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
1970년 전역한 후에는 고향에 잠시 머물며 불상 조각에 심취하기도 했으나 다시 김경승 선생 아틀리에에 복귀한 뒤 불교미술보다는 순수미술에 전념했다. 1972년 처음 출품한 국전에서의 입선은 오성에게 큰 자신감을 갖게 했고 연이은 1974년 국전에서는 특선을 차지하게 되었다. 1983년에는 국전 초대작가로 추천되어 국립현대미술관의 ‘84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하게 됨으로써 독학한 조각가를 미술계에서 인정해준 듯 해 깊은 감회에 젖기도 했다. 이 초대전은 백문기(白文基, 1927-) 선생에게도 사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백문기 선생은 지금까지도 미술 외에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주신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다. 1986년에는 백악미술관에서 갖은 개인전에는 한국은행의 박성상(1923-2010) 총재가 방문해 작품 <분수령>을 구입하고 또 한 점을 추가 주문하는 등 예상외의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또한 이 전시가 인연이 되어 평론가 신항섭선생을 통해 10인의 구상미술작가(동 서양화8인, 조각2인)를 대상으로 한 평론집 ‘구상미술에의 초대’에 선정되는 영광도 안게 되었다.
한편, 한국은행에 소장된 작품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일본 모(某)기업 회장의 주도하에 일본 지바현(千葉県, ちばけん)에 조각공원을 세우기로 하면서 작품제작을 위해 금구원으로 귀향(1991)하였으나 일본 측의 사정으로 인해 결국에는 중단되고 말았다.
아울러, 김오성과 사돈지간이던 ‘옹기민속박물관’의 정병락( 丁炳樂, 1940-94)설립관장에 의해 일본과 유사한 국내계획도 추진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정관장이 일본 출장 중에 불의의 사고로 고인이 되면서 이 계획 역시 무산되고 말았다. 이 무렵까지 오성은 20여 년 간을 김경승·백문기 선생 작업실과 경기도 벽제의 작업실에서 활동했다. 1998년, 상갤러리(서울 인사동)에서의 세 번째 개인전 이후로는 대작을 옮기기가 어려워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을 연달아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잘 성장해주었고 미술관 운영도 아쉬운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한편,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셋방살이 끝에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할 힘이 생겨 한시름 놓을 찰나에 별을 보는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천체망원경을 구입하면서 전세살이는 다시 이어졌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고향에 내려올 때에 천문대를 직접 지어 본격적인 별 보기도 시작되었다. 규모와 설비의 정도는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제1호 조각공원과 제1호 사립 천문대가 김오성으로부터 시작되게 된 것이다. 김오성은 지금도 이웃은 물론 멀리서 찾아오는 이에게 낮에는 작품에 대해 밤에는 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별을 좋아하는 인연으로 조각 작업과 관련하여 입체 석각으로 4개의 천구의(Celestial globe, 天球儀)를 제작했거나 지금도 제작 중에 있다. 이러한 활동이 유명 과학 잡지에 실리게 되면서 과학자 김용관(金容瓘, 1897-1967)의 이름을 딴 ‘제1회 김용관 과학상’을 받기도 했다.
1966년 아버지가 금구원을 개척할 때 오성이 서울로 가면서 남긴 4점의 석조 두상과 흉상은 늘 아버지의 개척농장에 세워져 있었다. 이후로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한 점 한 점 농장을 채워 나갔다. 이렇게 해서 농민학교를 설립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여망이 멈춘 자리에 조각공원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는 서울에 있는 작품 대부분을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산속 황무지는 문화와 예술의 터전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1986년 백악미술관 전시회를 보고 유명여성지에서 취재를 요청해왔다. 이에 따라 금구원과 경기도 벽제의 작업장이 외부에 알려졌다. 우리나라 조각공원의 효시는 금구원조각공원이라고 명시하여 활자화된 것이다.
그 무렵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직하고 있던 모 인사를 문화관광부에서 만났다. 그는 금구원조각공원을 「 박물관법」에 의해 등록하자고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김오성은 극구 사양했다. 아버지의 꿈이 서린 금구원이 아버지의 이상까지 도달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후 30년. 이제 아버지가 그토록 꿈꿔왔던 농민계몽의 터전에 김오성의 작품이 새로운 문화계몽의 기운을 밤하늘의 별에 총총히담아내고 있다.
- 김오성 (1945-) 전남 담양 출생, 전북 부안 유천초등학교와 변산중학교 졸업, 독학으로 조각가가 됨, 목조개인전(1969)(미8군 영내)을 시작으로 총7회 개인전 개최, 금구원조각공원 설립(1966)(부친 김병렬이 개척한 금구원 농장이 조각공원의 효시), 금구원 천문대 설립(1991)(사설천문대 제1호), 미술관 등록_금구원 야외조각미술관(2003), 입체석각천문도 천구의 제작(한국최초). 자랑스런 전북인 영광의 얼굴(예술상), 부안군민의 장(예술부문), 전라미술상, 김용관 과학상, 해양수산부장관상, 국전특선
FAMILY SITE
copyright © 2012 KIM DALJIN ART RESEARCH AND CONSULTING. All Rights reserved
이 페이지는 서울아트가이드에서 제공됩니다. This page provided by Seoul Art Guide.
다음 브라우져 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This page optimized for these browsers. over IE 8, Chrome, FireFox,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