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2021-07-22 ~ 2021-08-10
이진석
무료
02-543-0921
COSMOS
친근한 경외감
“자연 풍경을 작가가 느끼는 대로 표현할 뿐, 어떤 경외감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관객 스스로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면 상관없지만.”
사실 작가의 이 두 마디면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 자연의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작업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명쾌한 사실은 그가 자연을 표현한다는 그 자체이니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自然)’을 있는 그대로 풀어보면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이다. 혹자는 자연에 대해 하늘, 땅, 산, 숲과 같이 가급적 인간이 닿지 않은 풍경을 여행적 풍경으로 이미지화하여 기억하겠지만, 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표현하는 많은 작가들 중 그 본질을 천착해가는 일부는 그 끝에서 발견되는 ‘특유성’을 채집해내는 경우가 있다. 이를 우리가 추상과 미니멀리즘이라는 화풍으로 쉽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런 구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인위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질서 있는 시스템으로서의 우주를 의미하는 COSMOS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가장 자연의 입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인위의 질서에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다보면 그것이 인간의 시선에서 본 자연을 ‘획득’하는 데 그치는 것을 우리는 여기저기서 많이 보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나이테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적 또는 문법적 획득일 뿐 결코 자연스러울 수 없다. 따라서 모방이 아닌 느낌의 표현이 되려면 자기 자신이 하나의 자연임을 인정하고 스스로가 이끄는 대로 사는 자세도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보가 구체적이지 않은 작업이라 하더라도 그만의 시간이 응축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진석의 작업에서 시공간이 압축된 느낌을 받는 이유는 그것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작업 과정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데, 그는 몇 년 전 작업 환경을 옮기며 이전의 액체 도장 위주의 반추상 작업에서 작업 방식과 재료를 바꾸게 되는 일종의 전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크릴 등 수성 물감을 섞어서 붓는 일반적인 푸어 페인팅 기법과 달리 한 겹씩 시간을 두고 부어서 쌓아올리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오랜 과정은 하나의 수행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결코 어떤 목적성에 함몰된 작업이 아닌 스스로가 동해서 이루어지는 과정이기에 작가 특유의 퍼스널리티도 느껴진다.
작가는 절곡된 철판을 캔버스 대신 사용하고 크롬 안료와 레진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물성과 깊이를 나타내는데, 누군가는 구름 같은 울렁임을 경험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수심 깊은 물을 연상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우주 공간의 존재를 상기할 수도 있겠다. 작가는 이러한 제작과 해석 과정마저 자유로움 속에서 진행한다. 따라서 작업을 할 때 가급적 수평을 맞추는 등 기본적으로는 인위적인 장치를 통해 틀을 잡지만, 붓는 위치와 양 정도에만 관여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는 시간을 중요시한다. 즉, 의도한 바와 다른 색과 형태가 나타나더라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진석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알든 모르든, 숭고미를 느끼든 느끼지 않든, 미니멀리즘에 대한 개념에 관심이 있든 없든 자연의 본성에 대해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낀다. 사람도 처음에는 알아가는 과정이 좋다가도 너무 많이 알게 되면 다시 타인으로 멀게 느껴지는 것처럼 ‘친근함’의 차원에 놓아두기 위해서는 꽤 정리된 관계와 거리가 필요하듯, 작가는 그 질서를 친근한 거리에 두는 정도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업이 하나하나 어떤 장소 특정성을 갖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딘가에서 채집한 자연 특유의 느낌을 빛과 색으로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을 빛과 건축의 숭고로 채집함으로써 ‘현현(顯現)의 체험’이나 ‘끔찍한 아름다움(a terrifying beauty)’을 주는 제임스 터렐이나 올라퍼 엘리아슨*과는 또다른 종류의 경외에 이르게 한다. 말하자면 관조의 미학을 확보하는 방식에서 미세한 차이가 각자의 개성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친근함과 경외감의 감정은 과거 이분법적 영역에서는 상생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의 양립이 인간 사회에서도 중요한 덕목이기에, 작가의 의도에는 없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감상자로서는 제안하고 싶은 부분이다.
■글/ 배민영(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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