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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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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 기념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개최
- 10년 간의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 공개, 학술대회와 대중강연도 


ㅇ 전 시 명: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ㅇ 기    간: 2022. 11. 1.(화) ~ 2023. 3. 19.(일)
ㅇ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ㅇ 전 시 품: 외규장각 의궤 297책 등 460여 점
ㅇ 주    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기념한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 간 축적된 외규장각 의궤 연구 성과를 대중적인 시선으로 풀어냈습니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에서는 왕이 보던 어람용 의궤가 가진 고품격의 가치를 조명합니다. 또 의궤 속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과 생생한 그림에서 읽어낸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정수를 소개합니다. 2부 ‘예禮로서 구현하는 바른 정치‘에서는 의궤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의례儀禮로 구현한 조선의 ‘예치禮治‘가 담고 있는 품격의 통치철학을 살펴봅니다. 3부 ‘질서 속의 조화‘는 각자가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춤으로써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상이 잘 구현된 기사년(1809)의 왕실잔치 의례로 관람객을 초대합니다.

국왕을 위한 책에서 모두가 보는 외규장각 의궤로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나고 그 전체 과정을 기록한 것이 의궤입니다. 그 중에 단 1부는 최상급 재료를 들이고 조선 최고의 화가와 장인들이 참여하여 정성스럽게 엮고 장황粧䌙*한 어람용 의궤를 왕에게 올렸습니다.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이 어람용입니다. 어람의 높은 품격을 지닌 외규장각 의궤 전시는 우리 문화의 자부심을 선물할 것입니다.
* 장황粧䌙: 서책의 본문과 표지를 묶어서 장식하는 것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 현장감을 더하는 반차도와 도설  
실록에는 1846년 헌종이 아버지인 익종(효명세자)의 능을 옮긴 일을 단 3줄로 남겼습니다. 반면 의궤에는 그 절차를 총 9책으로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행차 모습을 그린 반차도班次圖와 행사에 사용된 기물을 그린 도설圖說은 천연색으로 그려 지금까지도 어제 만든 것처럼 선명합니다. 

왕을 왕답게, 신하를 신하답게
조선시대 왕은 모범적인 의례를 구현하여 예를 실천하고 신하와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움직여 스스로 따르게 하는 예치를 추구했습니다.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맞는 예를 갖춘 질서 속에 조화를 이루는 것은 조선이 추구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입니다. 공신녹훈功臣錄勳 의례에서 신하는 충심으로 보필하고, 국왕은 충신을 예우함으로서 신의信義를 보입니다. 그 행사의 세세한 절차를 의궤에 담아 공신녹훈의 의미를 후세에 남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밖에 볼거리, 느낄거리, 즐길거리  
외규장각 의궤가 전량 전시된 대형 서가는 특별전의 감동을 기억할 포토존으로 사랑받기를 기대합니다. 의궤의 생생한 기록을 토대로 복원한 여령*과 잔치를 꾸민 준화樽花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외규장각 의궤 중 영국국립도서관이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실제와 똑같이 복제하여 관람객이 직접 넘겨보며 어람용 의궤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비 10m의 대형 화면에서 디지털 콘텐츠로 변신한 기사년의 <진찬의 3D 영상>을 감상하면서 관람객은 왕실 잔치의 손님이 됩니다.
* 여령女伶: 전문 예인藝人으로 의례 중에 행사의 진행을 돕던 사람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을 기념한 이번 특별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외규장각 의궤에 담긴 고귀한 뜻과 이야기를 온전히 느끼시기를 기대합니다.

 ㅇ 고故박병선 박사(1923~2011.11.23.)의 노력으로 외규장각 의궤는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고故박병선 박사를 기억하고자 이 분의 11주기가 되는
    11월 21일(월)~27일(일)에는 무료관람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ㅇ 2023년 1월 중에 지난 10년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학술대회와 대중
    강연을 개최합니다. 또 전시품의 일부는 보다 다양한 내용을 보여주기
    위해 교체합니다. 

 ㅇ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10년 동안 외규장각 의궤를 연구하고 그 성과를
    공개해왔습니다. 외규장각 의궤 297책의 해제와 원문, 반차도, 도설 등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외규장각의궤 DB를 구축했고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총 6권을 발간했습니다. 아래 url로 접속하시면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연구 성과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외규장각의궤 DB: https://www.museum.go.kr/uigwe/
외규장각의궤 학술총서 열람 및 다운로드


 

주요 전시품 소개

1. 


•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 莊烈王后尊崇都監儀軌』1686년(숙종 12) / 46.2×35.0×4.4cm / 어람용 / 외규63
• 『헌종국장도감의궤(1) 憲宗國葬都監儀軌(一)』1850년(철종 1) / 46.5×32.6×4.7cm / 어람용 / 외규293

장황粧䌙이란 책의 본문과 표지를 묶어서 장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왕에게 올리는 어람용 의궤와 실무자들이 참고하기 위해 만든 분상용 의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장황에 있습니다.
어람용 의궤는 초록색의 고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별도로 흰 비단을 마련해서 쓴 후 표지에 붙였습니다. 표지와 내지는 겹쳐서 구멍을 뚫은 후 겉에 반짝이는 놋쇠 판을 대고 못을 박아 고정하였습니다. 놋쇠 판은 변철이라고 하고, 못은 박철이라고 합니다. 박철은 다시 국화 꽃잎 모양의 장식을 덧대어 꾸몄습니다. 변철 중앙에는 둥근 고리인 원환도 달았습니다. 일반적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마감입니다.



2.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하) 孝章世子冊禮都監儀軌(下)』
1725년(영조 1) / 48.1×34.7×6.8cm / 어람용 / 외규121 

어람용 의궤는 내지에서도 기품이 느껴집니다. 두껍고 표면이 매끈한 고급 종이인 초주지를 사용하고, 왕이 보는 책에만 사용하는 붉은 안료로 테두리를 둘렀습니다. 반듯한 해서체로 정갈하게 썼는데, 글자를 써내려가다가도 왕이나 왕실과 관련된 단어가 나오면 줄을 바꾼 후 한두 칸을 올렸습니다. 존귀한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임을 표시하는 방법입니다.



3.



『서궐영건도감의궤 西闕營建都監儀軌』
1832년(순조 32) / 45.2×33.4×5.1㎝ / 어람용 / 외규262

1829년(순조 29) 10월에 발생한 경희궁慶熙宮(서궐西闕) 대화재를 계기로 1830년(순조 30)부터 1831년(순조 31)까지 진행된 재건축의 내용을 담은 어람용 의궤입니다. 궁궐의 중심부에 위치한 주요 전각의 공사 내용과 사용된 부재 내역이 전각별로 정리되어 있어 당시 공역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앞부분에 실린 건물 그림 도형圖形은 해당 전각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융복전隆福殿, 회상전會祥殿, 흥정당興政堂, 집경당集慶堂, 사현합思賢閣의 정면 모습을 그린 것인데, 팔작지붕 또는 맞배지붕 같은 지붕의 구조는 물론 용마루의 형태와 양쪽 끝에 얹은 취두鷲頭, 추녀마루의 잡상雜像, 창호窓戶의 수량과 모양까지 세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4.



서궐도안 西闕圖案
조선 19세기 / 종이에 먹 / 127.3×401.8㎝ / 고려대학교박물관 / 보물 

지금의 경희궁 전경을 그린 초본입니다. 12장의 종이를 이어 붙여서 경희궁의 여러 전각과 주변 언덕의 자연경관을 담았습니다.
경희궁은 1829년(순조 29)에 큰 불이 나서 1831년(순조 31)까지 2년여에 걸쳐 새로 지었는데, 이때의 공사 내용이 『서궐영건도감의궤西闕營建都監儀軌』로 남아있습니다. 여기에는 주요 전각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도 실려 있는데, <서궐도안>과 비교해보면 건물 배치나 구도가 약간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궐도안>은 순조 때 경희궁에 불이 나기 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종 대 경복궁 중건을 시작으로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경희궁은 심하게 훼손되어 궁궐로서의 면모를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경희궁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료로는 <서궐도안>이 유일합니다.



5.



『효종국장도감의궤(상) 孝宗國葬都監儀軌(上)』
1659년(현종 즉위) / 48.9×35.9×9.3㎝ / 어람용 / 외규19

1659년(효종 10) 5월에 승하昇遐한 효종孝宗(재위 1649~1659)의 장례 과정을 기록한 어람용 의궤입니다. 장례를 주관하는 임시 관서로 국장도감國葬都監을 설치해서부터 5개월 뒤 시신을 묘소인 영릉寧陵으로 옮겨(발인發靷) 장사지내고, 창경궁으로 돌아와 문정전文政殿에 신주를 봉안하기까지 국왕 장례(국장國葬)의 전 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권상 마지막에 30면에 걸친 <발인반차도>가 수록되었습니다. 장례 기간 동안 빈전殯殿에 모시고 있던 효종의 혼백魂帛과 재궁梓宮(관)을 모시고 묘소를 향해 가는 발인發引 행렬을 그린 것입니다. 선도先導관원으로 시작해서 국왕의 평소 행차 때와 같은 구성의 길의장吉儀仗과 국왕 장례에서만 쓰는 의장인 흉의장凶儀仗, 그 뒤를 따르는 여러 관원들로 이루어진 모습이다. 조선 후기 국장 발인 행렬의 일반적인 구성을 잘 보여줍니다.



6.



희준犧尊과 상준象尊
조선 18세기 / 황동 / (희준) 높이 15.6㎝, 길이 23.5㎝, (상준) 높이 13.4㎝, 길이 27.5㎝ /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왕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술을 담아 두던 술항아리입니다. 희준犧尊은 소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고, 상준象尊은 코끼리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각종 대사大祀와 중사中祀에서 맑은 물과 제사용 술을 담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쭈글쭈글한 주름까지 동시기 장례도감의궤에 보이는 희준‧상준 도설圖說과 매우 흡사한 모습입니다. 
이 상준과 희준은 배에 ‘문희묘文禧廟’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문효세자를 제사지내기 위해 만든 사당 ‘문희묘’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문효세자는 정조의 첫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자 너무 기뻤던 정조는 장차 나라를 이끌 성군이 되기를 바라면서 곧바로 세자로 책봉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자는 겨우 다섯 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7. 
 


• 『문효세자책례도감의궤 文孝世子冊禮都監儀軌』1784년(정조 8) / 49.7×34.1×9.0cm / 어람용 / 외규211
• 문효세자 왕세자책봉 옥인 文孝世子 王世子冊封 玉印1784년(정조 8) / 10.5×10.5×11cm /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에 왕세자를 정하는 의례를 ‘책례’라고 하며, 궁궐 중앙의 핵심 전각인 정전에서 성대하면서도 장중하게 거행했습니다. 왕통을 계승할 사람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의식입니다. 국본國本을 세우는 중요한 일인 만큼 책례가 끝나면 기록도 철저하게 남겼습니다. 책례 준비 과정에서의 논의 내용, 업무 분장에서부터 각 기물의 배치와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의 왕세자 동선까지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의례 때에는 왕세자임을 증명하는 상징물로 옥으로 만든 도장인 옥인, 왕세자 책봉의 글귀를 적은 죽책과 교명을 하사합니다. 이 상징물에 대한 내용도 의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기, 재질, 무게는 물론 어떤 형태인지 알기 쉽도록 도설도 추가하였습니다. 지금 남아 전하는 실제 옥인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8.



김석주金錫胄 보사공신화상保社功臣畫像
1680년(숙종 6) / 비단에 채색 / 176.5×103cm / 실학박물관

김석주는 서인의 대표 명문가 출신으로 숙종의 외척입니다. 그래서 숙종이 즉위한 때부터 가까이에서 항상 숙종을 보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680년(숙종 6) 남인의 대표 인물이었던 영의정 허적이 역모를 꾀한다는 고변으로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남인 세력이 일거에 숙청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신환국입니다. 이때 남인 인물들을 몰아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석주였습니다. 
남인의 역모 사건이 정리된 후 김석주를 비롯한 10여 명은 ‘사직(나라)을 보존했다’는 의미에서 보사공신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때 김석주는 1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공신에 책봉되면 여러 가지 예우를 해주는데, 그 중의 하나가 초상화를 그려서 내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김석주 또한 포상으로 토지, 노비 등의 재물 외에도 이 초상화를 받았습니다. 매서운 눈초리와 치켜 올라간 눈썹, 굳게 다문 입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모습입니다.



9.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
1809년(순조 9) / 47.2×33.5㎝ / 어람용 / 국립중앙박물관 복원제작

진표리와 진찬 행사가 끝난 후 순조는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의궤를 편찬하게 했습니다. 총 3건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어람용만 1건 남아있습니다. 행사 준비와 진행 과정, 사용한 물품과 비용을 꼼꼼히 적었고, 섬세한 묘사와 선명한 색감이 돋보이는 도설圖說도 49면이나 실었습니다. 1809년 혜경궁에게 올린 진표리와 진찬 두 행사를 함께 기록한 유일한 의궤입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는 현재 영국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본래 외규장각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丙寅洋擾(1866년) 때 프랑스로 건너갔고, 1891년에 파리에서 영국국립도서관이 구입하였습니다. 이번 특별전 전시품은 영국국립도서관의 협조를 받아 국립중앙박물관이 원형에 가깝게 복제한 것입니다.



10.



모란도 병풍 牡丹圖屛19세기 초 / 비단에 색 / 194cm×580cm / 본관8165

진표리 장면을 그린 그림 <진표리도進表裏圖>에서 혜경궁의 자리는 전각 안에 마련되었습니다. 그 뒤에 모란꽃이 가득한 병풍이 보입니다. 8폭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여 뻗어나간 가지마다 커다란 꽃송이가 만개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모란은 부귀와 영화의 상징입니다. 조선 왕실은 상서로움과 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다양한 의례용품에 모란무늬를 장식했습니다. 특히 모란 병풍은 왕실 경사마다 빠짐없이 등장했습니다. 혜경궁의 자리에 펼친 모란도 병풍으로 관례冠禮(성인식) 60주년을 축하하는 경사스러운 날의 의미가 더욱 강조됩니다.
혜경궁이 사용한 모란 병풍과 유사한 병풍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전합니다. 전체 10폭인데, 각 폭마다 그림을 따로 그리지 않고 <진표리도>의 병풍처럼 전체 화면을 하나로 연결해서 그렸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모란도 병풍 중에서는 매우 드문 방식입니다. 시내가 흐르는 낮은 언덕에 큼직한 꽃봉오리가 무성하게 핀 모란꽃 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룬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19세기 말 이후의 모란도 병풍과 달리 순수 회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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