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유지환론 /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외로운 전사

윤진섭

나는 유지환을 볼 때마다 늘 강한 포스를 느낀다. 다부진 체구에 검정색 안경너머로 반짝이는 눈빛은 그가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임을 알려준다. 퍼포먼스 작가로 잘 알려진 그는 그러한 포스에 걸맞는 대형 작업을 펼쳐왔다. 가장 압권인 것은 1999년 9월 13일 예술의 전당 광장에서 펼쳐진 <누구나 떠드는 미래>다. 이 설치작업은 인천의 갯벌에서 무려 20톤에 달하는 길이 28미터의 폐선을 끌어다 놓은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한판의 퍼포먼스였다. 100톤급과 50톤급 기중기 두 대를 동원하여 이틀간에 걸친 사투 끝에 배를 겨우 트레일러에 옮겨 실을 수 있었다. 그것이 어찌나 무거웠는지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도중에 트레일러의 거대한 여덟 개 바퀴들 중 절반이 펑크가 날 정도였다. 이 폐선의 이송 과정 자체가 빅 퍼포먼스였다. 출근길의 행인들이 이 장관을 보느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초현실적 풍경이었으며, 대단한 소외 효과를 낳았다. 평범한 일상 공간에서 거대한 배가 도시에 출몰한 이 사건은 유지환의 상상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한 상상력이 일상 공간에서 출근에 여념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 상상력만으로 이러한 사건이 가능할 것인가. 상상력을 구체적인 현실로 옮기는 유지환의 열정과 실천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 그것이 바로 유지환 특유의 뚝심과 포스인 것이다. 유지환의 그러한 포스는 최근 몇 년간 벌이고 있는 플레시 몹 기반의 퍼포먼스를 낳은 원천이다. 만약 그에게 그런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그러한 집단적 퍼포먼스는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에게서 무당의 근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퍼포머는 곧 무당이 아닌가? 병을 고치는 무당은 곧 사회를 고치는 의사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플레시 몹 퍼포먼스가 대중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것은 집단적 의사 표명의 수단으로 사회에 던지는 발언이다. 그가 자본주의를 자기 작업의 중요한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을 하는 사고의 이면에는 치료사로서 무당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일개 예술가가 저항을 한다고 해서 그 파워의 발휘를 그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는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며, 돈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유지환의 고민은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는 그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전략적 고민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유지환은 플레시 몹 퍼포먼스를 할 때 늘 흰색의 정장차림을 한다. 흰 중절모에 흰 넥타이, 흰 신사복을 착용하고 흰색 여행 가방을 끈다. 그런 그의 뒤를 흰색 옷으로 차려입은 남녀들의 무리가 따른다. 그들은 자발적인 참여자들이다. 주로 인터넷을 보고 참가한 사람들이다. 십대에서 오십대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의 참여자들은 일련의 자기 창작의 과정을 겪는다. 대중에게 잠재된 예술가의 기질이 유지환의 플레시 몹 퍼포먼스만큼 잘 드러나는 곳도 드물다. 흰 옷을 선택하고 거기에 장식을 하거나 얼굴이나 몸에 흰색의 칠을 하는 과정 자체가 창작이기 때문이다. 
 
원래 플레시 몹은 2000년 대 초반, 모바일 폰의 문자 전송 기능에 힘입어 나타난 일종의 사회 현상이었다. 처음에 그것은 예술적 맥락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를 보내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전원이 길바닥에 훌렁 드러눕는다든지 하는 동작을 통해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의도로 고안된 것이다. 플레시 몹은 한 때 잠시 유행을 하다 사라지는 듯 했다. 이를 예술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지속적인 퍼포먼스 작업으로 연결시킨 사람이 바로 유지환이다. 유지환은 흰색을 드레스 코드로 삼아 다중을 작업 속에 끌어들인다. 그의 강한 카리스마는 그룹의 리더가 되기에 적격이다. 그는 [2011 한국실험예술제]의 참가작을 통해 하루 종일 로드 퍼포먼스를 벌였다. 아침 일찍 인천 아트 플렛폼을 출발하여 월미도와 영종도를 거쳐 홍대 앞 행사장에 이르는 긴 도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그는 퍼포먼스의 본질을 해프닝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연성과 즉흥성으로 가득 찬 해프닝을 가장 선호한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그의 작품 중 문제작들은 모두 이 속성들을 잘 드러낸 것이었다. <씨발 세탁소>에서 밥을 배달한 식당 아주머니가 ‘이상한 곳’이라고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 속에 촌철살인의 예술에 대한 풍자가 깃들어 있다. 그가 이 작품을 발표한 1997년을 고려해 볼 때 퍼포먼스 중 밥을 시켜먹은 이 발상은 상당히 급진적인 데가 있다. 생각은 있어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은 어렵다. 한 때 퍼포먼스에 빠졌던 나 역시 그보다 십년 전 대전 문화예술회관에서 퍼포먼스를 할 때 짜장면을 시켜 먹으려는 발상을 한 적이 있었으나 용기가 없어 포기한 적이 있다. 유지환에게는 남다른 용기가 있고 재치가 있으니 장차 큰 작가가 될 것 임에 틀림없다. 
 
유지환이 흰색의 정장 차림을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과 연관시켜 볼 때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우선 그는 자본주의를 자기 작업의 최대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가 연속적으로 진화하는 한 내 작업 또한 진화할 것이다. 사회 시스템이 획일화하고 몰개성화(표준화)하는 현실들이 내 작업의 먹이꺼리인 셈이다. 한마디로 자본이 나의 적이 되어버렸고 나는 그들의 허점을 찾아 날을 세우고 있다.”

그의 이 발언을 읽고 있자니 오래 전에 최민화가 그린 단편 만화가 생각난다. 그 만화에서 한 거대한 인간(아니면 신(神)?)은 양 손 아래 가득 몰려 움직이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그러모으며 외친다. “너절한 것들, 다시 만들자.” 그 때 인간군상은 밀가루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밀가루? 그러고 보니 밀가루의 흰색과 유지환의 흰색 정장과는 닮은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넥타이 부대로 통칭되는 현대사회의 획일화된 인간군과 유지환의 흰색 정장 사이에는 흰색이 상징하는 어떤 공통성이 있지 않겠는가. 그의 플레시 몹 퍼포먼스에서 흰색은 공통의 색이다. 모든 행위자들이 흰색의 옷을 착용한다. 흰색의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타거나 거리를 걸으면서 리더(유지환)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돌발적인 행위를 벌인다. 일상공간에서 벌어지는 그의 퍼포먼스는 획일화되고 타성화한 대중에게 어떤 놀라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작업이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일상과 예술의 결합은 20세기 미술의 화두가 아니었던가. 그것은 오랜 과정을 거친 예술의 분화를 딛고 예술과 일상의 구분이 없던 선사시대로 회귀하려는 동작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일상의 자본화와 예술의 자본화가 동일한 궤적을 밟아 진화해 왔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일상의 자본화가 극에 달했을 때 예술의 자본화에 대한 작가들의 공격이 시작됐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같은 작품들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일 터. 
 
이러한 차에 유지환이 모바일 폰을 이용, 대중을 작업에 끌어들이는 전략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그 일을 일상공간에서 수행한다. 무엇보다 일상이란 사람이 사는 공간이 아닌가. 자본의 논리도 역시 일상에서 전개되지만, 끊임없이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그 공간은 화해가 아니라 싸움의 장소이다. 약육강식에 의한 동물적 본성만이 으르렁대는 곳, 그 자본이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에서 그는 한 사람의 외로운 전사로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