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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연 : 합의된 노스텔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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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속아주는 관객들: 
강호연의 환영주의적인 풍경
고동연 (미술사가)

제우시스(Zeuxis)가 자신의 포도 그림을 개봉하자 새가 날아와서 쪼아 먹었다. 이윽고 제우시스는 패러시우스(Parrhasius)에게 커튼을 열어 당신의 그림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패러시우스가 그린 것은 커튼이었다. 승리는 당연히 패러시우스의 차지였다. [이에] 제우시스는 ‘나는 새를 속였고 패러시우스는 제우시스를 속였다’고 말했다. 

제우시스와 패러시우스의 일화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회자되는 에피소드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연의 역사(The Natural History)』(기원후 79년, 로마시대)에서 플리니 엘더(Pliny the Elder)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소재로도 얼마든지 ‘진정한’ 미의 경지인 사실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제우시스의 에피소드를 인용하였다. 그런데 제우시스의 예는 현대미술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환영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유도한다. 그리스 최고의 화가인 제우시스는 왜 눈앞에서 그려진 커튼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을까? 어떻게 평생 동안 남의 눈을 속여 온 제우시스가 그리도 쉽게 ‘눈속임’에 넘어갔을까? 그렇다면 과연 환영과 착각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글의 서두에서 필자가 제우시스의 고전적인 예를 든 것은 강호연의 설치 작업이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풍경들을 각종 오브제들과 기재들을 사용해서 만든 환영주의 기법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노끈, 신문지, 박스, 손전등 등을 이용하여 스위스 융프라우(Jungfrau), 백사장이 있는 해변, 한 밤의 보름달, 백야와 오로라로 유명한 핀란드 라플란드(Lapland)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절경들을 재현하여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필자가 강호연의 환영주의적인 설치 작업에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단순히 그의 기술에 탄복해서만은 아니다. 대신 필자는 작가가 어떠한 의도로 환영주의적인 수법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환영주의가 관객들에게 어떠한 즐거움을 주게 되는지, 과연 작가와 관객간의 ‘속고 속이는 과정’이 현대미술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 미술이 눈속임의 역사이어 왔다면 새삼스럽게 이러한 역사가 왜 현대미술에서 반복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3년에 송은 아트큐브에서 열린 강호연의 첫 개인전 《대안 풍경》에서 작가는 회사 내 전시장을 각종 일상용품들로 만들어진 가상풍경으로 채워 넣은 바 있다. 자신이 평소에 즐겨 사용하던 탈취제(Deodorant)가 개인적으로 시원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작가는 탈취제의 윗부분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탈취제의 상단 부분이 설치된 거울에 반사되면서 결과적으로 화면을 통해서 관객은 그럴듯한 빙산의 정상을 보게 된다. 거대한 자연 풍경들을 일상용품들을 사용하여 재현하는 방식은 <별이 빛나는 밤(Starry Starry Night)>(2012)에서도 발견된다. 작가는 “은하수가 보이는 밤하늘 아래서 야영을 하는 기분”을 내고자 용접 불똥이 티어서 우연히 만들어진 불규칙한 구멍들 사이로 손전등 빛을 투과시켜서 벽면이 천장에 별의 풍경을 가상적으로 조성하게 된다. 또한 최근 <야호를 외치는 방법(How to Shout Yahoo)>(2011)에서는 휴대폰 두 대의 실시간 스피커폰 통화를 통해 하울링이 발생되고 이것으로 메아리의 효과를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폐지형태의 박스로 일종의 아이맥스 영화관과 같이 한 개인이 들어가서 수평으로 뻗은 별들의 이미지들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설치물 <산장(Cabin)>(2014)을 제작하였다. 그런데 ‘허접한’ 박스 외관과는 달리 관객들은 박스 내부에서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유영하는 모습(환영)을 목격하게 된다. 어두움 속에서 서서히 별빛이 드러나는 과정도 실제 자연 속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의 경험을 모방한 것이다.

이번 강호연의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가상의 풍경보다는 ‘무대 뒷부분’이 일반 관객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은 이미 송은 아트큐브의 전시에서도 선보였었다. 관객은 층위가 다른 방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뚫린 창으로 가상의 풍경을 접한 후에 그 광경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다양한 물건들이 동원된 방을 순차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반면에 이번 전시에서는 각각의 장면과 장면을 조성하기 위하여 사용된 설치 세트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방으로 나뉘어서 배열되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한 쪽방에는 <산장>과 같이 어두움 속에 별들이 유영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반면에 불이 켜진 다른 방에는 가습기와 스탠드만으로 효과를 낸 <모닥불(Campfire)>(2015), 선풍기와 라디오의 잡음으로 파도의 효과음을 만들어낸 <전파(Radio Wave)>(2015)가 전시되게 된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어두운 한쪽 방에서는 완벽한 가상의 풍경을, 그리고 불이 켜진 방에서는 가상의 풍경을 만들기 위하여 작가가 사용한 작은 오브제와 설치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이번 전시에 선보일 강호연의 작업은 작가의 관심이 시각 뿐 아니라 청각이나 촉각, 혹은 심지어 후각의 다른 감각기관들로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풍기와 기타 기자재들을 이용해서 자연풍경에서나 경험하게 되는 파도소리를 만들어 내거나 가습기와 붉은 빛이 품어내는 아지랑이와 같은 온기 그 자체를 가지고 불을 재현해 보려는 최근의 작업들은 더 이상 그의 관심이 관념 속의 이상화된 풍경이 아니라 단편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모닥불>은 따뜻한 불을 접했을 때의 느낌, 비 오는 날 라디오를 접했을 때의 느낌, 파도 소리와 같이 일상적인 생활이나 풍경 속에서 접하게 되는 다른 공감각적인 자극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을 다룬다. 

그렇다면 작가가 풍경 그 자체보다는 과정에서 사용되었던 개벽적인 오브제들을, 혹은 풍경과 연관된 관람객들의 정서적인 반응을 더 부각시키게 될 때 어떠한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는가? 필자는 두 가지의 측면에서 추측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가상적인 풍경이나 풍경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된 오브제들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강호연의 작업은 보다 효율적으로 관객의 다양한 정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강호연의 가상 풍경을 경험한 관객들은 ‘합의하’에 상상의 세계에 몰입한다. 관객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결코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관객은 상상의 세계에 몰입하고 이내 그로부터 벗어나게 되면서 복합적인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달리 말해서 환영적인 가상풍경에 탄복하게 되는 것은 과연 왜 속고 있으며 어떻게 속고 있는지에 대하여 관객이 확실하게 자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게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강호연의 행보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최근 강호연은 시각이 아닌 공감각적이거나 보다 추상적인 정서적 반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동경하거나 직접 방문하였던 풍경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장소를 여행하거나 상상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경험하였던 단편적인 기억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야영장에서 추웠던 기억이나 비 오는 날 라디오를 통하여 들은 소리 등이 바로 그러한 예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상의 풍경 그 자체보다는 그것과 연관된 작가의 경험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사용된 오브제들이 관객들의 적극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용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강호연이 사용하여온 알프스의 풍경이나 북유럽의 오로라 현상들이 비교적 유형화된 풍경에 해당한다면 캠프파이어나 파도와 같이 보다 일상적인 소재들은 관객의 미묘하고 적극적인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강호연의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 중요한 터닝 포인트이다. 물론 작고 일상적인 소재들이 지나치게 감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최근 작업들에서 빈번하게 1970년대 디스코 음악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버더 레인보우”와 같은 클래식하며 흘러간 음악들이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최근 행보가 덜 물리적이고 직접적으로 환영적인 장면을 만드는 일에 집중된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환영주의적인 풍경 그 자체가 줄 수 있는 감흥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 실패했을 때 파생되는 기대와 실망, 호기심과 반전의 미학이 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서 이러한 측면에서 제우시스의 ‘쿨’한 반응을 보다 복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우시스의 ‘쿨’한 반응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속았음을 인정하는 아니 오히려 이를 즐기고 있는 대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강호연의 미래 행보가 그럴듯한 풍경이나 상상의 공간을 일시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보다 공감각적이고 복합적인 관객의 정서적 반응에 집중해 보기를 제안해 본다. 왜냐면 환영주의의 완성은 단순히 예술가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기꺼이 속아주고자 하는 관객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그들의 적극적인 정서적 참여를 끌어내는 일이 병행되어져야 한다. 또한 그가 예로 든 ‘백색소음’과 같이 환영주의의 완벽성이 무너지고 잡음이 드러나는 순간에 기꺼이 속아주고자 하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욱 증대될 것이다. 강호연의 환영주의에 더 많은 여지들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강호연
Kang, Ho Yeon



PROFILE


학력
2015 영국 Royal College of Art, MA Sculpture 재학
2013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석사
2011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학사


개인전
2013 ‘대안풍경-Alternative Landscape’, 송은아트큐브, 서울


단체전
2014 ‘The Brain’(2014 Project Daejeon),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대전
     ‘Use your illusion’, 스페이스k, 대구
2013 ‘Slow art festival’, 헤이리 예술마을, 파주
     ‘You Give Me Fever’(동방의 요괴, 관훈갤러리 공동기획전), 관훈갤러리, 서울
2012 ‘일현 트래블 그랜트 수상자전’, 을지빌딩 3층 을지로스페이스, 서울
     ‘Archive-on going’, 서울대학교 우석홀, 서울
     ‘BLACKOUT’, 관악산 내 서울대학교 실외수영장, 서울
2011 ‘일현 트래블 그랜트 2011’, 일현미술관, 강원 양양


수상
2014 ‘2015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서울
     국비 유학생 선정, 국립국제교육원
2012 서울대학교 대학원장상, 서울대학교
2011 학생예술가 지원 Travel Grant상, 일현미술관
2010 University of Brighton Students Awards, University of Brighton, 영국


작품소장
국립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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