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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색깔의 정치

이선영

한국의 선거철은 색으로 시작한다. 거리와 뉴스를 채우는 유력 정치인과 그 수행원들의 행보는 각 당을 상징하는 색으로 도배된다. 선명한 빨강, 파랑, 노랑, 녹색으로 맞춰 차려입은 각 당의 관계자들은 패딩 점퍼를 비롯해서 목도리나 마스크까지 깔맞춤은 물론이고, 국민을 향해 주의주장을 펼치는 무대 또한 각 당의 상징색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색의 물결은 미학적인 현상이기도 하므로 미술인으로 생각해볼 만하다. 색채학자 에바 헬러에 의하면, ‘인간은 어려서부터 색을 언어와 함께 배우기에 내면화된다’고 말한다. 공기처럼 편재하는 색은 이전 시대에 생각되었듯이 영혼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상징적 우주에서 태어나는 인간에게 색은
정체성을 형성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좌) 윤정미, 블루 프로젝트-기헌이와 기헌이의 파란색 물건들, 서울, 한국, 2007 라이트젯 프린트, 2007 ©Artist
우) 윤정미, 핑크 프로젝트-서영이와 서영이의 핑크색 물건들, 서울, 한국, 2016 라이트젯 프린트, 2016 ©Artist


오랫동안 양자 대결을 통해 집권당이 만들어지는 전통 아닌 전통 때문에, 청색과 붉은색이 압도적이다. 또 다른 색채학자 마가레테 브룬스(Margarete BRUNS)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파랑과 빨강은 가장 강렬한 긴장감을 주는 대립 색으로 유채색을 대표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기본색은 너무 강하게 눈을 찔러온다. 거의 반사적인 행위를 유도하는 신호등같은 느낌이다. 색채론에서 정의하는 기본색은 ‘다른 색을 혼합해서 만들 수 없는 색’이며, 빨강, 노랑, 파랑이 그에 해당된다. 이 기본색은 각 당파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순색의 정치학은 단순하고 거칠고 배타적이다.

집단적인 색의 연출은 적과 싸우기 위해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선거철에 자기만의 색다른 주장보다는 네거티브가 범람한다. 스스로가 아니라 적을 통해서 나를 규정짓는다. 특히 당파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등장하는 색깔론은 직관적으로 우리/너희라는 구별을 알리는 기표이다.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극적인 경제적 발전에 따른 문화적 감수성의 동반 상승은 색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왔다. 패션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색도 선택하는 세련된 취향을 비롯하여, 인공적 연출보다는 자연 그자체를 향유하려는 이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찬란한 자연의 색이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삼원색 정치판은 신호등처럼 일차원적이다. 빨강은 보수를, 파랑은 진보를, 노랑은 정의를 상징하는 색으로 선전된다. 여기에서 각 당의 주의주장은 반복할 필요는 없고, 색으로 역추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보수라는 오래된 가치 기준은 피와 대지를 떠올리는 빨강, 저 높은 곳의 초월적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파랑, 그리고 햇살처럼 만물에게 깃드는 평등한 노랑 등이 연상되다. 하지만 각각의 색이 각 당의 기조인 자유, 평등, 정의와 연결되는가. 지지도 면에서 압도적인 두 계파에 한정지어 본다면, 피와 대지, 즉 혈연과 지연에 얽매는 것이 자유주의일까. 발전주의와 헷갈리기도 하는 진보는 애초의 의도와 달리 계층의 격차를 좁히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 큰 대립 세력이 나머지의 목소리를 잠재워왔다. ‘기타’로 간주 되는 소수정당의 상징색인 노랑이나 녹색의 가치는 거친 이항 대립의 속에서 약간의 변수로 작동할 뿐이다. 단색의 단조로움을 벗어나는 진정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세력은 정당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진입하지 못하고 소수집단으로 머물러 있다. 이 소수자들이 무지개색을 기치로 내세우는 것 또한 상징적이다. 일찍이 경쟁력 있는 정보문화를 발전시킨 우리는 대세에 민감한 경향이 있어서, 될 사람 밀어주자는 식의 전략적 사고가 팽배했다. 이러한 암시적, 명시적 압박과 요구는 개별적 목소리들을 위협하고, 집단주의라는 정치적 퇴행을 낳는다. 개성을 중시하는 예술이 어떤 당을 지지하든 결국 배반당하는 이유이다. 총천연색은 O/X 또는 흑/백의 사고를 위장하는 색에 불과하다. 빨강/파랑/노랑 같이 각 당파를 지배하는 총천연색을 피상적으로 만들 진정한 변수는 다른 색이다. 그것은 누가 주도권을 잡든 기본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는 관료주의이며, 그 색은 무채색이다. 관료주의는 본래 중립적이고 투명해야 하지만, 정치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칠고 배타적인 순색의 정치가 아니다. 경계면에서 색과 색이 섞여 발현되는 다양한 색의 인정과 공존이 정치의 진정한 목표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등단(1994). 웹진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 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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