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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미술)비평을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

곽영빈



이 글의 제목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저 많은 괄호는 불필요한 게 아닐까? 무릇 글이란 쉬워야하고, 독자인 내가 단번에 이해할 수 없다면 ‘쓸데없이 어려운’ 것이 분명하며, 부드러운 스크롤을 방해하는 모든 ‘명징’과 ‘직조’가 가차 없이 단죄되는 디지털 세상에서 말이다. 대략 ‘비평’에 관한 글인 듯하나, 이 복잡한 제목이야말로 비평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왜 비평이 읽히지 않는지를 증명해주는 자충수가 아닐까? 분명히 더 쉽게 쓸 수 있었을텐데, 왜 굳이 허들을 쌓아두는가? 

결론의 일부를 미리 적시해두자면, 쉽거나 어려운 글이 있는 게 아니라, 좋거나 좋지 않은 글이 있을 뿐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된다. 내가 수업이나 강연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하는 이 간명하고 근원적인 공리는 이른바 ‘예술작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직접 만난 작가에게 ‘지난 번 작품 너무 쉬웠어요!’라고 경탄하거나 ‘너무 쉬워서 충격에 빠지’고,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영화나 음악을 반복해 보고 듣는 사람은 없다. 쉽건 어렵건, 우리는 이들이 좋아서, 너무 좋아서 되풀이한다.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비평은 (읽기) 쉬워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질문이 변주될 때마다 나는, 그러면 ‘기억나는 비평’이 있으시냐고 되묻곤 한다. (이 글의 독자 대부분이 한국어 사용자일테고, 외국어로 된 글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므로) 이는 ‘한국어로 쓰인/읽은 글 중에, 그 글의 결론이나 독해에 대한 동의와 독립적으로, 여전히 기억하고 곱씹을 만한, 좋은 비평’이 있었는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4회 만에 최초로 단독 수상자를 배출한 ‘SeMA-하나평론상’을 2015년 수상한 이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에 공유한 이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제공해주신 분들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해방 이래 그런 글은 없었다’는 과장이나, ‘나야말로 그런 글을 써온 드문 장본인’이란 나르시시즘적 착각들을 차분히 솎아내고 나면 ‘비평(가)의 죽음’이라는 풍문과 마주하게 되지만, 거기서 우리는 다시금 ‘주례사 비평’이나 ‘현학적인 글쓰기’라는 텅 빈 말풍선들에 포위되거나, ‘전업 비평가로 살아가기 힘든 발표지면의 부족과 비현실적 원고료’라는 ‘구조적 현실’에 대한 메아리 없는 성토를 발견할 뿐이다.   

물론 당장 작년 한 해만 해도 전시예산은 13억이지만 도록에 포함될 글의 예산은 30만 원이니 이해해 달라는 국립기관 전시 큐레이터의 청탁을 거절하거나, 500만 원 규모의 전시에 50만 원의 비평비를 책정한 예산계획신청서를 심의하기도 했고, 위에서 언급된 ‘SeMA-하나평론상’이나 온라인 플랫폼에 기반한 다양한 매체와 콜렉티브들의 결성을 일종의 ‘희망’이나 ‘대안’으로 여기는 이들을 접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물질적 지원이 개선되고 새로운 수상자들이 배출되며 매체가 늘어난다 해도 그 수많은 글들 중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아무도 모르고, 지인들 사이의 뒷담화 속에서 증발하거나 여전히 학계에서도 곱씹는 그린버그나 리파드의 글처럼 인용은커녕 회자되지도 않는다는 의미에서 결국 읽히지 않는다면, ‘쉬운 글’에 대한 무책임한 강박을 포함해 ‘(미술)비평을 읽(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공회전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다음 제안을 공론화 해보려 한다. 판단의 권위를 새로운 특정 기관이나 인물들에 의탁 또는 위임하지 않되, ‘인기투표’의 위험을 배제할 중의를 모아 단순 미술애호가에서 기관장에 이르는 미술인들이 ‘올해의 미술비평글 탑3’를 무기명으로 선정/투고한 결과를 온라인 플랫폼에 집계해 연말에 공유하는 것. 거기서 ‘쟁론’이 시작될 것이므로.


- 곽영빈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박사. 2015년 제1회 SeMA-하나 비평상 수상. 「애도의 우울증적 반복강박과 흩어진 사지의 므네모시네: 5·18, 사면, 그리고 아비 바르부르크」, 「<다다익선>의 오래된 미래: 쓸모없는 뉴미디어의 ‘시차적 당대성’」 등의 논문과 『초연결시대 인간-미디어-문화』(공저, 2021), 『이미지의 막다른 길』(공저, 2017) 등 저술. 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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