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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영 개인전 : 모래극 SAND PLAY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3-04-20 ~ 2023-05-27

  • 참여작가

    김창영

  • 전시 장소

    BHAK

  • 문의처

    02.544.8481

  • 홈페이지

    http://www.galeriebh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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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영 개인전 : 모래극 SAND PLAY 
2023.4.20(THU) - 5.27(Sat) 

《모래극》 작가 김창영(1957-)은 우리가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모래사장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 장면은 일반적인 파노라마 형태의 풍광이 아니다. 손가락으로 모래에 그린 자국이라든지, 바람이 불며 모래 위를 지나간 흔적과 같다. 모래사장의 장면을 재구성한 김창영의 그림은 뛰어난 실물감을 보이며 마치 눈앞에 펼쳐진 모래 사장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캔버스 표면에는 물감이 아닌 모래 가루가 표면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창영은 캔버스를 바닥에 놓은 후 접착제로 모래를 붙이고, 다시 캔버스를 수직으로 들어 올려 모래를 털어 내길 반복하여 캔버스 표면을 평평한 모래 면으로 만든다. 그렇게 밑 작업이 끝난 뒤 붓과 물감으로 특정 자국이나 흔적을 매우 정밀하게 표현한다. 
 
정밀사의 극치를 보여주는 김창영의 그림처럼, 보이는 대상을 실물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미술 기법을 일루전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루전은 김창영의 작품에서 가장 큰 형식적 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루전(비실재)과 리얼리티(실재)의 개념은 김창영의 회화에서 주요한 화두로 꾸준히 논의되었다.   
먼저, 미술사학자 이일은 작품에 물감과 붓으로 묘사한 흔적을 일루전으로, 작품 화면을 구성하는 실제 모래는 리얼리티로 구분하였다. 이일은 이 두 요소를 일루전과 리얼리티로 구분하며 문자적인 관점에서는 서로 대립하는 듯하지만, 시각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동화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붓으로 묘사한 흔적은 일루전이지만 그림에서는 일루전이 현실의 모래처럼 실체화되고, 반대로 모래는 리얼리티이지만 시각 이미지 안에서는 허상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일은 김창영의 회화에서 일루전과 리얼리티가 서로를 역설하는 수사학적 특징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또 다른 미술사학자 윤난지도 유사한 관점에서 김창영의 회화를 해석하였다. 그는 미술의 관행에 있어, 리얼리티를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 일루전이라고 볼 때, 김창영의 그림에서 캔버스를 덮고 있는 모래와 모래 위에 묘사된 모티프는 모두 하나의 일루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김창영의 그림에서 일루전과 리얼리티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하나의 일루전이 또 하나의 리얼리티를 탄생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이상의 논의를 살펴봤을 때, 김창영의 회화에서 일루전과 리얼리티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가 상호 보완되는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회화를 포함하여 연극에서도 발견된다. 우리는 연극을 볼 때 극 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사실을 재구성한 허구임을 알지만 극을 보는 와중에는 허구를 현실로 인지한다. 그리고 극 중에서 허구와 현실이 마주치며 창출되는 극적 순간을 통해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는 미적 체험을 하게 된다. 

SAND PLAY 2304 Mountain - D, 2023, Oil, sand, acrylic on cloth, 87 x 188 cm (4pcs)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본 전시 타이틀은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극적(劇的, dramatic) 순간의 의미를 담아 ‘모래극’으로 명명되었다.  작품 제목에서는 Sand Play가 ‘모래 놀이’로 해석되는 것과 구분되는 이유이다.  김창영의 그림에는 여러 번의 극적인 순간이 발견된다. 하나는,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하는 모래 사장의 풍경을 그림으로 재구성 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실의 모래사장과 일체감을 자아내는 모래 그림을 보는 순간이다. 마지막은, 김창영의 그림을 관찰할 때 우리의 감각이 시각에서 촉각으로 전도되는 순간이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몸으로 더욱 와 닿는 김창영의 그림은 극적인 예술이란 점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얻는다. 차가운 전시장 벽에 걸린 김창영의 그림은 실제로 어떤 질감과 온기를 뿜어내고 있는듯하다. 어떤 모래는 부드럽고 어떤 것은 거칠다. 또 어떤 모래는 따뜻하고 어떤 것은 차가운 기운이 맴돈다.  
그렇다면 김창영은 왜 모래라는 물질을 캔버스 위로 가져온 것일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김창영의 팩스가 도착했는데, 일부는 다음과 같다.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가로서, 리얼리티와 일루전 사이의 갈등을 피할 수는 없다. 내 작품은 현실의 연장으로, 거기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어프로치 일 수도 있다 … 모래를 움켜쥘 때 나타난 손자국을 본다. 만질 수는 없다. 모래 요철의 그림자이니까. 현실 속에 만질 수 없는 시각만의 세계가 있다.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 그림자, 무지개, 한편의 영화. 나는 오랫동안 모래 그림자를 그리고 있다.”  
 
위에서 우리는 김창영이 현실에서 만질 수 없는 무언가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래는 특히 손으로 잡히나, 잡히는 순간 손에서 빠져나가고, 또 손으로 만지더라도 눈으로 본 모래의 형태는 이내 사라진다. 김창영은 해변을 걸으며 너무나 당연한 이 상황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김창영은 만져지나 만지지 못하는 모래라는 물질을 그림으로 대신 남기려는 욕구와 애착을 보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가 김창영이 오랫동안 모래 그림을 보여주는 근본적인 이유다.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경험을 특별하게 기록한 김창영의 그림. 그의 그림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모사(copy imitation)한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의 내용을 빌리자면, 연극을 포함한 모든 예술의 본질은 모방(men in action, mimesis)인데, 여기서 모방은 단순한 복사를 의미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볼 수 없는 영역을 볼 수 있도록 드러내는 창조 행위라고 하였다.  
 
모래의 비가시적인 영역을 감각하도록 이끄는 김창영의 회화도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모래 그림은 가시적으로 포착되는 현실을 그린 것이면서도 무한한 비가시적인 영역을 촉각으로 느끼게 한다. 이처럼, 김창영의 회화는 시촉각의 응집체로써 현실과 친숙하면서도 현실을 능가해 있는 낯선 감각을 깨우는 기묘한 예술인 것이다.  

글│임소희 (BHAK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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