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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전설전 :Edward Weston & Tina Modo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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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의 주옥 같은 젤라틴 실버 프린트들과 해외 사진 시장에서도 접하기 힘든 티나 모도티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플라티넘 프린트들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
후 원 : 주한미국대사관



2004년 “20세기 세계 명작 사진展”을 시작으로 그 첫 문을 연 갤러리 뤼미에르는 뉴욕 맨하탄의 전통 있는 사진 전문 갤러리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화랑이다. 갤러리 뤼미에르는 세계적인 사진 거장 앙리 카르띠에-브레송의 생전 마지막 개인전이 되었던 “앙리 카르띠에-브레송: 결정적 순간展”,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가 브루스 데이빗슨: “Subway展” 그리고 사진이 예술로서 정착되는 과정을 “Photography’s Turning Point: Alfred Stieglitz and Camera Work展”을 통해 선 보여 현대 사진을 이해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2006년에는 독일 현대 사진의 차세대 유망 주자 요셉 슐츠의 “Real & Unreal展”을 통하여 현대 사진의 흐름과 미래를 제시하며 명실공히 클래식와 컨템퍼러리를 아우르는 이상적인 사진 전문 갤러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사진계는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tz)를 중심으로 회화로부터 사진을 독립시켜, 사진만의 고유한 특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능력을 인정하고 대상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스트레이트 사진으로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던 미국 근대 사진의 역사는 뚜렷한 윤곽,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 그리고 과감한 구도로 구성된 정물 시리즈로 스트레이트 사진의 구체적인 미학을 정립한 폴 스트랜드에 의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그의 작품 세계는 사물 자체를 직설적으로 재현하는 에드워드 웨스턴에 의해 완성된다.

2005년 가을, 갤러리 뤼미에르는 학문적인 접근을 통해 사진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기획된 장기적인 프로젝트의 첫 걸음으로 “사진의 혁명展”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그리고 2006년 봄, 그 뒤를 잊는 두 번째 전시로 20세기 사진 예술의 거장이라 인정 받고 있는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Henry Weston, 1886-1958) 과 그와 사진의 영감과 사랑을 나누었던 열정적인 여인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1896-1942) 의 사진세계를 통해 선보인다. 웨스턴의 주옥 같은 젤라틴 실버 프린트(gelatin silver print)들과 해외 사진 시장에서도 접하기 힘든 티나 모도티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플라티넘 프린트(platinum print)들을 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기획되어 참다운 전시를 기다리는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과 떨리는 전율을 선사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사진의 발전과 전파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추상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통하여 근대사진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또한 카메라를 통해 자연적 대상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여 사막, 조개, 피망 바위, 누드 등 자연적인 형태를 대형 카메라로 촬영해서 대상성을 극명히 보여줌과 동시에 그 대상성을 근거로 시적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f/64그룹의 창립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위적인 조작을 배제하고 디테일이 분명한 사진만을 허용, 스트레이트 사진의 맥을 이어나가 사진사에 새로운 전설을 세웠다. 이 그룹에는 안셀 아담스(Ansel Adams), 윌러드 반 다이크(Willard Van Dyke), 이모겐 커닝햄(Imogen Cunningham)등과 같은 젊은 사진가들이 함께 참여했으며 이들은 날카롭고 정확한 세부묘사를 통해 사진의 기계적 사실성을 극대화 시켰다. 그것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사진에 크게 영향을 주어 사진 매체가 갖는 순수성을 부각 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에드워드 웨스턴과 함께 선보이는 티나 모도티는 웨스턴의 연인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혁명가이자 멕시코에 근대 사진의 방향을 제시한 예술가로 손 꼽히고 있다. 그녀의 모든 작품들은 독특한 스타일로 정밀함과 우아함을 잃지 않으며 동시에 그 당시의 격렬했던 삶과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 두 예술가가 나누었던 사랑과 예술적 영감 그리고 열정의 창조 정신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감동적이고 뜻 깊은 보석과도 같은 전시가 될 것이다.


1926년 멕시코의 메마른 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기차 기적 소리가 마지막 승객을 재촉할 무렵 한 남자가 창문 곁에 자리를 잡고 낡은 노트를 꺼내어 끄적이기 시작한다.

“The leaving of Mexico will be remembered for the leaving of Tina.”
“멕시코를 떠나는 것은 바로 티나를 떠나는 것으로 기억 될 것이다.”

4년 간의 격정의 멕시코 생활을 뒤로 하고 미국 캘리포니아행 열차에 몸을 실은 이 남자는 바로 사진 역사의 전설적인 인물, 에드워드 웨스턴이다. 그에게 티나는 제자였으며, 뮤즈(muse)였고, 사랑이었다. 웨스턴의 누드 사진이나 초상 사진에서 관능적인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미(美)와 사랑 그리고 창조의 완벽한 조화의 상징이었다.

전시장 안 에드워드 웨스턴과 티나 모도티의 소름 끼치도록 사실적이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사진들은 관람객들을 20세기 초 역동의 사진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사진 분리파운동 그리고 폴 스트랜드의 즉물 사진 등으로 시작된 순수 사진의 움직임은 웨스턴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그가 촬영한 정물이나 누드 사진에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이퀴벌런트(Equivalent)’에서 보여줬던 사물 이면의 숨겨진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티나 모도티는 비록 짧은 기간(1923년~1930년)동안 작품 활동을 하였지만, 그녀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예술적 고민은 혁명가로서의 티나 모도티 만큼 치열하다. 정물과 인물을 촬영하는 그녀의 시선은 직설적이고 객관적이며 이것은 회화주의 사진에 반대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반영한다. 에드워드 웨스턴과 티나 모도티의 작품 세계의 공통점은 바로 이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진 속 사물은 그것이 상징하는 어떤 의미도 배제되어 사물 그 자체의 속성과 본질만이 부각된다.

웨스턴이 모도티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19년이었다. 티나 모도티는 웨스턴의 아뜰리에에서 조수로 일을 하며 사진을 배웠고, 그의 사진 속 모델로 눈부신 여신의 육체를 재현하였다. 1923년 멕시코로 떠나는 에드워드 웨스턴과 티나 모도티. 그들은 그곳에서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다비드 A. 시케이로스(David A. Siqueiros),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등의 아방 가르드 예술가들과 함께 멕시코 르네상스를 주도하며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사른다. 특히 시케이로스와 호세 오로즈코(José Orozco)는 웨스턴을 가리켜 20세기 예술의 거장이라 평가함에 망설이지 않았다.

전쟁과 혁명 그리고 정체성과 변화로 혼돈의 세월을 살고 있던 멕시코에서 웨스턴은 모도티에게 순수 사진을 가르쳐 주었고, 모도티는 수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쌓으며 웨스턴의 진가를 알리는 보석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반 회화주의 사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하였다. 사진기 대신 혁명의 깃발을 들기 원했던 모도티 그리고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온 죄책감과 향수에 지쳐버린 웨스턴은 결국 각자의 길을 걷는다.




  • 에드워드 웨스턴



    “Weston is, in the real sense, one of the few creative artists of today. He has recreated the matter-forms and forces of nature; he has made these forms eloquent of the fundamental unity of the world. His work illuminates man’s inner journey toward perfection of the spirit.”

    “웨스턴은 오늘 날 몇 명 되지 않는 진정한 창의적인 예술가 중 한명이다. 그는 사물의 실체와 그리고 자연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재 창조하여 이러한 것들을 세계의 근본적인 조화로움으로 감동적이게 표현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영혼의 완벽함을 향한 인간 내면의 여행을 조명한다.”
    - 안셀 아담스


    16살 때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사진기로 생애 첫 사진을 찍은 에드워드 웨스턴은 1920년 이후 작품 활동 초기 영향 받았던 회화주의 사진에서 벗어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폴 스트랜드로 이어지는 스트레이트 사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1922년 뉴욕에 위치한 291화랑에서 스티글리츠를 만난 에드워드 웨스턴은 돌아오는 길에 그의 대표적인 회화적 사진의 네거티브를 버리고 소프트 포커스 렌즈를 처분할 정도로 그의 스트레이트 사진으로의 전환에 스티글리츠가 준 영향은 컸다.

    특히 웨스턴은 1922년 오하이오주에 있는 암코스틸공장(ARMCO Steel Plant)지대를 촬영, 클로즈업을 통해 암코 스틸 회사의 파이프와 굴뚝 그리고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격적인 기둥들을 다양한 그라데이션과 날카로운 포커스로 담아내면서 스트레이트 사진의 전형을 보여준다. 웨스턴이 강조한 사진 촬영에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진가는 최종적인 결과를 시각적으로 미리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진가들이 렌즈조정, 주제에 대한 프레이밍, 노출의 정도 등을 적절히 이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화할 때 낼 수 있는 효과까지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는 사진 속에서 사물의 명확한 형태를 요구했고, 마치 실제를 보는 듯한 질감과 결이 선명하기를 원했다.





    “The camera should be used for a recording of life, for rendering the very substance and quintessence of the thing itself, whether it be polished steel or palpitating flesh.”

    “카메라는 반드시 인생을 기록하는 것에 이용되어야 하며, 그것이 윤이 나는 강철이나 심장이 뛰고있는 생명이든 상관없이 그것 자체의 본질과 그것의 실체를 자유롭게 그려내도록 이용되어야 한다.”
    - 에드워드 웨스턴


    1922년에서 1926년 사이에 촬영된 누드 사진에는 그만의 새로운 시각을 엿볼 수 있다. 몸의 부분만을 찍은 것이 대부분인 그의 누드 사진은 디자인과 구도에 중점을 두고 세부까지 묘사 되어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사진 속 모델과 주위 배경의 황금분할과도 같은 완벽한 구도는 대부분 머리가 크롭핑 된 사진 속 모델들을 단순하고 조형적인 조각으로 표현하여 추상성을 선 보이며, 동시에 대상의 클로즈업을 통한 리얼리즘을 아우르고 있다. 특히 1920년에 작업한 “누드(Nude, 1920)”는 초기 그의 사진에서 볼 수 있었던 회화주의의 부드러움과 함께 완벽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창틀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여체는 아름다운 조각의 일부처럼 보여지고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Nude in the doorway,1936”은 얼굴을 가리고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솜털 하나와 살결 까지도 극명하게 표현해 오브제의 사실성을 강조했던 그의 사진철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의 정물과 풍경사진이 미국적 스펙터클을 보여준 사진이라면 평생의 주제였던 누드사진은 예술적 미감의 절정을 보여준다.

    1919년 웨스턴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티나 모도티와의 만남이었다. 웨스턴은 티나와 함께 1923년 멕시코로 이주하고, 그 해 아즈텍 랜드 갤러리(The Aztec Land gallery)에서 첫 전시를 선 보인다. 전시는 성공적이었으며,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다비드 A.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등 멕시코 지식인 들 사이에 서 명성을 알리는 관문이 되었다. 그들은 또한 웨스턴을 20세기 예술의 거장이라 평가함에 망설이지 않았다. 웨스턴의 가장 뛰어난 초상 사진들은 그 주변의 가까운 친구들과 티나 모도티를 찍은 사진들이었다. 웨스턴은 모델들과의 교감을 통하여 그들의 본질과 생명력 뿐만이 아니라 성격까지도 카메라에 담아내었다. 4년간의 멕시코에서의 생활은 웨스턴의 작품의 특색을 확고히 들어내는 시기이며, 대상이 가지는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하고 형태와 빛에 대한 탐구 그리고 조형적인 미를 추구하게 된다.

    1926년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웨스턴은 사진 속 대상의 사실성을 더욱 강조하고, 형태의 완벽한 질감을 추구하였다. 사실적인 사물의 형태에 대한 웨스턴의 탐구는 무엇보다도 인체의 형상을 연상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시기는 웨스턴이 형태 안에 내포되어있는 추상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 예를 들어 ‘조개(shell, 1927), 피망(pepper, 1930)’등 은 사실적인 차원을 넘어서 다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특히, ‘조개’ 시리즈는 사진 속 조개 껍질이 차가운 금속성을 가진 기괴한 사물로 변화한다. 웨스턴은 정교한 조명과 극단적 클로즈업을 통해 조개를 번쩍거리는 거대한 기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파킨슨 병으로 1958년 외롭게 죽을 때 까지 포인트 로보스(Point Lobos)에서 풍경사진을 촬영하였다. 이 때의 작업을 사진 역사가인 버먼트 뉴홀(Beaumomt Newhall)은 “그의 스타일은 확대 되었으며, 주제가 다양화 되었고, 풍부한 인간성이 스며있다. 또한 복잡하게 뒤얽혀 유기적으로 조직되는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1946년 뉴욕, 근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웨스턴의 작품들 중 주요한 300점을 전시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 티나 모도티


    “Ce qui compte c’est de faire la distinction entre la bonne et la mauvaise photographie. La bonne photographie, c’est celle qui accepte toutes les limites inhérentes à la technique photographique et qui tire parti de toutes les possibilites et caractéristiques qu’offre ce moyen d’expression.”

    “중요한 것은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것이 좋은 사진이고, 어떤 것이 나쁜 사진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 티나 모도티


    그녀가 처음 사진기를 만져 본 것은 그녀의 삼촌 피에트로 모도티(Pietro Modotti)의 사진관에서 였다. 피에트로 모도티는 당시 인공 조명을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사진 기술 선구자 중에 한 명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기계와 속도를 찬미하는 예술 사조인 미래주의(Futurism)가 시대를 풍미하는데 이들은 사진 및 영화 등의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모더니즘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티나 모도티는 19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파나마 태평양 국제 전시(The Panama Pacific International Exposition)”에서 독일 표현주의부터 이탈리아 미래주의를 통하여 모더니즘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체험하고 또한 이 전시에서 동메달을 수여 받은 에드워드 웨스턴의 작품 세계를 발견한다.




    정규 사진 교육을 받지 않은 티나 모도티의 사진 기술은 거의 대부분이 에드워드 웨스턴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첫 카메라 그라플랙스 라쥐 포맷(Graflex Large Format)으로 용설란의 그림자나 챠요떼(Chayote, 오이과의 열대 식용 식물)의 껍질을 찍은 사진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디테일과 질감를 표현하는 능력은 천재에 가깝다. 그녀의 1925년도 작품인 “Roses”는 일상의 사물이 상징적인 사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증명해 보인다. 빛을 머금고 있는 백합은 가까이 다가선 카메라 렌즈 속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변신한다. 그녀는 자연을 순수하고 신비로우며 동시에 에로틱하게 표현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사진 속 빛과 어둠의 대비 그리고 만개한 꽃은 그녀의 감정 상태를 은유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티나 모도티는 정물 시리즈에서 사물을 바닥이나 받침대에 놓지 않고 마치 벽이 걸려있는 듯이 배치하여 촬영하는 데, 이것은 멕시코 벽화 예술가 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며 에드워드 웨스턴의 정물 시리즈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46-1989) 사진에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정물과 사진가, 즉 자연과 인간의 소통 방식에 변화를 상징한다.

    티나 모도티는 인물과 멕시코 전통 문화에 특히 애착을 보였다. 가난, 고통, 힘겨운 노동의 모습들은 매우 건조하고 무거운 구조 안에서 그녀의 신념과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삽이나 곡괭이를 움켜쥔 모습이나 꼭두각시 인형을 들고 있는 손은 인생과 고단한 노동을 상징한다. 정치 사회 참여 의식이 투철하였던 티나 모도티는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문제점들을 자신의 사진을 통하여 역설한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흥분과 혼돈으로 점철된 20세기 초반을 뜨거운 예술적 욕망과 차가운 정치적 신념으로 살아간 티나 모도티는 1920년대에서 30년까지 멕시코 체류 기간 동안 가장 역동적인 작품 활동을 하였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차핑고 채플(Chapingo Chapel) 벽화의 누드 모델로 불멸화 되기도 하였으며,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멘토(mentor, 스승, 지도자)로서 20세기 멕시코 아방 가르드 예술에 불씨를 지핀다.





    1930년 멕시코에서 추방 당한 뒤 베를린에 도착한 티나 모도티는 더 이상 예술 사진 작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가 몸 담고 있던 사회 집단에서 사진은 다큐멘터리와 포토 저널리즘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그녀가 지금까지 체험하였던 웨스턴의 사진 세계나 혹은 이탈리아 전통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술 활동과 사회 정치 활동에서 조화를 찾지 못한 티나 모도티는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포기한다. 대다수의 그녀 작품은 이데올로기 논쟁의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대중에게 널리 공개되지 못한다. 그러나 1991년에 “Roses(1925년 작, 플래티넘 프린트, 7 3/8 x 8 3/8 inch)”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65,000 달러에 낙찰되며 당시 사진으로서의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한 발 빠른 재평가와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갤러리 뤼미에르
    (135-954)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88번지
    4F, 88 Chungdam-dong, Kangnam-gu, Seoul, Korea
    Tel. 02-517-2134 / 2176 Fax. 02-517-2146

    전시 관련 특별 세미나
    4월 2일(일) 3-5pm
    ‘에드워드 웨스턴과 현대 정물화의 탄생’
    최봉림 사진 비평가, 작가

    개관 시간
    화요일 - 일요일 10:30-19:00
    월요일은 휴무입니다.

    관람 요금
    일반 5,000원
    학생 할인 (대학생 포함, 학생증 제시 필수) 4,000원
    단체 할인 (20명 이상) 4,000원
    경로우대증 소지자 및 장애인 무료

    전시 설명 (Gallery Talk)
    월요일 - 일요일 오후 1시, 3시, 5시
    토요일 - 일요일 오후 4시 (영어 설명)
    ※ 단체로 오실 경우 미리 예약해 주시면 전시 설명을 해 드립니다.

    자세한 약도 및 교통 안내는 홈페이지Gallery Info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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