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민 / 깨어나는 경계들
제목 : 깨어나는 경계들 | Awakening Boundaries
기간 : 2025년 9월 1일 ~ 2025년 10월 31일
장소 : 26SQM 박서보재단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24길 9-2
이근민의 회화는 환각의 잔상과 신체의 내면을 감각적으로 역산(逆算)하는 언어다. 그의 캔버스에는 비정형의 장기, 내장의 덩어리, 혹은 분절된 사지의 파편들이 떠다닌다. 화폭은 낯선 생물의 표피처럼 박동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상처 입은 조직처럼 들쑥날쑥한 붉은 덩어리들이 꿈틀대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응시하는 눈망울들이 해체된 육체 사이에서 고립되어 떠돈다. 색채는 육혈색과 냉색 사이를 진동하며, 마치 감정의 체온을 기록하듯 변증법적으로 배치된다. 피와 살의 기운, 병적인 아름다움, 차가운 감정의 응고가 동일한 화면에서 교차하고 겹쳐진다.
이근민, Encounter in the Basement, 2023, Oil on canvas, 73x117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es Projects, Seoul
이 형상들은 인체의 해부학적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체가 감당할 수 없는 심리적 중압과 이름 붙여지지 못한 고통을 부유하는 형태로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며 감각의 주체, 그 ‘고통받는 자아’를 지속적으로 호출한다. 작업의 발아점은 개인적인 병력, 그 중에서도 경계성 인격장애와 그로 인한 환각의 경험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고백적 언어로 끌어오는 대신, 재현 불가능한 감각을 시각적 징후로 환기시킨다.
조형 언어 역시 작가의 심리 상태에 따라 유동하며, 충동적인 파열의 무정형에서 극사실적인 형상으로, 추상에서 은유로 끝없이 변화한다. 이 자유로운 조형 감각은 아르 브뤼(Art Brut), 혹은 아웃사이더 아트를 떠올리게 하며,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맥락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자임한다. 하지만 그가 탐구하는 것은 타자화된 환자의 자기연민이 아니라, 병 자체를 미적·철학적 재료로 전환하는 능동적 수행이다. 이근민의 회화에서 환각과 고통, 자아의 파편화는 때로 불쾌하지만 때로 아름다우며, 익숙한 듯 낯설고, 끈적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결코 정서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는 회화의 언어로 ‘이해받지 못하는 정서들’의 공간을 열며, 통제와 분류의 언어로는 파악할 수 없는 심리적 진실의 형상을 제시한다.
이근민, Psychiatrist’s Head, 2023, Oil on canvas, 100x10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es Projects, Seoul
신체와 정신의 불완정성은 이근민에게 숨겨야 할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비추는 거울이며 창작의 가장 내밀한 연료다. 그는 병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감각을 끌어안고 그것을 회화의 언어로 변환해 낸다. 그리하여 그의 회화는 하나의 자기 치유인 동시에, 사회적 치유를 위한 미적 제의로 작동한다. 사회가 경계 밖으로 배제해 온 감각의 잉여를 긍정하는 예술, 그것이 이근민이 던지는 미학적 선언이다.
- 전시 기획 박승호


이근민, 《깨어나는 경계들》 전시 전경, 박서보재단 26SQM ⓒPARKSEOBO FOUNDATION
* 이 전시에는 박서보가 자신의 작업을 위해 직접 제작하고 작가 사후 박서보재단이 신진 작가 육성을 위해 후원한 박서보 캔버스를 사용한 작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26SQM 의 전시는 예약 없이 자유롭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월요일~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