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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자 :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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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정강자 개인전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Dear Dream, Fantasy, and Challenge)》 개최
한국 실험미술의 최전선에 있던 1세대 전위예술가 정강자의 꿈과 좌절, 도전을 주제로 
여성, 노동자, 방랑자로서의 삶의 궤적을 조명
1960년대 퍼포먼스 사진부터 작고 전 그린 영정(影幀) 회화까지 반세기에 걸친 시대별 자화상 전시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Dear Dream, Fantasy, and Challenge)》 포스터 ⓒ 2023 ARARIO MUSEUM 


전시  제목  정강자 개인전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Dear Dream, Fantasy, and Challenge)》
전시  기간  2023년 3월 30일 목요일 - 2023년 9월 3일 일요일
전시  장소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율곡로 83 (03058)
전시  작품  회화와 바틱, 조각, 드로잉 18점 및 아카이브 자료
관람  시간  화요일 – 일요일 10:00 – 19:00
 


아라리오뮤지엄은 2023년 첫 기획전으로 오는 3월 30일(목)부터 9월 3일(일)까지 정강자 개인전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Dear Dream, Fantasy, and Challenge)》를 개최한다.

전시 제목은 정강자가 1990년 쓴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이다. 그녀가 책의 서문에 밝힌 것처럼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창작의 길은 고된 여정이었고, 꿈과 이상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앵포르멜 일색의 기성화단에서 벗어나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새로운 시도들은 규제되었고 여성주의적 작품들은 선정성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자기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꿈꾸며 혼자만의 고독한 투쟁을 이어나갔다.1)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최전선에서 가장 적극적 행보를 보였던 정강자는 오랜 기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2000년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그녀의 화업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강자 개인전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는 1960-70년대 전위적 실험미술을 이끌던 시기 이후, 1970-80년대 회화와 바틱(Batik)2)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녀의 삶과 예술의 여정을 함께 살펴보는데 초점을 맞춘다. 초기 실험 작품과 퍼포먼스에 대한 아카이브 자료, 답답한 현실에 도피하듯 떠난 싱가포르에서의 바틱 작품들, 한국 귀국 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틈나는 대로 작업한 회화들까지, 전시작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술을 삶 그 자체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삼았던 여성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관람자들로 하여금 예술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갔던 정강자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일상과 예술, 현실과 이상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본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5월 예정)과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9월 예정), LA 해머뮤지엄(2024년 2월 예정)에서 한국의 1960-1970년대 실험미술을 소개하는 그룹전에 정강자 작가의 데뷔작 <키스 미>(1967)가 전시될 예정이다.  



정강자 (Kangja JUNG, 1942-2017) 

정강자는 1942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신전(新展)’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새로운 예술과 현실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작품들과 파격적 퍼포먼스로 1960-70년대 미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의 과감하고 도전적인 행보는 퍼포먼스 도중 경찰에 연행되거나 첫 개인전 《무체전(無體展)》이 강제 철거되는 등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규제 속에서 한계에 부딪쳤다. 1977년 가족과 함께 돌연 싱가포르로 떠난 그녀는 동남아시아 염색 기법 ‘바틱’ 을 활용한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고, 한국으로 귀국한 뒤 1990년대까지 남미, 아마존, 남태평양 등 문명이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원시의 삶을 찾아 다니며 자신의 삶과 꿈이 투영된 환상의 세계를 캔버스에 담았다. 말년에는 우주 만물의 최소 단위인 원과 인위적인 직선을 결합한 ‘반원’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로 모든 사물을 환원하는 실험에 집중하며, 201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예술적 도전을 이어갔다.




■ 작가약력

정강자 Kangja JUNG (1942-2017)


젊은 시절의 정강자 ⓒ 2023 Kangja Jung

1942 경상북도 대구 출생

학력
1967 홍익대학교 서양학과 졸업

주요 개인전
2023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서울, 한국
2018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서울, 한국
2014 수호롬 부산 갤러리, 부산, 한국
2013 갤러리 제이원, 대구, 한국 
        한가람아트 갤러리, 서울, 한국 
       갤러리아 순수, 서울, 한국
2012 슈페리어 갤러리, 서울, 한국 
       수호롬 부산 갤러리, 부산, 한국 
       인사아트센터, 서울, 한국
2010 하나아트갤러리, 서울, 한국
2006 외로운 여정, 서호갤러리, 서울, 한국
2005 토털 갤러리, 대전, 한국
2004 외로운 항해, 서호갤러리, 서울, 한국
1979 누산타라 국립현대미술관,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1970 무체전, 소공동 국립공보관 화랑, 서울, 한국

주요 그룹전
2023-24 한국 실험미술 1960-1970년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 구겐하임미술관, 뉴욕, 미국 
       / 해머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예정)
2023 Action, Gesture, Performance: Feminism, the Body and Abstraction, 화이트채플갤러리, 런던, 영국
2022 시적 소장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 한국
2020 댄싱 퀸,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한국
2017 역사를 몸으로 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아시아 여성미술가들, 전북도립미술관, 완주, 한국
2005 찾아가는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1981 바틱전, 공간화랑, 서울, 한국
1970 한국 청년화가 6인전, 도키와 화랑, 도쿄, 일본
1969 한국일보초대전, 서울, 한국
1967 청년작가연립전, 국립공보관, 서울, 한국

주요 퍼포먼스
1970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 서울, 한국(손일광, 정강자, 정찬승)
1969 <휴지의상>, 장충단공원, 서울, 한국(손일광, 정강자, 정찬승)
1968 <투명풍선과 누드>, 제4회 현대미술세미나, 세시봉 음악감상실, 서울, 한국(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한강변의 타살>, 제2한강교 아래 모래사장, 서울, 한국(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주요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한국) 
서울시립미술관(한국) 
아라리오컬렉션(한국) 
예술의전당(한국) 
홍익대학교 미술관(한국)

정강자 작가 홈페이지 https://www.jungkangja.com/
 


■ 전시서문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하오.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 서머셋 몸, 『달과 6펜스』 中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는 정강자가 1990년 쓴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이다. 그녀의 회화처럼 강렬하고 화려한, 에너지가 넘치는 제목과 다르게, 이 책에 담긴 젊은 시절 정강자의 삶은 고독하고 고된 여정이었다. 젊고 순수했던 도전과 열정은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규제 속에서 끝없이 벽에 가로막혔고, 이후 예술만을 바라보며 살기에는 현실이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보답 받지 못하고 지치는 삶의 순간에도 그녀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고, 자기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꿈꾸며 혼자만의 고독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마치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쓴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유명한 말처럼 예술은 정강자에게 삶, 그 자체이자 궁극적 목적이었으리라.

정강자는 1967년 기성미술에 도전하고 새로운 표현방식을 모색한 국내 최초의 집단적 시도라 평가 받는 《한국청년작가연립전》에 아방가르드 미술 그룹 ‘신전(新展)’ 동인으로 참여, 여성의 입술을 거대화한 조형작품 <키스 미>(1967)를 선보여 한국 화단에 큰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작가다. 이후 발표한 <STOP>(1968), <여인의 샘>(1970)에서도 둔부와 가슴 등 여성의 신체를 강조해 아름답고 강한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투명풍선과 누드>(1968) , <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 문화예술의 장례식>(1970) 등 그녀가 참여했던 파격적 퍼포먼스들은 미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의 과감하고 도전적인 행보는 퍼포먼스 도중 경찰에 연행되거나 1970년 문화공보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 《무체전(無體展)》 이 강제 철거되는 등 경직된 사회 분위기와 규제 속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사방이 벽에 막힌 듯 답답한 현실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결혼 후 1977년 돌연 싱가포르로 떠난다. 

정강자는 싱가포르 생활이 녹록치 않았다고 여러 차례 회고했다.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전통염색기법 바틱을 습득했는데, 그녀의 바틱 작품들은 마치 회화처럼 보이는 정강자만의 스타일이었다.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인 방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자화상을 담은 <싱가포르의 방>(1979)은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불안정했던 그녀의 삶과 내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기 낯선 문화에의 경험은 그녀에게 현실에 대한 불만과 내재된 결핍을 채우고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을 발견할 실마리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싱가포르에서도 그리고 1982년 귀국한 뒤에도, 그녀는 예술과 일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군분투했다. 남편과의 이혼 후,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가사와 육아 역시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밤에 피는 꽃>(1988)은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붓과 팔레트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정강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바쁜 하루 일과가 끝나고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작업시간은 밤 9시부터 새벽 1시. 늦은 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쳤지만 오늘 마무리한 그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작품을 위한 나의 ‘뇌’ 속 탐험은 ‘꿈’을 통해 전혀 새로운 세상을 나를 데려다 주기도 한다. 내 마음대로 내 방식으로 모든 것이 허용되는 나만의 자유공간, 그곳엔 현실의 잡다한 일상이란 없고 현실에서 ‘환상’이라고 표현되는 모습들만 있을 뿐이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그녀는 기회만 되면, 아니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 남미, 아마존, 사하라, 남태평양 등 문명이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원시의 삶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강렬한 색채의 아름다운 자연, 원초적이고 역동적인 생명력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정강자는 자신의 삶과 꿈이 투영된 환상의 세계를 캔버스에 그려내었다. 폭 7m가 넘는 대작 <사하라>(2011)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자들과 이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눈을 그린 작품이다. 온통 갈색으로 뒤덮인 사하라 사막을 보며, 정강자는 ‘어머니로서의 대지(The Mother Earth)’, 한국의 향토색을 떠올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심하게 되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는 여행자들은 예술에의 자기 부정과 탐색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방랑하는 정강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의 최전선에서 가장 적극적 행보를 보였던 정강자는 오랜 기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2000년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그녀의 화업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에세이의 서문에 밝힌 것처럼 그녀가 행복하기 위해 선택한 창작의 길은 고된 여정이었고, 꿈과 이상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평생 꿈과 환상을 찾아 방랑하며 도전해 온 그녀에게 그 자체로 삶을 지탱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동력이었으리라 단언한다. 그녀 역시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처럼 ‘달’을 쫓아 살아가는 예술가였기 때문에. 



■ 주요작품설명


 
<투명풍선과 누드>(강국진, 정강자, 정찬승), 1968.5.30, 음악감상실 세시봉 ⓒ 2023 Kangja Jung
사진출처: “빛과 소리와 공간의 결합, 《청년작가연립전》의 ‘환경미술의 공동실현’에서”, 
한국일보 (1968.6.2) (20(h)x9.5(w)㎝)

“정강자, 정찬승, 강국진이 함께 한 <투명풍선과 누드>는 제 4회 현대미술세미나의 일환으로 진행된 한국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였다. 존 케이지의 음악을 배경으로 정찬승과 강국진이 정강자의 옷을 찢고, 관객들이 참여하여 정강자의 상반신에 투명 풍선을 붙인 후 다시 풍선을 터트리는 행위로 구성되었다. 일상의 몸을 작품에 도입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으나, 세간의 관심은 벗은 몸에만 집중되었다.
 


 「무체전(無體展)」 리플렛 표지, 1970.8.20-24, 국립공보관 화랑 ⓒ 2023 Kangja Jung
원본 크기: 19(h)x18(w)㎝ 

정강자의 첫 개인전 《무체전(無體展)》은 그림이 없는 전시로 당시 파격적 시도였다. 검은 비닐로 벽을 싼 전시장을 드라이아이스와 색소연기로 채운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관람객들이 놀라서 움직이면 공간을 채운 기체도 관람객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 때 조명이 관람객들을 비추고 정강자는 마이크로 자신의 작품이 관람객들이 만들고 있는 무체(無體)임을 말한다. 관람자 참여 예술 개념을 도입한 이 전시는 예정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이튿날 공보관 측에 의해 철거되었다.

 

싱가포르의 방(The Room in Singapore), 1979, batik, 89(h)x111(w)㎝ ⓒ 2023 Kangja Jung

1977년부터 1982년까지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정강자는 전통염색기법 바틱(Batik)을 습득했는데, 그녀의 바틱 작품들은 마치 회화처럼 보이는 정강자만의 스타일이었다.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인 방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자화상을 담은 <싱가포르의 방>(1979)은 싱가포르에 머무는 동안 불안정했던 그녀의 삶과 내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기 낯선 문화에의 경험은 그녀에게 현실에 대한 불만과 내재된 결핍을 채우고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을 발견할 실마리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한편, 정강자는 1981년 공간 미술관에서 열린 바틱 전시에 참여했다. 그러나 미술관 측의 요청으로 전시된 작품은 상징적 패턴이 반복되는 전통적인 형태였고, 정강자는 이 전시를 실패로 여겼다. 

 

화실(Art Studio), 1977, oil on canvas, 162.2(h)x130.3(w)㎝ ⓒ 2023 Kangja Jung

“나의 젊은 날의 작업실은 어린 나의 아이들과 뒤엉켜 있었지만 그래도 그림은 그린다.” – 정강자

싱가포르에서도 그리고 1982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그녀는 예술과 일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군분투했다. 남편과의 이혼 후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가사와 육아 역시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밤에 피는 꽃(Night Blooming Flower), 1988, oil on canvas, 145(h)x112(w)㎝ ⓒ 2023 Kangja Jung

8월 X일 내가 요즘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방학이라서 아이들이 화실에 하루 종일 가득 메워진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라면 한 그릇 점심을 때우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두 선생과 함께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한다. 고달픈 일이다. 그러나 돈이 많이 들어오니 즐거운 일이다. 하루 종일 가르치고 저녁에 길 건너 아파트, 내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아파트로 뛰어간다. 저녁을 지어주고 대충 치우고 다시 화실로 나온다. 나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이다. 8시 30분. 이것은 내가 나에게 정해놓은 시간이다. 늦장을 부리려면 한이 없다. 가정살림이란 항상 끝이 없는 법이니까. 

나의 작업은 대충 밤 9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음악 틀고 커피 한잔 마시고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작업이 잘되고 멋진 작품이 되어가면 음악에 맞추어 ‘디스코’도 추고,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고, 때로는 혼자서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감상에 빠져 울기도 한다. 나의 작품은 나의 절규이다. 나의 통곡이다.

12시가 지나고 새로 1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길 건너 이미 깊은 잠 속에 빠진 아파트로 가게 되는데 작은 공원을 지날 때 조금은 행복해진다. 오늘 마무리한 그림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10분 정도 걸어가는 깊이 잠든 아파트 위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어린 시절 외롭고 우울했던 그때도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었고, 내 젊은 시절 인생에, 사랑에, 작품에 방황하고 좌절하던 그때의 밤하늘의 별들도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지. 내가 요즘 부쩍 젊은 날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아마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_작가의 보름일기 中 


 
사하라(The Sahara), 2011, oil on canvas, 193.9(h)x777.3(w)㎝(3 pcs) ⓒ 2023 Kangja Jung

<사하라>는 가로 7m가 넘는 대작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행자들과 이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눈이 그려져 있다. 온통 갈색으로 뒤덮인 사하라 사막을 보며, 정강자는 ‘어머니로서의 대지(The Mother Earth)’, 한국의 향토색을 떠올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심하게 되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는 여행자들은 예술에의 자기 부정과 탐색을 거듭하며 끊임없이 방랑하는 정강자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Dear Dream, Fantasy, and Challenge)》 설치전경 ⓒ 2023 ARARIO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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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강자,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 (서울: 소담출판사, 1990), pp. 16-17
2) 바틱(Batik)은 보존 염색 기법 중 하나로 왁스에 저항성을 가진 염료의 성질을 이용, 전체 혹은 일부 천을 염색하는 기법을 뜻한다. (위키피디아, https://ko.wikipedia.org/wiki/%EB%B0%94%ED%8B%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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