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그 속성상 후원자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국가의 보호 아래 국민들의 경제, 문화, 교육, 보건 등에 관련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이지만, 국가의 보호와 지원이 이 모든 분야에 완전하게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또 다른 지원주체의 참여가 필요하게 되었다. 오늘날 문화 분야에서 정부를 제외한 대표적인 지원 주체로서 기업의 역할이 점점 더 부상하고 있다. 예술가와 예술기관들에게는 창작 환경의 보장과 경영의 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확보 측면에서 기업의 도움이 필요하고, 기업은 홍보와 마케팅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도출할 수 있으며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사회적 책임의 실현의 차원에서도 문화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후원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대부분 문화예술 분야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면서 직간접적으로 이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참여는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첫째는 기업에서 설립한 문화재단을 통해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문화재단 설립과 운영의 방향은 기업의 사업내용이나 국민적 관심을 고려하면서도 설립을 주도한 기업의 창업자나 대주주의 취향이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 가운데 특징적인 곳을 몇 군데 들자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65년에 설립된 삼성문화재단(현재는 삼성재단), 1977년 설립된 금호문화재단(현재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그리고 1989년 설립된 송은문화재단 등을 들 수 있다.
삼성재단은 문화 분야 뿐 아니라 장학사업, 복지사업 등 우리 사회 제분야의 전반적인 지원사업을 해오고 있는데, 미술분야에서는 일찍이 1982년에 개관한 호암미술관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리움까지 우리나라 고미술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관과 관련하여 핵심적이고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이 미술관 사업에 중점을 두게 된 것은 삼성그룹 창립자의 고미술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경우에는 1989년 금호갤러리로 시작하여 현재의 금호미술관과 작가들을 위한 창작스튜디오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설립자의 2세인 고 박성용 화장의 음악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재단의 성격이 주로 음악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가 하면 송은문화재단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설립자의 유지를 받들어 1989년 재단 창립 초창기부터 미술계 젊은 인재들의 전시와 연구활동에 포커스를 맞춰 차별화된 지원사업을 실시해오고 있다.
이처럼 기업에서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미처 돌보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고, 문화공간에게는 재정 다원화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이 정부 정책에 종속되는 것을 방지하고 중립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문화재단의 모기업에게는 기업의 이미지 제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상품과 용역에 대한 마케팅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카지노나 원자력, 술, 담배, 등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기업에서도 국민적 비난과 혐오감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복지재단이나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또 다른 방식은 재단법인을 설립하지는 않았지만 직접적인 문화공간 운영 방식이다. 이 경우 역시 기업에서 기대하는 것은 문화재단을 통한 예술지원과 거의 동일하지만 이러한 사업은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경우에 비하여 공익성이 모자라고 사업의 지속성 역시 담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직접적인 예술지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포스코미술관, 스페이스C 미술관, 스페이스k 등을 들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공간들은 사회에 대한 기업의 공익적 기여라는 사업목적을 더욱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재단화를 통해 공익성을 분명히 한다면 모기업에게도 더 좋은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일부 기업에서는 자기 공간이 아니라 외부의 예술 공간과 단체에 대해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기여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지원주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성격이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최근 H카드의 국내외 문화예술 기관에 대한 지원사업과 D항공의 외국 유명 박물관 한국어 안내 지원사업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이외에 사적 영역에서 기업을 포함하여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주체가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동기가 있다. 하나는 후원 주체가 그 지원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후원이다. 우리는 앞의 경우를 후원(sponsorship) 또는 동반(partnership)이라고 하고 후자의 경우를 자선(philanthropy)이라고 한다. 후원의 경우에는 지원 주체가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도 있고 유리한 세제 혜택을 받을 수도 있으며, 지원 조건에 의해 미술품과 같은 구체적 결과물이 남는 경우에는 시장의 변화에 따라 성공적인 투자로 결론이 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선의 경우에는 이러한 것을 기대하지 않고 순수하게 지원하는 행위이므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들은 전자를 택한다. 후자의 경우는 기업에서 개입하더라도 그 기업의 설립자나 자산가의 의지가 강력하게 개입되어 있거나 해당 기업과 무관하게(또는 유관하게) 후원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고, 주로 문화예술 분야보다 복지나 장학 사업에서 많이 발생한다. 후원이나 심지어 자선의 의미로 시작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부분의 경우 기업 문화재단과 문화공간의 운영에 있어서 설립자나 그의 특수관계인들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업에서 설립한 미술 공간의 거의 전부가 설립자의 배우자나 자녀 등이 관장직을 맡고 있는 실정은 좋은 의도로 시작한 사업을 세금화피나 변칙상속, 비자금 창구로 악용한다는 의심을 사기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이 문화재단이나 문화공간을 만들더라도 그 설립자와 주변인들이 직접적으로 운영에 개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관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더욱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당연히 이윤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기업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도 그 기업의 본연의 임무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기업이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것은 그 사회가 문화예술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회가 이러한 후원행위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며 후원에 대한 제도적 보상체계를 어떻게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그리고 사회적 기부행위에 대한 제도적 보상이 늘어날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기업이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늘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회적 전개의 양상일 것이다.
재정적 자립이 어려운 문화예술 기관에 대한 기업의 지원에는 양날의 칼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재정을 지원하는 측에서는 그 대가를 요구할 것이고 지원받는 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문화예술 기관에서는 지원을 받으면서도 자율성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재원에 더 많이 의존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이해득실을 떠나 문화예술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점을 지원자에게 설득하여 자선적(philanthropic) 지원이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영의 전문성과 투명성, 그리고 사회적공감대의 형성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