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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조영 / 도시의 야경을 사색하는 한조영의 시각

하계훈

인간이 밀집하여 활동하는 도시는,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진화하는 촌락에 비하여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며 때로는 삭막하고 위협적이기도 하다. 도시는 소음과 속도로 묘사되기도 한다. 풍요롭고 편리하지만 소란스럽고 위태로운 양면성을 가진 것이 도시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가운데 <시골쥐와 서울쥐>라는 동화는 도시와 농촌의 성격을 잘 대조시켜 보여준다. 이 동화에서 주인공들은 쥐들이며 사건은 그들의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의인화된 쥐들을 둘러싼 일들이 결국 우리들의 도시 생활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한조영은 우연히 체험한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어두운 도시의 풍경을 파노라마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고교시절까지 지방의 소도시에서 생활하였던 작가에게 대규모 도시는 가능성이자 활력이고 속도였었겠지만 한 순간에 느끼는 낯설음과 배척성이 비인간적 입김을 뿜어내는 도시, 특히 그러한 도시의 야경에서 작가는 개성의 함몰과 자기정체성의 혼돈을 가져오는 일종의 공포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환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조영은 자신이 그 속에서 머물러 생활했던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생활하던 도시라는 장소를 대상화하여 먼 곳에서 바라보는 관조적 시각을 선택하여 도시와 그것의 생태 작용을 관찰한다.

도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공조명을 이용한 활동시간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농촌지역이 일몰과 함께 사람들의 활동이 소강상태 혹은 종료에 이르게 되는 반면에 도시에서는 인공조명에 의한 밤의 공간이 대낮과 별로 다르지 않게 부산한 움직임으로 가득 차게 된다. 휴식과 침잠의 시간에도 도시는 여전히 움직이고 소리 내고 만들고 소비하며 질주하고 빛을 발산하며 깨어있다.

이러한 도시는 먼 곳에서 바라볼 때 암흑 속에 제 모습을 감추어버리고 오직 인공조명에 의해 드러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난다. 이 경우 도시의 모습과 성격을 인식하는 중요한 수단은 빛이다. 한낮의 도시의 모습과 달리 어둠과 밝음의 이분법적인 조형요소에 의해서 가려질 것이 가려지고 드러날 것이 드러난 도시의 야경 속에는 새로운 질서와 생명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숨어있는 도시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상상력과 기억을 자극한다.

한조영의 작품은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착륙을 앞두고 접근하는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거나, 혹은 관람자가 도시 인근의 높은 장소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듯한 파노라마적 시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도시들의 모습은 대부분 깊은 밤 혹은 지평선 위의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는 새벽처럼 묘사된다. 멀리서 바라본 도시는 어둠 속에 점점이 밝혀진 불빛에 의하여 그 좌표를 알려주며 보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이듯 잡아당기면서 빌딩과 도로가 만들어내는 선과 윤곽에 의해 그 모습과 규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한조영이 이러한 도시의 모습을 캔버스 위에 표현하는 방법은 단순한 그리기가 아니라 어두운 배경이 표현된 바탕 위에 수많은 밝은 색 스티커 조각들을 붙이는 것이다. 쌀알 크기의 사각형 스티커 조각들은 도시의 건물들을 구성하는 각 층의 작은 공간들을 밝히는 불빛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서 거대한 빌딩의 윤곽을 형성하고, 다시 그러한 빌딩들의 집합에 의해서 도시와 도로망이 드러난다. 반복적이고 집중력을 요구하는 스티커 붙이기 수작업에 의해 한조영의 캔버스에는 하나의 도시가 태어나고 그 곳에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추억되기도 하며 꿈으로 꾸어지기도 한다.

한조영이 그리기를 벗어나 스티커 조각을 붙이는 형식으로 작업하는 데에는 작가로서 오랫동안 수행해 온 그리기에 대한 일탈과 확장된 표현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의 의지가 담겨 있다. 로 이름 지은 일련의 도시야경을 그린 캔버스 작품들과 함께 작가는 폐품을 재활용하여 도시의 모습을 다시 구성하는 설치 작품을 구상하기도 한다. 깡통이나 빈병, 상자 등 도시에서 소비한 물건들의 잔해가 다시 도시를 구성하는 재료로 도입되는 리사이클링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역사 속에서 도시가 세워지고, 무너져서 다시 세워지는 순환의 한 맥락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의 경우 도시를 과밀, 오염, 사고, 인간관계 단절 등의 부정적 개념과 연결된 공간으로 설정한다. 하지만 중세 이후 꾸준히 발달해 온 도시는 진보와 창조의 가시적 결과로서 오래 동안 존중되었으며 근대 산업화의 물결은 도시화를 자랑스럽고 희망적 현상으로 여기며 급속하게 도시의 확장을 전개시켰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암브로지오 로렌제티가 그린 시에나, 바로크 시대의 베르미어가 그린 델프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 담긴 파리의 표정들, 그리고 미래파 화가 보치오니가 그린 도시 풍경 등에는 활력과 자부심, 그리고 의욕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서 21세기 도시생활을 바라보는 작가 한조영과 그의 곁에서 함께 도시를 호흡하는 우리들에게 도시는 어떤 곳이며 어떤 의미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들이 이번 기회에 우리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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