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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사진전 : 천북(川北)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1-11-02 ~ 2021-11-09

  • 참여작가

    박정일

  • 전시 장소

    오션갤러리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51-746-6060

  • 홈페이지

    http://oceangallery.itrock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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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북(川北), 삶의 진실

-박정일의 카메라 눈

 

 

 

남인숙(미술평론가/미학박사)

 

1. 스케치

천북(川北), 북쪽의 냇가인지 냇가의 북쪽인지 어느 것이든 천북이름을 보면 내를 지닌 마을이다. 천년고도의 이미지와 관광도시로 이름난 경주에 내를 품은 마을, 천북이 있는 것이다. 이를 알까? 고향이 아닌 다음에야 알기 어렵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대형 양계장이 운영되었으며, 우리는 거기가 일터인 사람들의 삶을 알기 어렵다. 천북이 신문지상에 등장한 것은 마을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210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정비 사업을 하겠다는 행정공시 덕분이다. 예외 없이 코로나 위기를 맞이한 천북은 이미 조류독감의 쓰나미가 휩쓸었고 결국 폐농의 절차를 밟아 대부분 텅 비어버렸다. 천북의 농장은 빈집으로 가득하다. 제도적인 사각지대가 되지 않도록 이곳을 정비를 한다는 보도와 함께 행복하고 달콤한 여가의 이미지로 도시를 덮고 있었던 장막이 한 꺼풀 벗겨진다. 천년고도의 빛나는 시간을 사랑하고, 고고(考古)의 향으로 삶의 빈틈을 채우려는 향수 이면에 엄연(奄然)했던 고단한 삶의 흉터가 드러나는 것이다. 박정일은 이렇게 드러나지 못한 존재에게 카메라 눈을 돌리고 그곳에 길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이런 이면(裏面)은 억지로 숨겼다기 보다 화려한 도시의 중흥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도시의 관광이 강조되면서 저절로 이면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정일의 카메라 눈은 이런 이면과 상처를 바라본다.

 

천북 작업 뿐 아니라 이전 작업인 홍콩 작업’(자유를 향한 함성, 2019), ‘홍티 작업’(홍티, 2021), 이른 아침 도심(around 7 a.m. 2021) 등 가려진 곳을 목격하는 카메라 눈을 통해 우리에게 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 홍티 작업의 경우, 그 집이 대표 이미지이다. 그 집에 배인 시간과 삶의 기술이란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지붕 높이와 같은 높이로 휘어지는 뒷길, 길과 집을 구분하는 돌담, 집안으로 휘어지는 길, 길을 구분해주는 돌조각들, 늘어진 빨래와 정면으로 찍힌 촌로(村老), 이 모든 장면은 그 집을 중심으로 홍티의 시간과 공간을 증언한다. 이런 집과 길은 항상 거기에 있었지만 저도 몰래 도시의 이면으로 되어 버렸다. 이곳을 찾아 가 관찰하고 발견하는 박정일의 눈이 그곳을 향한다. 합판을 덧대어 만든 집인가 창고인가 역시 삶의 기술이 푸욱 배어 있는 곳이다. 박정일의 홍티 작업은 홍티에 대해, 시간과 공간에 대해, 역사와 미래에 대해 증언하고 예언하는 묵시론적인 리얼리티를 드러낸다. 고인 시간과 공간, 이것을 현재의 시간으로 현재의 삶으로 이끌어내는 박정일의 카레라 눈은 삶의 진실을 조망하는 프레임이다.

 

천북 작업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텅 빈 건물’, ‘황량한 거리’, 옛 정취를 드러내는 지표들(연탄재, 사료통, 장화 등), 주민들을 담아낸다. 거대한 사료통은 하나의 조형물처럼, 도시의 현재 상태를 알리는 신호등처럼 전도(顚倒)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흔적위에 풍상이 쓸어 간 의미는 텅 빈 채 억지로 채우지 않고, 빈 것을 담는 프레임에서 관객은 삶의 시간을, 공간의 뉘앙스를 끌어낸다. 아스팔트를 비집고 자란 풀잎처럼, 그곳의 일상은 점점이 박힌 폐허에 초록별처럼 천북의 온기를 만들고 있다. 박정일의 카메라는 앗제의 카메라처럼 증인으로, 관찰자로 공간과 시간을 목격하면서 초록별과 같은 공간의 빛과 시간의 빛을 담아 도래할 시간을 드러낸다.

 

2. 투명한 포장지, 떠도는 이미지

박정일은 폐허가 된 장소, 기능(機能)이 정지된 사물, 그 속에 파묻힌 관계, 사람과 사물이 놓인 공간을 바라본다. 장소, 사물, 사람을 엮던 의미는 퇴색되고, 시선의 바깥으로 밀려난 관계들을 박정일은 찾아 가는 것이다. 그곳이 한적하고 한산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북적대는 도심 한 복판일 수도 있고 2019년 홍콩의 우산처럼 가장 복잡하고 들끓는 현장이 될 수 도 있다. 그러므로 박정일의 카메라 눈이 보는 곳은 밀도의 문제라기보다 시간과 함께 쓸려나간 의미의 부재, 그에 따른 관계의 몰락, 쓸모의 소진(消盡)이 자명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천북의 희망농원도 그런 장소 중 하나이다. 직접적인 관계를 맺든 간접적인 관계를 맺든 희망농원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사라지는 의미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의미들의 흔들림 속에서 장승처럼 붙박이 삶을 이어가며 그 장소의 지표들이 되고 있다.

 

사진에 드러난 천북은 텅비고, 녹슬었고, 꽃은 여기 저기 눈치 없이 피어오르고, 아담과 이브의 옷처럼 덤불은 늙어가는 공간을 초록으로 덮고 있다. 사진은 사진 자체의 본래 성질을 갖지 못하고, 언제가 존재했던 대상을 포장한다. 말하자면 사진은 사진 자체의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에서 투명한 포장지가 되어 대상을 감싸며 프레임을 통해 응결된 이미지로 대상을 보여준다. 투명한 포장지에 담긴 박정일의 대상(그림1)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결국 정지되어 버린 시간과 이와는 정 반대로, 반대의 방향으로 흐르는 현재의 시간이 초록의 풀을 통해 흐르고 있다. 이러한 반대방향의 시간을 죽음의 시간과 생명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죽음과 생명, 죽음과 삶 혹은 생명으로서의 사랑의 시간이 박정일의 사진에 동시에 흐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죽음이나 중지’, ‘폐허등의 수사(修辭)는 절대적인 끝을 말하지 않는다. 중지 뒤에 고인 시간이나 폐허에 파묻힌 의미, 몰락한 관계들은 현재의 사건으로 다시 드러날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증인으로서의 사진과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다시 말 하게 될, 증언으로서의 사진이자 다시 짜일 원천 자료로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지들이 아직 특정 의미로 맺히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의미가 될 도래할 시간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죽음과 생명, 관성(慣性)과 활성, 이 상반되는 운동과 시간의 흐름이 박정일 사진의 주된 특징을 이루고 있다.

박정일의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상반되는 시간의 흐름을 물고 있는 사물, 예를 들어 구름이나 장막 등이 등장한다. 사진에 찍히는 그 순간까지도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을 구름의 운행이나 바람, 옛 건물에 아무렇지도 않게 매달려 있는 파랑, 주황, 노랑의 장막들이 감각을 활성화시키면서 현재의 시간을 그리고 생명의 감각을 구제(救濟)하고 있다(그림2). 이러한 역할은 퇴색한 담장 앞에 선 해바라기, 빈 집 앞에 솟은 사랑초, 구름을 가르는 어지러운 전선들, 무너진 지붕을 타 오르는 덤불에서 죽음과 생명이라는 극명한 반대 방향의 시간흐름이 응집된다. 기능이 사라진 사료통은 애초에 설치를 목적으로 한 오브제처럼 천북의 장승이 되고 있다. 전등은 간데없고 사기로 된 소켓만 남아 해빛에 반짝이며 표면 감각의 극치를 드러내고, 거기에 메달린 물방울은 운동의 긴장과 현장감을, 소켓에 연결된 한 가닥 거미줄은 시간의 퇴적을 드러내며 이 모든 것이 인접 관계로 묶여 공간의 제스처를 요약한다. 이 소켓을 중심으로 인접관계의 총체가 투명한 포장지의 중심 오브제로서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뜨개질 하듯 적막 속의 긴장을 짜고, 보이지 않는 시간의 무게를 드러내며, 표면의 감각을 전달하는 직물(織物)이 박정일의 카메라 눈이 우리 앞에 가져오는 이미지이다. 그때 그 대상, 그 장소의 기록으로서의 죽음 이미지가 생명 혹은 삶의 기운과 충돌하며 거기에 보는 자가 연루되어 새로운 서사를 짜게 되는 이 회전 운동에서 떠도는 이미지들은 의미의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이 새로움이 바로 도래할 시간이 되는 것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던 천북 양계장에 대한 기억과 동시에 폐사로 인해 헐렁해진 적막(寂寞)의 장소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박정일의 카메라 눈은 이렇게 시선의 바깥으로 내몰린 현장을 투명한 포장지에 담아, 어디에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떠도는 이미지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올 시간과 공간으로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박정일이 찾아다니는 숨겨진 곳은 개인과 사회가 뫼비우스 띠를 이루며 운전(運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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