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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박천남

봄이다. 입춘이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는 봄이다. 기온이 영하권을 살짝 맴돌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꽃 몽우리가 올라오고 철모르는 꽃나무는 꽃을 활짝 피웠다. 해마다 봄이면, 이른바 ‘꽃샘추위’라는 심술 맞은 녀석이 말 그대로 와버린 봄을 시샘하듯 예서제서 변덕스레 출몰한다. 자칫 감기들기 십상인 때다. ‘특이일(特異日)’이라고도 부르는 이유일 게다.

지난 뉴스에 따르면 강원도에 눈이 제법 내렸다. 봄에 내린, 철모르는 눈치고는 꽤 눈답게 온 모양이다. 산과 해변, 특히 백사장에 소복이 내려 화면으로 보기에도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했다. 봄을 시샘하기보다는 따뜻하게 반기는, 계절을 봄에게 넘겨주고 떠나는 늦겨울의 넉넉함, 이른바 서설(瑞雪)로 보였다.

철없는 세상이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한겨울에 개나리가 꽃을 피우고 춘삼월에 눈이 내리는 일은 변덕 아닌 변덕으로, 원죄 없는 새로운 일상으로 기어이 자리를 잡았다. 비단 철모르는 꽃들뿐이랴. 하우스에서 재배된 이런저런 과일이나 채소 등이 철없이 사시사철 존재감을 뽐내는 세상이다. 그러나 절기나 과일, 음식이 그러하듯 제철의 것이 중요하고 으뜸이라 하지 않던가?

제철 개념이 중요하듯, 미술동네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인사, 인재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말은 이들의 건강하고 합리적인 내적 양태를 말하는 것이다. ‘문화의 해’, ‘문화의 세기’라는 지난 수식어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21세기를 맞이한 지도 거의 사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작금의 대한민국 미술관문화 속에서 우리는 ‘일반직 공무원 관장’이라는 신박한 ‘퇴행’을 목도하고 있다.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내용과 무관합니다.
ⓒ Jeremy Bishop, 출처: Unsplash


전문가의 전문성이 외면당하는 요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은 제철에 반하는, 철없는 특이 정황이 배태한 심리지형으로 이해된다. 요즘 같이 뒤숭숭한 미술동네 지형에 딱 들어맞는 말 중 하나다. 누구는 전임 관장의 속절없음을 탓하기도 하고, 누구는 임명권을 가진 지자체장의 일방적 폭력을 직격하기도 한다. 혹자는, 억울하지만, 업계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잘못은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미술관 내부의 불협화음과 특정 관장의 특정 행태가 이 같은 결정을 배태했다는 것이다. 일그러진 디렉터십과 그로 인해 쪼그라든 내부 미술관 지형들이 이러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사립을 포함한 국내 국공립미술관의 ‘미술관전문인력(뮤지엄프로페셔널)’들은 이런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의 ‘창조적 진화’를 묵묵히 이루어왔다. 충격적인 일부 미술관 관장직의 행정직 전환, 심지어 모 미술관 학예과장 자리도 행정직이 대신하고 있는 작금의 문화적 폭거란! 한시적이라고 하겠지만, 미술이, 미술관이 그렇게 만만한가? 미술관이라는 전문기관에서 일하는 뮤지엄프로페셔널들의 전문성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가?

인사 및 배치에 있어 ‘지(知)’, ‘행(行)’, ‘작(作)’의 가르마를 건강하게 가르는 일은 미술관문화에 있어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수용자 중심의 미술관문화 창출은 물론, 미술관문화의 전문성과 유기적 ‘종(種)다양성’을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는 동사무소 동장 출신 관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땐 그랬다. 오래된, 지난 일이다. 작금의 사태도 몇몇 주요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 분노, 우려, 지적 등을 화들짝 행하고 소비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퇴행적 ‘특이사(特異事)’는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미술관은 하향 평준화되어가고 정량적, 행정적 성과에 복무하는 그야말로 사업소가 되어갈 것이다. 그 폐해, 피해는 고군분투하는 뮤지엄프로페셔널들의 좌절과 시민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과연 누가 이 모두를 책임질 것인가? 미술관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 관장은 누구인가? 아니 누구여야 하는가? 관장은 무엇을 위해 복무하는가? 누구를 좇는 자인가? 누가 관장을 함부로 임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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