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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현대미술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갖게 해준 이세득 화백

장일범

내게 처음 미술을 알게 해준 사람은 외삼촌이었다. 외삼촌은 1958년에서 62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구상에서 비구상 그리고 추상회화를 그린 이세득(1921-2001) 화백이었다. 난 어린 시절부터 외삼촌 댁에 가서 수많은 그림과 모던한 가구, 책장에 꽂힌 세련된 디자인의 최신 미술 관련 도록들을 보면서 가슴이 뛰놀았고 그 멋스러움에 감탄했다. 어느 구석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외삼촌 댁의 미술관처럼 질서정연하면서도 새로운 예술품들로 가득한 모습은 경이로웠다. 특히 외삼촌의 화실에서 나는 유화 냄새와 함께 뭔가 새롭게 캔버스에 펼쳐지는 창작의 공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외삼촌은 국제교류 전시를 대단히 많이 기획했기에 나도 세계 미술에 대한 국제감각을 알게 모르게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경주 선재미술관 초대관장도 했었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외삼촌이 도록을 통해 전해준 현대미술계의 동향이나 유명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알게 되면서 앞서나가는 아방가르드 현대미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고 지금도 고미술이나 근대 미술도 좋아하지만 현대미술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세득, 인류의 역사, 1962,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외삼촌의 화풍은 다양한 시기를 거치게 되는데 어둡고 검은색을 선호하던 시기, 한국의 단청을 활용한 시기, 국립극장의 예전 무대 막인 태피스트리 작품을 한창 제작하던 시기도 있었다. 미술평론가 고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지성과 감성의 중간에 서서 고요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미의 곡예사’라고 평했는데 화사한 색채가 어두운 색채와 어울릴 때의 묘한 쾌감이 날 사로잡았다.

내가 외삼촌의 회화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교과서에도 나왔던 <인류의 역사>라는 거대한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웅장하고 장대한 인류의 흐름이 담겨있는 이 호방한 기상의 작품이 너무 보고 싶어 대학생 때 일부러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아간 적도 있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프랑스 대사관저나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경주 힐튼 호텔 등 어디선가 외삼촌의 그림을 우연히 만나게 될 때면 뛸 듯이 기뻐서 한참을 그 앞에 서 있곤 했다.

내가 미술 작품을 시간을 넉넉하게 공들여 보게 되는 때는 일 년 중에 해외에 나갈 때다. 해외에 나가는 일 중에 대부분은 주로 오페라를 보러 가게 되는데 뉴욕이나 빈이나 파리 등지에 가면 아침에서 낮까지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과 설치 미술에 흠뻑 취하고 2, 3시간 쉬었다가 저녁에 오페라와 클래식 공연을 감상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의 하루가 완성된다.

카셀 도큐멘타, 베네치아비엔날레에 몇 차례 가서 경험하고 롯폰기 모리아트센터에 시간 날 때마다 들른 것도 현대미술을 더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현대의 창조적이고 새로운 시각과 사회 현상에 대한 꼬집기, 재미난 비틀기가 내겐 무척 즐거웠기 때문이다.

난 현대미술은 대중들에게 비교적 잘 받아들여진다고 본다. 그런데 현대음악은 아직 청중들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래서 난 현대음악도 현대미술 보듯 즐겨달라고 클래식 음악팬들에게 말한다. 최근에 베를린을 찾았다가 베를린 슈타츠오퍼(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을 찾았다.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근대 작품을 도이치오퍼에서 볼까 하다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년 2019년에 만들어진 현대 작품인 작곡가 베아트 푸러의 신작 오페라 <보라빛 눈> 공연을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택했다. 이 작품은 끝없이 눈이 와서 지하실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작품은 러시아의 고전적 명화 <눈 내린 풍경>으로부터 시작되어 끝도 없이 눈이 내리는 시각적 효과가 마치 빌 비올라의 작품을 보는 듯했고 내용은 탈출할 수는 없지만 눈이 그치고 찾아올 봄에 대한 희망을 갖는 사람과 절망하는 사람으로 나뉜 내용이 마치 ‘설국열차’를 보는 듯했다. 이 오페라는 현대미술이었다. 이제 현대오페라와 현대미술은 거의 비슷한 포맷이 되어 감을 느끼게 했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 없이 현대오페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장르와 시대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외삼촌이 현대 추상화가였기 때문에 나는 어떤 현대미술이라도 거부감이나 장벽 없이 어린 시절부터 편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다양한 장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 것 같아 감사하다.

- 장일범(1968- )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학사,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성악과 수학. 서울사이버대학교 성악과 겸임교수, KBS 라디오 ‘장일범의 가정음악’진행자, MBC TV예술무대 MC 역임. 공연기획사 예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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