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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 완전한 불완전(Complete Imperfect)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1-10-21 ~ 2021-11-05

  • 참여작가

    서지원

  • 전시 장소

    광명시민회관 전시실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2-2621-8851

  • 홈페이지

    http://www.gmc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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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글

올해 처음 광명문화재단에서 선보이는 「광명 신진·청년 작가 1기」 공모 및 선정 작가전 사업은 지역의 시각예술 활성화를 도모하고, 작가들의 창작 활동 지원 및 기회 제공을 위해 기획되었다. 이번 사업은 회화, 설치, 업사이클, 조각, 영상 등 시각예술 전 분야를 대상으로, 지역에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가능한 신진, 청년 작가를 모집했다. 지난 7월 선정 작가 공모를 마무리 하였으며,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를 통해 총 3인(그룹)의 작가를 선정했다. 

다양한 기준의 ‘신진’, ‘청년’ 작가라는 조건 중 특히 방점을 둔 부분은 물리적 기준보다는 현대미술계 내에서 실천적 단계로의 가능성을 가지고 영향력을 지속할 수 있느냐에 기준을 두었다. 또한 공모전 취지에 맞게 지원자들이 그동안 쌓아온 미학적 성취보다는 ‘광명 신진·청년 작가’로서 향후 펼쳐나갈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심사로 접근하였다. 

 

「광명 신진·청년 작가 1기」로 선정된 여인혁(설치), 서지원(회화), 키네시스(업사이클, 키네틱아트) 작가는 각자 고유한 예술적 언어와 재료를 통해 고민과 연구를 꾸준히 이어온 아티스트다. 이들이 선보일 선정 작가전 배턴패스(:Baton Pass)는 동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결핍과 문제들을 자신만의 시각적 표현으로 풀어낸 예술적 실천의 장이 될 것이다.

 

첫 번째, 여인혁 작가의 개인전 <퐁퐁(Pong pong)>은 인간과 자연, 도시환경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에 의해 일상 속 소비되는 식물에 대한 다각화된 시선을 두어, 식물과 기계의 비현실적인 작품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익숙하고도 불편한 사실(Fact)을 직면하게 된다.

두 번째, 서지원 작가의 개인전 <완전한 불완전(Complete Imperfection)>은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드 브레히트(Eugen Berthold Friedrich Brecht, 1898~1956)의 기법으로 잘 알려진 ‘낯설게하기’를 지향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 모호한 경계 속 알 수 없는 감정들과 일상 속 크고 작은 심리적 정황에 따른 요소들을 시각화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 ‘세상 속의 나’가 아닌 ‘세상과 마주하는 나’의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키네시스(UAL×PAS) 작가의 개인전 <일 그리고 일(Work and work, one and one)>은 업사이클 작가인 엄아롱과 키네틱아트 작가인 박안식 작가가 그룹으로 참여한 전시이다. ‘일’ 이라는 중의적 표현을 사용하면서, 작가로서 예술적 행위(과정과 결과물)를 통한 경제적 수단인 ‘work’와 서로 다른 분야의 한 작가와 또 다른 한 작가가 만나 협업을 이룬다는 의미의 ‘one’을 동시에 제시했다. 작가의 개인적인 문제였던 생계 이슈에 대한 해결 과정을 키네시스의 작품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선정 작가들의 주제와 관심사는 다소 상이하지만, 구체적인 작업의 동기와 주목 대상은 그 자체로 동시대 예술과 사회를 다르게 또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이 진 호

(재)광명문화재단 예술기획팀



Hunting Trophy_ aclylic & oil on linen, 227.3 x 181.8cm, 2021




완전하게 불완전한 세계에서 그리기

서지원의 작품에는 일상의 풍경이 등장하지만 그 맥락은 애매하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 추상적 어법이 함께 해서만은 아니다. 풍경을 이루는 대상 중 하나인 식물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으며, 장소나 장소를 특징짓는 물건들의 기능은 상실되어 있다. 코로나 국면에서 대중들도 많이 보게 된 금지선들은 작품 속 풍경들이 불모나 불구가 된 이유를 암시한다. [완전한 불완전]이라는 역설적 전시 부제는 불완전도 완전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은 예술에서만 긍정적이다. 완전한 표현을 얻은 불완전은 예술적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완전한 표현을 통해 불완전을 개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술가 자신이 이러한 개선을 위해서 손발을 걷어 부치지는 않는다. 적어도 서지원의 태도는 그렇다. 그는 이번 전시의 작가노트에서 ‘나의 작품들은 현실에 대한 참여적인 입장보다 바깥에 존재하며 이곳을 직시할 수 밖에 없는 이방인의 위치를 드러낸다’고 밝힌다. 

전경에 현실의 모순이 응축된 대상이 놓여있다면 후경에서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다. 전경에 던져진 일상의 단편 배후에 과감하게 실행된 추상적 어법을 보면 그는 계몽주의보다는 카타르시스를 추구한다. 대개 추상적 배경 앞에 배치된 일상의 단편들은 거리두기의 결과이다. 금지된 풍경을 알리는 테이프는 화려한 색으로 거침없이 그어진 배경의 추상적 색과 대조된다. 작품 [swing chair](2021)는 놀이터 같은 공공장소의 어떤 기물을 금지 테이프로 꽁꽁 묶어놓은 모습이 보이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용할 수 없도록 단단히 동여맨 상태는 그것이 놓인 지반이 왜 사라졌는지를 말한다. 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자유로운 붓질이다. 광학적으로만 한정될 수 없는 현실적 어둠 속에서 화려한 색은 빛이 된다. 작품 [Goal](2021) 또한 어설픈 장애물이 설치된 금지된 장소지만 하얀 선들만은 분명하다. 모든 것이 심연으로 내려앉는 순간 규칙은 더욱 공고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작가는 회화적 실행을 통하여 자기만의 게임의 장 또한 만든다. [Playground](2021)는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놓은 운동장이 있는 작품으로, 인간들 대신에 식물들이 줄지어 자리를 지킨다. 작가는 들어갈 수 없는 운동장에서 물감으로 놀고 있다. 근저부터 허물어진 일상의 토대에서 색의 축제가 벌어진다. 하지만 서지원의 이전 작품에서 배경에서 실행되곤 하는 회화적인 면은 다소간 소극적이었다. 줄지어 서 있는 트라이포드가 마치 군상처럼 보이는 작품 [Empty Lot](2018)의 배경은 흐린 하늘색으로 쓸어내리듯이 그은 옅은 붓자국이 보일 따름이다. 마치 미사일처럼도 보이는 교통표지물로 고깔을 쓴 듯한 수직 구조물의 배경 또한 연하게 흘러내리는 물감으로 채워진다. 2018-2019년의 풍경들에 흐르는 감정선은 섬세했지만, 코로나 국면이 본격화된 최근 풍경의 배경은 질풍노도에 가깝다. 최근 작품들은 시대의 변화와 개인적 변화가 중첩되어 폭발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국면 때문에 익숙해진 ‘거리두기’는 원래 예술의 주요 전략이었다. 그것은 미학적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았다. 근대예술의 자율성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칸트의 ‘무관심성’이나 서지원 자신이 참고하고 있는 현실 참여적 예술가 브레히트의 소격이론 등이 그러하다. 서지원은 2018년 스페이스 XX에서 열린 그룹전 [콘크리트 정글] 작가 노트에서 ‘낯설지 않은 것을 낯설게 느껴라! 익숙한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느껴라! 일상적인 것에 너희는 놀라야 한다. 규칙이라고 하는 것의 오용을 알아차려라. 그리고 오용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제거하라!’고 말한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인용한 바 있다. 낯설게 하기는 문학과 그 이론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A. 아이스테인손은 [모더니즘]에서 낯설게 하기의 시작을 러시아 형식주의로 소급한다. 그는 빅토르 슈클로프스키의 [테크닉으로서의 예술]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물신화된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무기고로 평가되었다고 한다. 

아이스테인손은 브레히트가 소외효과 이론에서 슈클로프스키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지적한다. [모더니즘]에 의하면 슈클로프스키는 미학적 자율성과 시적 언어와 일상적인 언어의 분리를 주장하는 일반적인 형식주의 강령에 지배받는다. 러시아 형식주의자에 의해 부각된 낯설게하기는 기호학적 혁명으로 평가되었지만, 너무 멀리 나아갔다. 형식적 실험은 형식주의로 귀결될 위험이 있었고, 그것이 모더니즘의 기조가 되었을 때 의미의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다. 문예사조사는 형식과 진보를 연결시킨 흐름이 혁명기에 잠시동안만 지배적 질서와 함께 했음을 알려준다.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는 미학적 효과에서 현실이 점차 사라지면 무엇에서 어떻게 거리가 설정된 것인지 모호해진다. 이론의 태생부터 선명한 모순은 반복된다. 서지원의 작품 또한 낯설게 하는 형식적 장치와 사회적 메시지 또한 담으려는 두 충동이 맞부딛히는 장이다. 

읽기와 그리기가 어느 정도의 비율이어야 하는가는 지금도 고민하는 문제다. 단순화하자면 소통인가 매체인가의 문제다. A. 아이스테인손은 모든 예술 존재하는 이 두 가지 모순적 충동에 대해, ‘마니교의 선악의 대결상태’(윌리엄 개스)로 간주된 예까지 들고 있다. 매체가 소통의 도구인가 그 자체의 목적인가의 문제에 대한 문학 분야의 대응은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의 차이’(블랑쇼)를 구분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극대화될 때 형식주의가 될 수 있다. ‘언어의 감옥’(프레드릭 제임슨)에 갇히곤 하는 형식주의는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리즘만큼이나 예술의 걸림돌이 된다. 순수한 조형적 언어로만 작업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형식주의 논리는 그린버그의 주장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그것은 전후 추상미술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서지원은 분명히 작업을 통해 발언하고자 하며 소통하고자 한다. 형식을 통한 현실과의 거리두기는 형식주의가 아닌 현대적 리얼리즘일 수도 있다. 


현대 자체가 단편들로 이루어진 세계라면 자연스러운 총체성을 가정하는 전통적 어법이나 대중문화는 거짓된 것일 수 있다. 예술가는 이 거짓된 총체성에 균열을 내려고 한다. A. 아이스테인손은 브레히트의 서사 극장의 중추적인 요소를 방해(interruption)로 파악한다. 이러한 방해의 미학은 자못 자연스러운 듯한 ‘총체적 세계’(루카치)에 반대하여 예술 생산을 위한 모델을 설정한다. [모더니즘]은 브레히트 이론을 철학자 알튀세르의 용어로 다시 읽는다. 알튀세르는 ‘실제 세계의 존재 조건과 개인이 맺는 상상적인 관계를 재현한’ 이데올로기를 언급하면서, 주어진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데올로기를 차단하기 위해서 세계를 소외시켜야 하며, 그런 세계와 맺는 우리의 상상적 관계는 방해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지원의 작품에서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한 전경의 대상 뒤편의 붓질들이 방해의 요소다. 거기에는 대상의 맥락을 설명해 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데, 작가는 그것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붓질은 그 앞에 호명한 일상의 단편을 표류하게 한다. 스퀴즈를 이용한 작품은 뭉개버린 것 같은 효과도 준다. 어떤 작품의 경우는 현실을 그대로 베껴내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맥락이 탈루 된다. 대상만 오려내어 관객 앞에 던지는 스타일이다. 구별되는 두 세계의 공존은 [완전한 불완전]이라는 부제에도 잘 나타난다. 그것은 문예사조사에서의 논쟁만큼이나 과학 분야에서 논쟁을 일으킨 ‘불완전성 정리’(괴델)의 역설이 있다. 레베카 골드스타인은 수학자 괴델의 평전인 [불완전성-쿠르트 괴델의 증명과 역설]에서 괴델의 이론을 ‘수론에 적합한 어떤 형식체계에나 결정 불능의 식, 곧 그 자체는 물론 그 부정도 증명도 할 수 없는 식이 존재한다. 이로부터 수론에 적합한 어떤 형식체계의 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는 따름정리가 나온다.’고 정리한다. 평전의 저자는 ‘괴델은 형식적 산술체계의 무모순성은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음을 보였다. 괴델의 논문은 어떤 수학적 결론은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 곧 수학이 어떤 공리들을 채용하든 증명될 수 없는 진리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한다. 

가장 정확한 분야인 수학에서 ‘불완전성의 확실성’이라는 역설이 존재한다는 이론은 인간이 만든 형식에 불과한 것을 절대화할 때의 오류를 경고한다. 레베카 골드스타인은 괴델의 정리들은 인간 정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며, 오히려 인간 정신의 계산적 모델, 곧 모든 사고를 규칙 전개로 보는 모델에 내포된 한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즉 괴델의 정리들은 우리를 포스트모던적 불확실성에 빠뜨리는 게 아니라 인간 정신에 대한 특정의 환원적 이론을 배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형식주의의 닫힌 완전성을 불완전하지만 열린 체계로 바꾼다. 총체적 재난의 상황에서 누구한테나 공정하고 중성적으로 작동하는 듯한 형식(법)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한가한 말놀이가 아니다. 대개 지배적 현실은 불완전을 완전으로 개선하려 할 것이며, 아니면 애초에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예술 자체가 주변화되었기에 타자적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된 예술가에게 현실의 불완전성은 더욱 눈에 띈다. 


이러한 소외 때로는 탄압은 근대미술을 부재와 상실감으로 가득하게 했다. 서지원의 초기 작업은 사회적 불만이나 주체의 불안이 다소간 잔잔하게 드러난다면,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들에 현실에 대한 부정적 기류는 매우 강렬하다. 확실한 대답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주려는 작가의 태도를 본다면 부정적 기류라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부정은 긍정을 위한 전 단계로 포함되어 있다. 즉 서지원의 작품 스타일의 변화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 예술에 대한 긍정으로 변화하는 지점을 통과하는 증후로 다가온다. 그래서 현실의 불완전함도 제대로 표현한다면 예술적 완전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것은 소외된 작가가 당대의 지배적 현실에게 가할 수 있는 반응일 것이다. 아직도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 국면은 작품 속 금지선을 알아보게 한다. 아무렇게나 여기저기 묶여 있는 금지선은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작가는 이 새로운 익숙함 속에서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낸다. 

그것은 미셀 푸코 등 현대의 철학자들이 주목한 일상에 편재하는 미시적 권력이다. 작가는 굳이 멀리 나서지 않는다. 자료 조사를 치밀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오고 가며 쉽게 발 닿는 곳들은 대개 놀이터, 운동장, 공원 등 인근 공공적인 장소들이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 국면이 길어지기도 했지만, 아무렇게나 묶어놓은 금지선들은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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