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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너 자신을 알라 | 김성호의 미술계 팩션(8)

김성호

칠복! 그는 비평 10년 차, 40대 초반의 그저 ‘그렇고 그런’ 미술평론가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업으로 삼았던 비평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본업이 되면서 그는 피상적으로는 미술인들에게 나름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미술평론가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안다. 그가 혹자로부터 성실한 평론가로 거론되는 까닭이 순전히 그가 양심을 내다 팔았기 때문임을 말이다. 그는 개인전이나 기획전 서문을 늘 주례사로 생각하고 열심히 써서 청탁자에게 바쳤다. 쓰는 동안의 생각은 전혀 아니었어도 쓰고 나면 늘 주례사였다. 물론 변명은 있다. 미술가의 시각 언어를 텍스트로 잘 설명하고 유의미한 감상의 길로 독자와 관객을 인도하기 위해서 미술가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할 의무가 있다고 말이다. 아서라! 그래도 너무 했다. 돈을 위해서 그는 비평의 칼을 늘 칼집 안에서 뺀 적이 없다. 둔탁한 칼집을 들어서 늘 어떤 이상적인 방향만 가리킬 따름이었다. 비평문을 쓸 때마다 ‘비평다워야 할 비평의 욕망’을 스스로 거세하면서 사는 까닭에 칠복은 매번 속병을 하나둘 쌓아간다. 그는 자신을 ‘속물 중의 속물’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중이다.



김성호, 너 자신을 알라, 2020


아마도 그런 괴로움 때문이었을 게다. 칠복은 몇몇 문화재단 및 미술 기관으로부터 인터뷰 심사를 요청받아 ‘또 다른 비평의 기회’를 맞닥뜨리게 되면 태도를 늘 돌변하곤 했으니까. 문예진흥기금 공모에 지원한 한 원로의 화가에게는 왜 신진들의 기회를 가로막으며 이러한 공모에 지원까지 했느냐고 닦달하고, 한 해 동안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중견 작가에게는 왜 작업실에서 창작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이전 작품과 유사한 것들로 ‘재탕, 삼탕’하면서 전시에 목을 매느냐고 지원자를 윽박지르기도 했다. 평소 피력하지 못했던 ‘비평의 욕망’을 엉뚱한 대상을 향해서 쏟아붓고, ‘공정한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칼을 꺼내 마구 휘두른 꼴이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다. 아니!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칠복은 최근에 알았다. 자신의 독설이 엉뚱한 대상 위에 옮겨 쏟아붓는 ‘좌절된 비평 욕망’ 때문만이 아니라, 남을 평가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을 때 누구나 갖게 되는 욕망 때문인 것을 말이다. 최근 그는 한 공공미술심사 자리에서 만난 어떤 조각가의‘독설 가득한 비평’을 맞이했다. 심사위원석에 앉은 그 조각가의 독설은 ‘마땅히 그래야 할 공공미술의 이상’의 실천을 위해서 용인되어야 할 공정한 비평이었다고 할지라도 비평의 수위가 심해 보였다. 그 조각가의 눈에는 심사에 제출된 다수의 공공미술이 ‘조악하고 하찮은 것’이거나‘형편없는 것들’뿐이었다. 칠복은 생각한다. 만약 그 조각가가 거꾸로 지원자로서 공공미술 공모에 응했다가 심사에서 떨어진다면 무슨 말을 할까? 공공미술을 개뿔도 모르는 심사위원들이라고 욕을 할까? 칠복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심사위원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조각가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너 자신을 알라!’ 심사와 평가의 위치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는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다. 객관성에 기초한다고 할지라도 편견에 의지하기에 십상인 평가자의 입장에서 평가 대상(자)이 지닌 단점과 결점은 유난히 커 보이는 까닭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했던가? 평가자에 위치한 대개의 사람은 남의 결점 앞에서 자신의 결점을 못 보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칠복은 최근에 또 다른 사실을 알았다. 대개의 비평가가 청탁자로부터 돈을 받고 청탁자(의 작품)를 비평하게 될 때, 알게 모르게 주례사를 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칠복은 자신이 더는 비평을 지속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던져버리기로 한다. 다시 ‘못된 주례사’를 쓸지라도 말이다

*이 글은 팩션(Faction)이다.


- 김성호(1966- ) 파리1대학 미학 전공 미학예술학 박사. 모란미술관 큐레이터,『미술세계』 편집장,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중앙대 겸임교수, ‘2014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전시총감독, ‘2015 바다미술제’ 전시감독, ‘2016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총감독, ‘2018 다카르비엔날레 한국특별전’ 예술감독 역임. UNIST 박사후연구원. 현재 2020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여주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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