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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닫힌 문을 여는 예술

이선영

리경, more Light, 2012, 코리아나미술관 설치 전경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전파와 차단 관련 긴급재난 문자가 하도 자주 와서 긴급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생태학자들이 경고했던 비정상의 정상화다. 인간은 큰 덩어리의 자연을 계속 파괴해왔다. 이제는 인간보다 선재 했으며 인간 이후에도 남아있을 보이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 대응할 주요 자연으로 대두됐다. 바이러스는 인간이 지구환경을 어떻게 망쳐놓는가에 따라 언제든지 새로운 모습으로 창궐할 것이다. 자연과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고리에서 취약한 부분은 계속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좀비화하면서 확장하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노력이 투여되고 있지만, 경제 사회 문화적 생태계의 폐쇄가 장기화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의 반 타의 반의 유폐 생활에 지쳐가고 있다. 이미 개인의 세계라는 것이 사라졌는데, 시스템은 그 안에만 있으면 된다고 명령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집단적 주체가 자주 호명된다. 남한의 정치·경제적 모순이 폭발한 1980년대는 집단적 주체가 역사의 무대를 차지했다. 그때도 민족은 아니었지만, 민중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련한 감정이 남아있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적으로 시민이나 국민으로 호명되는 집단적 주체에 회의적이다. 실망스러운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재난 상황에서 민주적 통제와 공권력 남용의 경계는 모호하다. 

전염병이 세계적 유행의 조짐이 보이면서 장기화 국면이 감지되는 요즘, 일단 자기 몫의 책임을 피해보자는 관료주의적 발상이 재난을 더욱 크게 다가오게 한다. 우선적으로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는 직군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 전부터 존재했던 위기가 증폭된 것이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면접촉이 점차 사라지는 가운데, 남아있었던 대면 접촉 관련 직업도 위기에 처한다. 이번 사태로 종교기관과 대학마저도 사이버 설교와 강의를 대안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각종 시험 준비와 직업교육 등, 지식정보의 전달 수단은 물론, 놀이와 쇼핑 등 여가 생활의 대부분이 비대면 관계로 대치되어온 현실에서, 뭔가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고 있는 느낌이다. 대면관계는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불완전하게 태어나 오랜 사회화가 필요한 인간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본능이 표출되는 장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에 비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다 보니 타자에 대한 적대감이 공존한다. 필요 이상의 것을 끝없이 요구하는 자본주의 속성상 타자와의 긴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위기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크게 한다. 타자는 희생양이 되어 기존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요즘 타자와의 사회적 거리를 두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붙어 있지 말고 흩어지라는 캠페인은 모든 것이 대규모가 되어야 경쟁력이 있었던 시대를 반성해야 하는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러한 거리 두기는 근대 이후 늘 소외되어 왔던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새삼스러울 게 없는 상황이다. 미술계에도 대규모 행사들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대형 종교집단의 행사들처럼 공적 제재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런데 대규모 대중과 무관한 개인전이나 작은 미술 행사들마저 무조건 미뤄지고 있는 게 문제다. 이 추세로 가다간 가뜩이나 후반기에 몰리는 미술 행사의 대란이 일어날 판이다. 일방적 행정 지침이나 자기검열로 오프닝 행사조차도 생략하는 소규모 활동까지 제약할 필요는 없다. 현대 예술은 소수자의 것, 즉 소수만이 이해하고 구매할 수 있는 물신적 대상이라는 부정적 함의가 있어왔다. 그러나 예술은 대안적 소수 역할도 했다. 근대예술가들은 요즘 권장되는 사회적 거리감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살았으며,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사회의 위기를 경고해 왔다. 중심 집중의 거대 사회는 이제 주변부에 있었던 예술을 주목할 때다.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하는 시점에서 사회적 거리를 표현해왔던 예술과 더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되돌아올 일상을 다른 차원에서 맞게 해 줄 작은 해방구들이기 때문이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미술평론 부문 등단(1994), 『미술과 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05) 역임. 제1회 김복진 미술상(2006),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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