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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황재형, 막장인생의 탄광촌 그리기

윤범모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은 한국 민중판화 작품을 대거 구입했다. 홍성담의 5월 광주 판화 연작을 비롯 김봉준과 이윤엽의 작품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들 작품을 가지고 미술관은 근래 소장품 특별전시를 개최했다. 전시기간 중 나는 한국의 리얼리즘미술에 대한 강연 초청을 받았고, 행사 이후 후쿠오카 문화 현장의 답사에 오를 수 있었다. 큐슈지방은 한반도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역이어서 감동이 새로웠다. 이삼평 등 조선 도공의 역사가 스며있는 현장이라든가, 임진왜란 침략의 전진기지 등 답사길은 한가롭지 않았다. 일정 관계상 탄광지역 답사는 실현할 수 없었다. 때문에 탄광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나는 다시 큐슈지방을 찾아야 했다. 서승 교수와 이나바 마이 교수가 안내를 자청했다. 여러날 동안 오로지 큐슈지방의 탄광문화 현장만 답사했다. 한국인 징용희생자 위령비에 헌화도 했고, 탄광 관련 시설이나 박물관 등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치쿠호 탄전은 ‘대동아 전쟁’ 당시 일본 역사상 최고의 석탄 생산량(41.2%)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만 해도 2만 명 이상이었다가, 전쟁이 격화되던 1944년 강제징용에 의해 광부의 절반을 조선인이 차지했을 정도였다. 치쿠호 탄광에 연행된 광부의 숫자는 약 15만 명 이상이었고, 조선인 사망자의 숫자만 해도 6백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명부는 작성되지 않고 있다.


‘광부 화가’, 큐슈에서 광부 출신 화가의 회고전을 볼 수 있었다. 센다 우메지(千田梅二)는 광부생활을 하면서 판화를 제작했다. 그는 종전 이후 중국에서 귀국했으나 공습으로 초토화된 고향에 정착할 수 없어 광산촌으로 들어온 경우였다. 그는『노동예술』과 같은 노동자 잡지에 삽화를 그리면서 광산촌의 노동현장을 화면에 담았다. 일본 탄광은 한국과 달리 여성도 갱도 안으로 들어가 일하게 한 특징이 있다. 센다가 그린 여성 광부의 모습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에다 히로시 같은 광부 화가의 회고전은 미망인의 안내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길을 각별히 끈 것은 야마모토 샤쿠베(山本作兵衛)의 작품이었다. 그는 50년간 광부생활을 하고 나서 6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손자 세대에게 탄광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렇게 하여 ‘탄갱(炭坑) 기록화’가 탄생되었다. 작품의 특징은 광산촌의 일상을 사실적 필치로 형상화하고 여백에 관련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글과 그림 형식의 작품은 기록문화로서 탄광촌을 역사화(歷史化)했다. 야마모토 샤쿠베의 작품 700점 가량은 일본 최초로 UNESCO 세계기억 유산으로 등록되었다(2011). 광부의 그림이 UNESCO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니! 이는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큐슈 탄광문화 현장을 답사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했다.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도 커다란 소득이었다.

 




 

현재 전북도립미술관에서는 ‘광부 화가’ 황재형의 개인전이 개최되고 있다(4월 14일까지). 1980년대 태백 광산촌에 들어가 스스로 광부생활을 체험했던 화가의 진솔한 작품이 미술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의 유화 작품은 ‘삶의 주름과 땀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진실의 다른 얼굴이다. 황재형은 왜 탄광촌을 선택했고, 폐광이 된 오늘날에도 현장을 지키면서 작업하고 있는가. 물론 그의 작업은 질흙도 없고 뉠 땅도 없는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막장인생의 광부 생활을 통해서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진실을 화면에 담은 것이다. 황재형이 경계하는 것은 소재주의로서의 제작 태도이다. 광산촌을 단순 소재로만 차용하는 것, 이같은 태도를 적극적으로 혐오했다. 하기야 누구나 탄광촌을 ‘여행’할 수 있다. 겉만 슬쩍 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너무나 많다. 하지만 현장을 지키면서 ‘동거’한 자만이 속을 볼 수 있는 것, 어찌 본질이 단숨에 형상화될 것인가. 일찍이 중국 화론에도 나오는 것, 산수를 그리고자 할 때 가행자(可行者)가 아닌 가거자(可居者)의 자세를 취하라는 것. 관광 산수는 일종의 사기이다.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는 동체의식, 거기서 진솔한 작품의 탄생을 예고한다. 황재형의 작품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투철한 작가의식에서 기인한다. 화사하고 장식적 분위기로만 점철된 요즘의 맥 빠진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황재형이라는 광부 출신 화가의 존재를 더욱 소중하다고 믿는다. 무엇 때문에 그런가. 막장은 광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을 비롯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막장인생, 오늘의 미술은 ‘막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황재형의 전시장은 이같은 물음에 대답 하나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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