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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욱 개인전 : K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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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갤러리 2021 개관2주년 특별 초대전

최영욱 개인전 : KARMA

· 전시기간 2021년 10월 6일(수) – 2021년 10월 28일(목) / 10월 10일(일), 11일(월) 정상운영
· 전 시 명 최영욱 개인전: KARMA
· 개관시간 일, 월요일 휴관 / 오전 11시 – 오후 7시(화-금), 오전 11시 – 오후 6시(토)
· 전시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7길 28 한영빌딩 B1
· 관련문의 충무로갤러리 T. 02-2261-5055 | chungmurogallery@gmail.com | www.chungmurogallery.com
                 



인생의 한 축도로서의 달항아리 그림

- 윤진섭 Yoon, Jin Sup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Ⅰ. 
달항아리는 배가 불룩하니 둥근 모습이 꼭 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치 정월 대보름날 어두운 밤하늘에 둥두렷이 떠오른 보름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 둥글던 보름달도 시간이 지나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이지러지면서 비대칭적인 형태를 띠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우의 비례가 같지 않은 달의 통통한 몸에 대한 연상작용이 항아리에 유감(有感)돼 달항아리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한쪽이 약간 이지러진 조선 달항아리의 품새는 완벽하게 둥근 모양새인 일본이나 중국 도자기와는 사뭇 다른 형태미를 보여준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가 채색 도자기인 반면, 조선의 도자기는 백자가 주류를 이룬다. 그 어수룩하면서도 후덕한 품이 꼭 흰옷 입은 조선의 여인네를 닮았다.    

최영욱은 몇 년째 조선의 달항아리를 그리고 있다. 캔버스에 꽉 차게 그린 달항아리의 모습은 얼핏 보면 극사실 기법으로 재현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극사실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해석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객관적 묘사를 통한 극사실 계열이 아니라 오히려 주관적인 편에 속한다. 다만 형식만 구상적 양식을 빌리고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을 극사실 회화의 범주에 편입시키는데 동원되는 유일한 ‘비평적 기준(critical criteria)’이 바로 빙열인데, 이는 도자기 표면에 자디잘게 갈라진 유약의 균열에 대한 묘사가 마치 실제의 빙열을 묘사한 것으로 오해한 데서 오는 비평적 오류인 것이다.   


Ⅱ 
그렇다면 최영욱의 작품에 등장하는 빙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는 과연 무슨 생각에서 그처럼 치밀한 균열을 달항아리의 표면에 그리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의 초기작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나는 1996년, 그의 두 번째 개인전에 부쳐 서문을 쓴 적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잠시 언급할 필요를 느낀다. 

1996년, 두 번째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들 역시 주조는 흰색과 회색이었다. 흰색이나 회색의 바탕에 새, 의자, 사람, 나무, 풀꽃, 피아노, 포도 등등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이 희미한 형태로 나타나 있었다. 그 그림들의 내용은 마치 작가가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감성적이었고 나직한 톤의 목소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최영욱의 작품과 만나는 것은 결국 그의 내부로 잠행해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생소한 한 개체의 전언을 통해 구체적인 질량과 부피를 가진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작가가 완성한 한 벌의 그림은 한 개체에 대한 이해의 통로이자 접근의 단초이다. 거기에 그려진 형상과 기호, 상징들은 내면읽기에 꼭 필요한 독해의 자료들이다.” 

이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최영욱은 독백형의 작가이다. 그것은 그의 체질인 것 같다. 그의 이러한 체질에 기반을 둔 창작 태도는 초기작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서 흰색 또는 희색조의 바탕에 사물을 그려 넣는 일은 다시 말해 체험을 응축해 기호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런 기호화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자신 혹은 사회에 대해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일까? 

Ⅲ.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일단 우리는 최영욱의 작품 제목이 <Karma>란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의 ‘연(緣)’, 혹은 불교식으로 말해 ‘업(業)’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인간의 생에 대한 비유이다. 인간과 인간 간의 실타래처럼 얽인 인연이 업을 낳고 그 업이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것이 불교식 연기설의 골자이다. 최영욱이 달항아리의 표면에 숱한 균열을 가는 실선으로 연결시키는 행위의 이면에는 이러한 연기설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잠시 작가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그 달항아리 안에 일일이 선을 그었는데 그건 도자기의 빙열을 표현한 것이 아니고 만났다 헤어지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우리의 인생길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내 그림의 제목은 ‘Karma’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의도한 데로만 가지 않고 어떤 운명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나는 그 운명, 업, 연(緣)을 선으로 표현했다. 그 선을 긋는 지루하고 긴 시간들이 나의 연을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최영욱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대부분의 한국 단색화(Dansaekhwa) 작가들이 그런 것처럼 일종의 수행과도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캔버스에 유백색 혹은 다양한 뉘앙스의 흰색으로 여러 번에 걸쳐 바탕을 칠하고, 그렇게 조성된 바탕 위에 약간 도드라지게 달항아리의 형태를 만든 다음, 그 안에 무수한 실선을 그어 빙열을 표현하는 그 지난한 행위를 해명할 방법이 없다. 그의 작화 행위는 구도의 몸짓이면서 궁극적으로는 자기 해방의 몸부림이다. 그것은 어떤 극점을 향해 나아가는 해탈의 몸짓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며 보다 인간적이다. 그가 그림에 투여하는 도저한 시간과 화면을 마주할 때 직면하는 갖가지 상념들은 그의 행위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임을 말해 준다. 그는 단지 예술가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예술적 행위이며 도의 획득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유백색으로 말끔하게 조성된 달항아리의 표면에 무수한 실선으로 균열을 그리는 행위는 따라서 인생에 대한 은유이며 일종의 기호인 셈이다. 그것들은 축약된 암호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것들을 해독하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하며, 감정이입적으로 자기화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것은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리좀적(rhizomatic) 구조를 지닌다. 참으로 왕성한 번식력이 아닐 수 없다.   

Ⅳ. 
철저히 아날로그 방식에 의존하는 최영욱의 그림이 디지털 문명의 존재방식인 리좀적 양상을 보여준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 제이크가 “거대한 나무 하나에 1조 그루의 나무가 속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최영욱의 그림 속에 그려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선들의 증식은 페이스북(facebook)의 보이지 않는 선들의 연결을 연상시킨다. 사이버 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9억 명에 달하는 프로파일의 연결망은 마치 최영욱의 균열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가상이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에서의 만남은 현실화되기도 한다. 사이버 상에 올라온 어떤 의견에 대해 ‘좋아요(like)’를 누르는 행위는 분명 현실적인 행위이다. 거기에도 분명 다양한 감정이 수반된다. 즐거움, 환호, 사랑, 분노, 질투, 증오가 존재한다. 그렇게 수반된 다양한 감정들을 통해 페이스북의 친구들(friends)은 물리적 경계가 없는 사이버 세계에서 서로 소통을 시도한다. 거기에는 피부색, 종교, 인종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호 합의하에 친구가 되면 비록 어느 정도 언어의 장벽은 있을지언정 소통이 시도되는 것이다. 그것은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다. 실제로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각종 정보는 실시간으로 물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탁월한 비유이다.   
 
Ⅴ. 
최영욱은 자신의 그림이 소통의 매개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림을 그린 창작자와 이를 감상하는 감상자가 존재하는 예술의 형식은 그 자체 상호 소통(interactive communication)의 가능성을 내장한다. 상호작용은 직접적인 감응방식에 의한 미디어 아트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최영욱과 같은 철저한 아날로그 방식의 회화에서도 가능하다. 가령, 최영욱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가는 실선을 그어 서로 연결시킬 때, 그 문법을 독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관람자는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투사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내 그림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떠 올리고 그 자신 속에 얽혀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를(소통) 나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이다. 도자기의 빙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갈라지면서 이어지고, 끊겼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선처럼 우리의 인생도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 하며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하나로 아우러진다.” 

인생의 한 축도로서의 달항아리의 빙열은 그러나 그 자체 미학적 완상의 대상이기도 하다. 여기에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이 지닌 매력과 중의성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전통적인 미감을 듬뿍 머금고 있는 동시에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한 느낌은 주로 색감이나 소재, 형태에서 온다. 한국의 전통 달항아리에 구현된 아취 있는 빛깔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유백색에서부터 은은한 흰색 또는 다양한 회색이나 검정에 이르는-은 조선시대 도공들이 이루어낸 땀과 노력의 결정체이다. 최영욱은 한편으로는 그러한 전통에 한 발을 담그고 한 발로는 회화를 매개로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에는 일종의 시각적 트릭이 숨겨있다. 도자기의 불룩한 배 부분에 음영을 집어넣거나 산수화를 삽입하여 실제의 달항아리처럼 보이게 그리는 기법이 그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의 빙열을 실제의 도자기에 난 균열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요인이며, 나아가서는 그의 그림을 극사실주의에 편입시키는 오해를 낳고 있다.   

Ⅵ. 
최근에 들어서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은 보다 평면적이 되면서 ‘미니멀’해지고 있다. 불룩한 달항아리의 존재감이 밋밋해지면서 평평한 느낌이 가일층 강조되기에 이른다. 그와 동시에 균열을 암시하는 실선들이 달항아리의 전면에 번져나가면서 그와 비례해 달항아리의 형태감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러한 도정은 매우 미세한 변화지만 어떤 극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필경 어떤 0도의 지점에 도달할 터인데 그 시기가 언제일런지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다만 이제까지 그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느리게, 그러나 크고 작은 삶의 단면들이 타인의 그것과 얽혀 인연의 실타래를 엮었듯이, 그의 그림 또한 그것의 한 유비(analogy)로서 균열의 망을 점진적으로 엷게 키워가고 있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영도(零度)의 지점을 향한 끝없는 여행으로서 말이다.




karma 20218-4, 165x150cm





최 영 욱

1964 서울 출생
1991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2000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20 karma 최영욱전, 노화랑, 서울, 한국
     karma, Helen J Gallery, LA, 미국
     Reflection-성찰, 소울아트스페이스, 부산, 한국
     최영욱전, JJ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2019 카르마, 노화랑, 서울, 한국
롯데123, 서울 한국
2018 응결, 일우스페이스, 서울, 한국 
     카르마, 반얀트리 호텔 갤러리, 서울, 한국
2017 카르마, 대신파이낸스 센터 갤러리 343, 서울, 한국
달의 위로, 비선재, 서울, 한국
2016 카르마, 소울아트스페이스, 부산, 한국
     카르마, 비선재, 서울, 한국
2015 카르마, 비선재, 서울, 한국
카르마, 표갤러리, 서울, 한국
      카르마, 전갤러리, 대구, 한국
2013 카르마, 소울아트스페이스, 부산, 한국
카르마, 에이큐브갤러리, 서울, 한국 & 도쿄, 일본
2012 카르마, 아트이슈프로젝트, 대만
달 속에 품은 연緣, 서정욱갤러리, 서울, 한국
카르마, 선컨템포러리, 서울, 한국
달을 품다, 롯데갤러리 광복점, 부산, 한국
2011 Image of memories 무각사, 광주, 한국 
특별전 카르마 대구세계육상대회 귀빈실, 대구, 한국
     카르마, 전갤러리, 대구, 한국
     카르마, 베르사체 아끼, 서울, 한국
     카르마, 가가갤러리, 서울, 한국
     카르마, Yegam갤러리, 뉴욕, 미국
2010 카르마, 가가갤러리, 서울, 한국
카르마, 공화랑, 서울, 한국
2009 Image of memories, 아트게이트 갤러리, 뉴욕, 미국
2007 어느날 이야기, 우리은행 강남갤러리 숲 갤러리, 서울, 한국
     어느날 이야기, 후쿠오카 한중일 아트페어, 일본
2006 어느날 이야기, 오노갤러리, 일본
2004 어느날 이야기, 예술의전당, 서울, 한국
2003 어느날 이야기, 노암갤러리, 서울, 한국
2000 어느날 이야기, 홍익대학교 미술관, 서울, 한국
2000 어느날 이야기, 대안공간 풀, 서울, 한국
1996 어느날 이야기, 김내현갤러리, 서울, 한국
1992 어느날 이야기, 가인화랑, 서울, 한국


그룹전

2021 DNA :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서울 ,한국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되는가, 나우 갤러리, 서울 ,한국
     예술가의 사물을 표현하는 혁식 관찰기, 제주도립 미술관 ,제주도,한국

2020 큐브전, JJ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 되는가, 갤러리 나우, 서울, 한국
      찍고 빚고 그리다, 조은숙 갤러리, 서울, 한국
2019  moon jar전 , 갤러리아 아트 스페이스 63 갤러리, 서울, 한국
      내일의 작가 행복한 꿈, 노화랑, 서울, 한국
Basic gravity전, 동아 갤러리, 서울, 한국
April talk전, 갤러리Y, 서울, 한국
2018  온고지신, 신세계 갤러리, 서울, 한국
      유한함의 영원성,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아트마이닝-서울 : 동시대 예술의 네 가지 감정, DDP, 서울, 한국
TASTE,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2017 최영욱, 정현, 이세현 3인 기획전 ORIGIN, 갤러리 박영, 한국
秋 달항아리를 품다- 구본창, 최영욱, 2인전, 갤러리 We, 서울, 한국
ART369, 아트플레이스, 서울, 한국
JAM프로젝트, JJ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오늘의 시각,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2016 아트경기 2016 START UP, 경기문화재단, 경기, 한국
ACAF2016,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서울, 한국
담다, 슈페리어갤러리, 서울, 한국
최영욱, 최준근, 이세현전, 아트스페이스벤, 서울, 한국
2015 아름다운 만남전, 훈갤러리, 서울, 한국
THE WAY TO INFINITY, 리츠칼튼 초이스 갤러리, 서울, 한국
나는 불꽃이다, 63아트미술관, 서울, 한국
Self Fiction Seoul&Japan, 한전아트센터, 서울, 한국
ROOM, 갤러리HUUE, 싱가폴
천변만화 그림 속 도자기를 만나다, 이천시립 월전 미술관, 경기도, 한국
어울어지다,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4人4色, 갤러리H, 서울, 한국
비우다, 채우다,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2014 바람이 분다, G갤러리,송도 
Space Curve,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벗 – 길을 걷다 Ⅱ,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Cultural Code, Springs Center of Art, 베이징, 중국
K-P.O.P – Process, Otherness, Play, Museum of Contemporary Art Taipei, 타이베이, 대만
2013 ‘The Sounds of Korea, 주중한국대사관, 베이징, 중국
correspondence, BRIDGE GALLERY, 서울, 한국
RED GATE, 갤러리 호감, 서울, 한국
기억으로부터의 풍경, odetoart, 싱가폴
The Beauty Of Stillness, SUPERIOR GALLERY, 서울, 한국
2012 홍익국제미술제 동문중진작가展, 홍익대학교, 서울, 한국
Korea contemporary art exhibition, 갤러리 숲, 서울, 한국
벗 – 길을 걷다,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사랑, 흔적- 삶의 이야기, 갤러리 마음+더스페이스, 뉴욕, 미국
Korean Zone – Mind shadowing into Things, MIA갤러리, 베이징, 중국
Studio Akka 그룹전, Studio Akka, 밀라노, 이탈리아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일우스페이스, 서울, 한국
Reality Equals Dream, 아트온갤러리, 싱가폴
새로운 모색,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龍의 비상, 갤러리 써포먼트, 서울, 한국
Adagio non molto, 이언갤러리, 서울, 한국
Art in Life Life in Art, 아트온갤러리, 싱가폴
북촌에 뜬 달항아리, 갤러리 에뽀끄, 서울, 한국
돌 · 물 · 달, JJ 중정갤러리, 서울, 한국
Fiction Nonfiction, 인터알리아갤러리, 서울, 한국
한중 교류전, 인데코화랑, 한국
한일 교류전, 지구당 갤러리, 일본
한국 불가리아 교류전, 소피아 갤러리, 불가리아
한미 교류전, LA 중앙일보 갤러리, 미국
메트로 그룹전, 인사 아트센터, 서울, 한국
Treasures from the mythology, Yegam갤러리, 뉴욕, 미국
마음 그룹전, 갤러리 마음, 뉴욕, 미국
그 외 그룹기획전 150여회 참여


아트페어

Art Busan, BEXCO, 부산, Korea
Art Central, 센트럴 하버프론트, 홍콩
화랑미술제, 서울, 한국
KIAF, 서울, 한국
CIGE, 베이징, 중국
LA Art Show, LA, 미국
Art Miami Context, FL, 미국
Art Miami, FL, 미국
반야프, 서울, 한국
G Seoul 2015, 서울, 한국 
Affordable Art Fair, 싱가폴 
Art silicon valley San Francisco, CA, 미국 
SOAF, 서울, 한국
START Art Fair, 런던, 영국
Chicago International Art Fair, 시카고, 미국
아트쇼 부산, 부산, 한국
Scope 아트페어, 뉴욕, 미국
Palm Beach Art Fair, 마이애미, 미국
LA Art Show, LA, 미국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서울, 한국
아트 토론토, 토론토, 캐나다
휴스톤 파인 아트페어, 휴스톤, 미국
도어즈 아트페어,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서울, 한국
아트광주, 광주, 한국
Kunst 아트페어, 볼자노, 이탈리아
KIAF, 뉴욕, 미국
쾰른 아트페어, 쾰른, 독일
싱가폴 아트페어, 싱가폴
아시아탑갤러리호텔 아트페어, 그랜드 하얏트 서울, 한국
뉴욕 Red Dot 아트페어, 뉴욕, 미국
뉴욕 Scope 아트페어, 뉴욕, 미국
서울아트페스티벌, 서울, 한국
대구 아트페어, EXCO 컨벤션 센터, 대구, 한국
Miami Scope 아트페어, 마이애미, 미국
LA 아트페어, LA, 미국
경향 아트페어 경기, 한국
후쿠오카 아트페어, 후쿠오카, 일본


작품소장

임페리얼 팰리스 호텔, 타이페이
롯데호텔, 서울, 한국
롯데호텔, 미얀마
UN GCF 국제기후기금, 인천경제자유구역청, 한국 
스페인 왕실, 스페인 
룩셈부르크 왕실, 룩셈부르크 
JEI 재능교육, 서울, 한국 
빌게이츠재단, 시애틀, 미국 
필라델피아 뮤지움, 필라델피아, 미국 
로레알 코리아, 서울, 한국 
Komferry 아시아, 서울, 한국 
NUVICO INC., 뉴저지, 미국 
LG U Plus, 서울, 한국 
백운미술관, 서울, 한국 
코리아헤럴드, 서울, 한국 
백공미술관, 강원, 한국 
수원대학교 미술관, 수원,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경기도 미술관, 경기도, 한국 
티맥스 소프트, 분당, 한국 
MUDO SATIS MAGAZALARI A.S., 이스탄불, 터키 
블루닷, 칠곡, 경북, 한국 
대한항공, 한국 
세아제강, 서울, 한국 
SK 그룹
그 외 다수 소장


작가노트


기억의 이미지 


나의 그림은 기억의 이미지화, 소통의 매개체다 .
기억은 특정 이미지를 형성하고, 이미지를 통해 기억은 표출된다. 
'지각과 경험의 울타리'(기억)에 근거해 어떤 의도가 시도되고 감정이 표출되고 소재나 재료, 색감이 선택되고 이것은 어떤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결국 내가 표현한 이미지는 내 삶의 기억, 내 삶의 이야기들이다. 
나는 내 그림속에 내 삶의 이야기들을 펼쳐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그림을 보는 다른 이들은 내 그림속에서 본인의 이야기와 기억을 끄집어 낼 것이다. 나의 기억이라는 것이 다른 이의 기억과 연결되며 그 관계에서 보편적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내 삶'이라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게 되니 결국 보편적 인간을 표현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작품을 보는 것은 나의 내부로 잠행해 들어가는 동시에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 자신의 속으로들어가 보는 것이 된다.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찾는 과정이다 
'나'를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닫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통'이 이루어진다. 
나의 그림은 결국 그 '소통'을 위한 매개체다. 
소통은 단순한 현재의 언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 나와 너를 잇는 소통의 매개체가 바로 내가 표현한 기억의 이미지들이다. 
내 그림에 보이는 달 항아리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다. 
나는 달항아리라는 이미지를 소통의 매개체로 선택했다. 
달항아리와 조용히 만나본 적이 있는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많은 것을 품고 있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극도로 세련된 그 피조물을 먹먹히 보고 있노라면 그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그는 이미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달항아리 그리는 작가로 안다 
하지만 나는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그 안에 내 삶의 이야기를 풀었고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았고 찾았다. 
내가 그린 ‘karma는 선에 그 의미가 담겨있다.
그 선은 도자기의 빙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이다.
갈라지면서 이어지듯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하나로 아우러진다. 
우리의 의지를 초월하는 어떤 운명안에 삶의 질곡과 애환, 웃음과 울음, 그리고 결국엔 그런 것들을 다 아우르는 어떤 기운... 

꾸밈없고 단순한 형태와 색감은 우리 마음 밑바닥의 측은지심 같다.
우리는 본디 착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나 

이렇듯 도자기는 내 삶의 기억들의 이미지고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의 달항아리는 말이다. 
내가 그 안에 기억을 넣어주면서 그것은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이 되었다. 
여러 선과 흔적은 시공을 초월한 암호이고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 그 암호를 풀어나간다. 
나의 그림을 바라보며 한 기억을 떠올려 그 안으로 들어가 보라 
그 속에 착한 인간의 존재가 있다. 
그 안에서 삶의 이야기를 찾는 여정을 시작해보기 바란다. 
그 안에서 우린 만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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