 공학에 근거해 서로 다른 53개의 CP 블록으로 다리를 나눈 후 3D 프린팅으로 압축력과 인장력을 구비한 CP 블록을 출력한다. 이후 다리 아래에 나무 구조물을 놓은 후 고대 로마에서 유래한 아치 기하학을 그대로 계승해 블록을 개별적으로 건식으로 조립하며 마치 유연한 생명체처럼 곡선으로 가득한 어려운 구조물을 결과적으로는 매우 간단하게 시공한 것이다. 스트레이터스는 3R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바로 절약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이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의 재료로 CP 패널을 만들어 절약을 극대화했다. 여기에는 탄소 배출도 해당된다. 게다가 접합재를 사용하지 않은 건식 공법이므로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곳이 있으면 해체 후 옮겨서 재조립할 수 있다. 더불어 재료가 3D 프린팅용 콘크리트라 이를 재료로 환원하면 다른 목적에 맞게 재활용할 수 있다. 현재 중시되는 트렌드까지 모두 잡은 똑똑한 다리인 셈이다.





스트레이터스 유튜브 영상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곧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이것은 교량 건축인가, 흥미로운 다리 디자인인가, 다리의 껍질을 쓴 설치 미술인가, 더 나아가서 고대에 존재했던 크래프트의 현대적 변용인가. 현대 건축 공학과 유기적인 디자인과 전시를 위한 설치의 특성과 고대의 아치 기법을 제외하면 남는 건 3D 프린팅뿐이다. 스트레이터스는 3D 프린터로 뽑아낸 콘크리트 패널을 공학의 힘을 빌려 정교하게 아치형으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결국 작년과 올해 들어 폭발적으로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3D 프린팅 건축 혹은 대형 구조물의 또 다른 변형인 셈인데, 앞서 살펴봤던 교집합의 절묘함을 생각해보면 향후 디자인과 아트 쪽에서 생성할 설치물의 프로토타입이자 매우 기대되는 영감의 대상으로 기능할 것이다. 이미 시민들이 열심히 즐기고 있고, 친환경적 매력까지 갖춘 셈이라 기본적인 시장 조사는 끝났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이 사례를 기반으로 나오는 구조물에는 과연 어떤 라벨을 붙여야 할까. 디자인? 아트? 건축? 스트레이터스를 보면 이런 경계를 나누는 게 무의미해짐을 느낀다. 흐릿해진 경계 사이로 튀어나오는 창작의 생동감과 그 힘에 압도당하는 마당에 그 무엇이 중요하랴. 어쩌면 테크놀로지가 내뱉은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이제 다른 다리로 가보도록 하자. 장소는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이다. 지난 7월 19일 암스테르담의 오래된 명소인 홍등가red-light district가 위치한 아우데제이츠 아흐테르뷔르흐발Oudejds Achterburgwal 운하에 다리가 설치됐다. 커다란 크레인이 본체를 잡아 올린 후 예정된 위치에 내렸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네덜란드의 막시마 왕비가 축공식에 참여할 정도로 현지의 관심은 뜨거웠다. 대체 어떤 다리길래 한 나라의 왕비까지 발걸음을 했을까. 약 12.5m의 길이에 너비는 6.3m 정도로 아담한 다리는 소용돌이치듯 섬세한 곡선이 집약된 다리 진입부와 S자 곡선으로 흐르는 다리 본체부터 이미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리의 재료는 오직 스테인리스 스틸 하나다. 무게는 4.5t. 심미적으로 마치 조각품을 대하는 느낌을 주는 이 다리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Digital Fabrication이 크래프트와 디자인, 건축, 공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세상에 나타난 집약체다. ‘금속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 다리’라는 수사로 온 세상에 그 존재를 알렸지만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 쉽게 요약할 수 없는 다층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다리 축공식에는 네덜란드 막시마 왕비가 참석했다.




이 ‘브릿지 프로젝트’(정말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네덜란드의 3D 금속 프린팅 기업인 MX3D가 주축이 되어 2015년 시작한 이래 여러 시행착오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2021년에 제 자리를 찾은 경우다. 이미 2018년 다리 뼈대 프린팅을 완성한 후 그해에 열린 ‘더치 디자인 위크’에 선보이기도 했으니 돌아온 길이 꽤 먼 셈이다. MX3D는 다축으로 움직이는 로봇팔을 기반으로 각도의 제한 없이 로봇팔 끝에 달린 노즐로 허공에 금속 와이어를 짜내고. 동시에 이를 고온으로 용접하며 그 즉시 금속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번 브릿지에 들어간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를 추정해보면 약 1100km에 달한다고 하니 다리의 규모에 비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엄청난 길이다. 생명력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팔 4개를 동시에 사용했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이 들었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이 디지털 설계도와 기계 세팅을 완료한 후 클릭 한 번에 완벽한 결과물을 바로 내보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MX3D에서 일하는 인력들도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총 7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브릿지 프로젝트가 중간에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는 MX3D라는 회사, 그리고 동명의 다축 3D 프린팅 기술이 탄생한 계기가 바로 브릿지를 만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브릿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MX3D 작업장 전경. 완성된 브릿지가 보인다.



여기에서 MX3D 뒤에 존재하는 인물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바로 네덜란드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인 요리스 라만Joris Laarman이다. 1979년생으로 2003년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이듬해 요리스 라만 랩을 설립해 다학제적 인력들과 함께 여러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작업을 선보이며 조각적이면서도 동시에 공예적인 밀도를 가진 디지털 크래프트의 태도로 디자인의 미래를 개척할 차세대 거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요리스 라만이 휴먼 스케일을 넘는 거대한 창작물을 염두에 두고 이를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으로 구현하기 위해 공동 창업한 회사가 바로 MX3D다. 미국의 오토데스크Autodesk가 제공한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3D 프린팅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며 말리던 금속 3D 프린팅 기술을 계속 시도하면서 자동차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던 로봇 팔을 데려와 방향에 상관없이 움직이는 다축 3D 프린팅 노즐을 구축했고 화재 등 각종 위험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독자적인 3D 금속 프린팅 기술을 확보했다. 실제 사람의 키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곡선이 아름답게 반복되는 ‘드래곤 체어’ 등을 통해 만족할 만한 데이터를 쌓으면서 동시에 진행했던 게 조각적 창작물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 브릿지였다. 원래는 운하 양쪽에서 로봇팔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면서 실시간으로 3D 프린팅을 진행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는 멋진 기획안을 내놓았지만, 기술적인 문제, 안정성과 더불어 금속 용접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암스테르담시 당국에서 현장 제작을 반려하며, 부둣가 근처의 옛 조선소 자리에 터를 잡은 작업장에서 다리의 뼈대를 완성체로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브릿지 프로젝트 유튜브 영상




2021년 설치됐지만 이미 본체는 2018년 완성한 브릿지는 MX3D가 펼친 놀라운 금속 3D 프린팅 기술의 결과물로만 가두기엔 꽤나 복잡하다. 먼저 요리스 라만은 브릿지를 디자인하면서 ‘생성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을 사용했다. 생성적 디자인은 특정 알고리즘을 설정해 주어진 조건과 목적에 맞춰 컴퓨터가 데이터를 계산한 후 인간이 생각하지 못하는 예시까지 훑으면 인간이 그에 대해 판단을 하며 컴퓨터와 함께 머리를 맞대 최적의 상태를 구축하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방법론이다. 이를 통해 그는 무게중심이나 압축력, 인장력, 강도, 회전력 등을 만족시키면서 심미적으로도 아름답고 최소한의 재료를 투자해 효율적으로 구현 가능한 디자인을 뽑아냈다. 그리고 이는 다축 3D 금속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실체로 구현됐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바로 센서다. 오토데스크를 비롯해 영국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다국적 건축 엔지니어링 기업 에이럽Arup, 그리고 데이터 사이언스, AI 연구과 관련해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연구소인 앨런 튜링 인스티튜트The Alan Turing Institute까지 업계 최고 수준의 회사와 기관이 이 브릿지 프로젝트에 합류했는데, 금속으로 만든 최초의 3D 프린팅 다리에 대한 오리지널 데이터는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2021년 다리를 실제 장소에 놓기 전부터 3년간 정교한 센서 네트워크를 구축 및 설치하고,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해 실시간 모델로 표현하는 방법을 구축해왔다. 다리 곳곳에 설치한 센서는 다리의 변형, 회전, 하중, 진동과 같은 구조적 데이터를 포착하고, 금속제 3D 프린팅 다리 부근의 공기 질과 온도 같은 환경적 요인까지 측정한다. 이런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디지털 세계로 전송되어 현 상태를 가상으로 동일하게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브릿지와 관련되어 수집된 모든 데이터는 향후 2년간 연구할 수 있도록 시의 허락까지 완벽히 받은 상태다. 그렇기에 이 디지털 트윈은 연구원들이 다리의 상태를 확인하고 다리가 어떤 변화에 노출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완벽한 기록물로 기능한다. 이런 상황적 맥락까지 고려한다면 브릿지 프로젝트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생성적 디자인 알고리즘, 다축 3D 금속 프린팅, 센서에 기반한 실시간 디지털 트윈까지 모두 융합된 ‘살아있는 초학제적 실험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주도한 요리스 라만은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을 통해 21세기의 크래프트와 디자인, 3D 프린팅을 서로 긴밀하게 엮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에서 중요한 건 첨단 기술처럼 눈에 보이는 도구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최종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의 인내력과 안목, 즉 장인 정신이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암스테르담의 한 운하에 놓인 이 다리는 현재 존재하는 각종 기술을 응집한 교량이자, 복잡한 기하학적 유기성이 전달하는 미적 감흥의 대상이며, 더불어 디지털 시대에 출현한 새로운 크래프트의 미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한다면, 요리스 라만의 암스테르담 브릿지는 우리에게 스트레이터스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과연 기존 시각 예술의 범주로 이 다층적인 대상을 구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이다. 스트레이터스와 비교해 훨씬 더 진보한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있음 직한 개연성을 발휘하는 아트 피스의 특성을 함께 성취했다면, 차라리 흐릿한 경계 어딘가에 놓은 채 이를 호출할 때마다 모이는 산발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실체와 위치를 가늠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과격한 걸까.


지금까지 살펴본 두 개의 다리는 2021년 3D 프린팅의 현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물론 그 완성도가 무척이나 높다는 점에서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3D 프린팅의 지금을 논하기에 적절한 대상일 수도 있다. 2014년을 기준으로 3D 프린팅에 대한 대중과 업계의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3D 프린터가 바꿀 수 있는 미래상에 대해 모두가 환호했으며, 그 가능성의 전초를 보여주는 여러 프로토타입을 보며 열광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현실과 가까워졌다가 환상이 무너지면 몰락하며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진 후 지독한 과정을 거치며 일상에 편입되는 특징을 가진다. 미국의 정보기술 예측기관인 가트너Gartner의 ‘하이프 사이클 Hype Cycle’은 그런 경향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하이프 사이클에 따르면 테크놀로지의 성장 주기는 총 5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기술 촉발’이다. 잠재적인 테크놀로지가 관심을 받는 시기로 상용화된 제품은 없고 상업적 가치도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다. 두 번째는 ‘부풀려진 기대의 정점’이다. 일부의 성공 사례에 대중들이 열광하고 일부 기업이 실제 사업에 착수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관망하는 상태다. 세 번째는 ‘환멸’ 단계다. 대중에 선보이는 결과물이 계속 실패를 거듭하면서 관심은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제품화를 시도한 주체들은 포기하기 시작한다. 살아남은 주체들이 테크놀로지의 수준을 높이며 제품의 가능성을 향상할 때 투자가 이루어진다. 네 번째는 ‘계몽’ 단계다. 테크놀로지의 결과물이 성공적이고 사업성이 있다는 사례들이 속속들이 나타난다. 2, 3세대 제품이 출시되면서 더 많은 기업이 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는 ‘생산성 안전’ 단계로 테크놀로지가 시장의 주류로 진입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는 시점이다.


2014년의 3D 프린팅은 두 번째 단계인 부풀려진 기대의 정점이었고, 그 이후 환멸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5년 넘게 3D 프린팅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것은 3D 프린팅 업체와 결과물 중 적자생존을 통해 살아남은 유산이 시장성을 탐구하며 내실을 다져왔기 때문이다. 2019년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을 보면 3D 프린팅은 계몽 단계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현실에 쓰일 수 있는 방면을 찾아 투자가 몰리고 있고, 그 분야는 현재 작은 물건이 아니라 거대한 구조체를 모듈 형식으로 구현하거나 통째로 구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즉 건축의 속성과 감응하며 살아남는 방향을 깨달은 것이다. 올해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3D 프린팅 주택에 대한 각종 소식이 들려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글에서 다룬 두 개의 다리는 3D 프린팅이 초학제적 창작의 대상이자, 시각 예술에서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창작물로서 기능하는 매우 귀한 예다.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에서 생성되는 여러 가지 질문들은 흐릿해지는 창작의 경계에 대한 영감과 논의점을 부르며 우리가 디지털 패브리케이션과 관련해 미래에 계속 묻고 답해야 하는 근원을 찌르고 있다. “미래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효율성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놀이, 아름다움, 유머, 예상치 못한 모든 것, 그리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의 혁명적 변화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요리스 라만의 이런 말에서 예상치 못한 두근거림을 느끼는 까닭은 우리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진보적인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미래에는 정답이 없으니 말이다.




필자: 전종현 harry.jun.writer@gmail.com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하며 현재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다.



이 원고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2021 시각예술 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을 받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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