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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누가 ‘불안’의 얼굴을 보았나

천수림

금색 별이 반짝이는 밤, 한 사내가 빈 그릇을 들고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사내가 아니다. 마치 SF영화에나 등장할 만한 파충류와 인간의 혼합체로 보이는 이 생명체는 18세기 영국의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그림 <벼룩 유령>(The Ghost of Flea, 1819-20)이다. 기묘하며 불가사의한 이 생명체는 그 시대의 불안을 소재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한 인간이 피를 갈망하다 벼룩으로 변했다는 공포스러운 상상력은 점점 전쟁과 도시화로 치닫는 당시의 현실을 담고 있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변화는 그의 다른 작품에도 노예무역, 자유 등 당시 사회상이 드러나고 있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전경


블레이크의 <벼룩 유령>처럼 한국 전설에도 기괴하며 신비로운 괴물이 등장한다. 이름은 ‘독흑리(禿黑狸)’. 『해동고승전』에는 ‘독흑리’,『 삼국유사』에는 ‘칠한 것처럼 까만 여우’로 표현되고 있다. 독흑리는 온몸이 새까맣고 머리에 털이 없으며 3,000세 이상 장수하면서, 사람보다 지혜로워 앞일을 내다볼 줄 안다.

“『해동고승전』의 원광법사 이야기 대목의 <독흑리>에서 독흑리가 자기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을 때 원광법사에게 보여준 모습은 매우 거대한 사람의 팔 모양이었다 한다. 크기가 아주 커 하늘 위 구름을 뚫을 정도다. 
팔 부분만 보이기 때문에 다른 부위의 모습이 있는지 없는지는 명확지 않다.”
- 『한국괴물백과』 워크룸 p.137

인간이 갖는 불안에 대한 감정은 마치 독흑리의 이미지와 같다. 전체를 볼 수 없으며 보기를 원한다면 팔 부분 정도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독흑리는 사람에게 환상을 보여줄 수 있으며, 삶에 대한 깨달음을 원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팬데믹(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두려움과 지금껏 인류가 구축해왔던 문명 시스템에 대한 점검과 새로운 담론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일깨우고 있다.



비디오로즈, 달의 정원, 2021


우리가 느끼는 일상의 불안은 바이러스라는 육안으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데’에서 기인한다. 사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겪기 전에도 전염병은 먼 과거에도 반복된 일이었다.

“중국의 표의문자는 천상의 흐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신탁과정에서 시작되었다.”
- 『오버레이』 루시 라파드 지음, 윤형민 옮김.
현실문화연구 p.124

불안의 정서와 징후를 감지하고, 해결하고 싶은 욕망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있어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 한 해 미술계와 문화계에서는‘팬데믹’과 관련한 전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각 문명권을 통해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의 기원과 근원적인 의미를 추적하는 전시가 눈에 띈다. 

언주라운드 개관전 ‘크랙’에서는 박지원 작가가 부적으로 쓰이는 호랑이에 관한 아이콘을 재해석한 <호벽사입체부적(虎辟邪立體符籍) 2020> 등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상징을 되돌아보게 했다.

현재 전시 중인 일민미술관의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2021.4.6-7.11)는 팬데믹으로 인해 길을 잃은 마음을 치유할 명리학, 점성술 등을 예술적 도구로 도입해 ‘운명’의 의미를 제고했다.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 선보인 김상돈의 <카트>와 <행렬>은 한국의 샤머니즘, 식민기억, 현대정치, 과잉소비 등의 요소를 동원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통합적인 접근은 사회적 상처의 회복과 애도, 회개를 기대하게 만든다.

불안정한 시대를 건너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도 우리는 ‘불안’의 얼굴이 궁금하다. 벼룩 유령, 독흑리처럼… 그 얼굴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 누가 그 얼굴을 보았다 할 수 있을까.


- 천수림 월간 『사진예술』 편집장, 서울사진축제 프로그램디렉터 역임. 현재 아트스페이스 언주라운드 부관장. 일우사진상 수상자 이동근 개인전 ‘아리랑예술단:유랑극장’(일우스페이스), 언주라운드 개관전 ‘크랙; C-R-A_C-K’, 안옥현 개인전 ‘뤼야; Say Love Me’전 등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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