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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랑 : 멈춰진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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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생생한 Still-Life

김예랑의 검프린트


글 : 최연하 (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


김예랑 작가의 꽃들이 사진 속에서 다시 피어난다. 사진과 함께 여전히 생생한 스틸라이프가 되어 꽃의 시간을 이어간다.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볼 수 있는 고요하고 절제된 색조를 띄며 꽃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와 각도, 방향을 유지하고 있다. 어떤 화병엔 여러 계절에 피는 꽃들이 꽂혀 사진이 아니라 그림처럼 보인다. 네덜란드에서 꽃 정물화를 최초로 그리기 시작한 ‘얀 부르겔 엘더(Jan Brueghel the Elder, 1568~1625)’의 그림 속 꽃처럼, 꽃의 모양과 색상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식물도감을 보는 듯 생생하다. 작가는 꽃들이 서로 겹치지 않게 배열한 후 꽃의 형태가 잘 드러나게 하였다. 끝없이 피고 지는 무수한 꽃들, 그 꽃의 생애를 낱낱이 재현하려는 의도이다. 미술사에서 꽃은 사랑과 슬픔, 인생의 비유로 줄곧 재탄생했다. 시간과 계절 앞에 무상할 수밖에 없는 꽃처럼, 인간의 삶도 ‘화무십일홍’이기에 절정의 순간을 각인하고 보존하려는 열망이 작품이 되었으리라.

정물화를 의미하는 ‘Still-life’는 예술 창작의 영원한 화두인 삶과 죽음, 즉 바니타스의 강력한 상징이다. 바니타스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허무하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라는 의미로, 삶의 시간이 영속되길 바라지만 필멸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알레고리다. 죽음에 대한 각성과 애도의 외침인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가 뒤따르며 바니타스는 ‘덧없음’의 복합적 상징이 되었다. 정물화가 17세기에 성행한 것도 죽음에 대한 성찰이 구체적으로 일었기 때문이다. 김예랑 작가가 정물로 꽃을 선택하고 사진을 찍은 이유는 이제 선명해졌다. 사진의 에이도스는 ‘죽음’이라고 말한 바르트의 사진관(觀)을 떠올린다. 사진 속으로 달아나 영속하려는 꽃들(인간)의 욕망을 사진만큼 웅숭깊게 보여주는 매체는 없을 것이다. 스틸 사진은 정지된 것을 춤추게 한다. 마치 바르트의 ‘종이 인형’처럼 그리고 베르나르 포콩의 말처럼, ‘어린 시절의 성탄절같이, 사라지지 않는 기쁨의 사과같이’ 생의 아름답고 귀한 순간을 정지시키고, 깨워, 다시 사진으로 살려내, 기억의 처소마다 환한 불을 밝혀준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도 사진에 찍힌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음에 이르기에, 사진 속에 머물며 삶을 지속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왜, 김예랑은 공정이 까다롭고 긴 작업시간이 필요한 ‘검 프린트 (Gum Bichromate)’ 방식을 고수하는 것일까? 재빠르게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디지털 사진 시대에. 19세기 픽토리얼리스트(사진에서 회화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선호한 검 프린트는 사진과 판화, 회화의 속성을 모두 갖추었다. 방법은 이러하다. 고무액(gum), 바이크로메이트 용액, 수채화 물감을 섞어 감광액을 만들어 이를 판화지(수채화 용지 등 물 속에서 잘 견딜 수 있는 종이여야 한다)에 고르게 도포 한다. 감광액이 마른 판화지 위에 미리 준비한 필름을 올려 자외선 노광을 준다. 현상하는 동안 노광 되지 않은 부분의 감광액은 물에 녹아 사라진다. 감광액이 남아있는 부분을 붓으로 살살 긁어내거나 씻어내며 농도와 색을 조절한다. 이 과정을 적어도 10회에서 15회 반복한다. 그동안 색의 변화와 톤의 밀도가 달라지고 높아지며 이미지가 생성된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노동집약적이고 섬세한 과정이다.

비은염 프로세스에 속하는, 안료를 사용하는 피그먼트 인화법(카본, 카브로, 브롬오일, 검 프린트 등) 중에서 다양한 칼라를 내기엔 검 프린트가 적합하다. 일련의 과정에서 작가들이 무엇보다 경도하는 부분은 회화와 달리, 물감을 바르는 것이 아니라 ‘닦아내고’, 붓을 이용해 인화 과정에서 명도와 음영에 변화를 주면서 상(像)을 ‘끌어내는’ 시간이다. 회화와 정반대의 작업인데 결과적으로는 그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물에 닿았던 빛을 ‘닦아내고 문지르고 덧칠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찾아낸 ‘사물의 시간’이다. 사물(피사체)의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가 주체도 흔들리고, 어느덧 사물(인화지)을 만지고 보고 느끼고 감수성이 높아지는 시간에 이른다. 이 기법을 사랑했던 로베르 드마쉬(Robert Demach)와 콩스탕 퓌요(Constant Puyo)의 피사체가 유독 부드럽고 고요한 것은,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까지 사진가의 손과 눈과 마음이 축적되어 이룬 고유한 세계 때문이다.

검프린트가 한창이었던 1890년대는 사진의 대중화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코닥(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은 ‘가장 작고 가벼우며 가장 간편한’ 카메라를 출시해 “여러분은 셔터만 누르십시오. 나머지는 우리가 처리하겠습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rest)”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사진 시장을 개척한다. 어린아이부터 기계를 잘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가 사진을 찍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작 직업사진가들은 코닥이 그들 사업을 방해할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보다 ‘예술적’인 사진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들의 욕망에 자연스럽게 부응한 것이 픽토리얼리즘이었다.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의 대중화로 모두가 사진을 찍고 보내고 받고 감상하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다. 사진이 대중속으로 파고들수록, 전문가는 자기만의 고유한 기법과 더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다. 쉽게 탄생하고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사진이 아니라, 오래, 지속적으로, 자기 생의 시간을 살아가는 생생한 사진! 김예랑이 검프린트를 자신의 형식미로 고수하는 이유이다.  

코로나, 인류세, 전쟁, 기후 위기 등 동시다발로 삶의 시간이 와해 되고 있다. 양차 대전 이후에 ‘인생무상’을 오늘날처럼 요동치듯 퍼뜨리는 시대가 있었을까? 역설적이게도, 바니타스 뒤에 곧장 삶의 축복이 따라오는가 했는데(‘카르페 디엠Carpe Diem’같은), ‘인스타와 릴스’가 등장해 우리들의 기쁜 순간을 앗아가 버린다. 어디에도 정주할 수 없고 안전하게 머물 수 없는 떠도는 이미지들. 가엾고 빈곤한 이미지가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김예랑이 그 처소를 마련한 것 같다. 검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 프린트 속에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는 Stil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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